택배기사지만 동네 ‘수호기사’이기도 해요
제천우체국·CJ·로젠 참여…방치 차량·실종·가출인 등 신고
택배노동자 김범준씨(50)는 배송지역인 충북 제천시 청전동 일대를 유심히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제천경찰서에서 지난달 25일 ‘택배순찰대’ 위촉장을 받은 후부터다. 인적이 드문 농촌지역과 원룸촌 등을 오가며 택배 일을 하는 그는 업무 중 치안 취약지대를 함께 살핀다.
김씨는 지난 1일에도 물품 배송을 하며 순찰을 함께 하고 있었다. 가로등이 하나도 없는 보행로를 사진으로 찍는가 하면 원룸 밀집지역에 방치된 차량을 살폈다. 그의 택배차량 조수석 문짝에는 택배순찰대 로고가 붙어 있다. 김씨는 “10년 넘게 청전동에서 배송 일을 해왔다”며 “지역 사정은 누구보다 잘 안다. 수상한 사람도 금방 구분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택배순찰대원으로 활동하는 제천지역 택배노동자는 122명이다. 이들은 배송 업무를 하면서 범죄 취약지역을 찾아낸다. 이후 경찰에 방범시설물 설치를 건의하는 등 범죄 예방 활동을 하는 것이다. 범죄 현장을 목격하거나 실종·가출인을 발견하면 112에 신고하기도 한다.
택배순찰대에는 제천우체국과 CJ대한통운, 로젠택배 등 3곳 택배노동자가 참여했다. 그간 택배업체와 업무협약을 통해 택배순찰대를 구성한 사례는 있었지만, 택배순찰대 개개인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것은 제천경찰서가 처음이다.
제천 강제동 일대를 담당하는 택배노동자 김명민씨(48)도 택배순찰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하루 평균 300~350건 택배 물품을 배송한다. 배송 중복지역 등을 제외하면 200~250곳을 순찰한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그는 “배송 업무를 하며 독거노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사고 위험은 없는지 등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역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배달노동자들은 제천뿐 아니라 충북 곳곳에서 지역 치안을 지키는 ‘순찰대’로 활약하고 있다.
충북에서 유일하게 경찰서가 없는 증평군도 배달대행업체 라이더들과 손을 잡았다. 증평군은 지난 2월부터 증평소방서, 지역 배달대행업체 4곳과 ‘안전 및 재난 예방을 위한 업무협약’을 하고 순찰을 이어가고 있다. 증평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달대행업체 라이더들은 200여명이다. 이들은 지역 사건·사고 위험 등을 ‘안전신문고’에 신고하고 재난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빠르게 현장 초동대응도 돕는다.
진천에서는 우체국 집배원 30여명이 ‘POST-COP순찰대’로 활약 중이다. 이들은 우편물이나 택배 물품이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독거노인 가구를 경찰관에게 알리고 농산물 범죄 예방 홍보도 한다.
이명균 제천경찰서 생활안전계 경위는 “경찰도 순찰 업무를 하지만 인원이 적다 보니 한계가 있다”며 “배달노동자들은 곳곳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지역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들의 활동이 범죄 예방과 치안 유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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