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선변제 받으려 ‘위장 임차인’ 내세워 불안 가중
임차권 등기 설정해둔 집에 또 다른 세입자를 전입시키기도
안이한 정부 대책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 구제 어려워져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고 있는 임대인이 임차권 등기가 설정됐거나 압류가 걸린 주택에 ‘위장 임차인’을 들인 사례가 확인됐다.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때 소액 임차인의 최우선변제금이 가장 먼저 배당되는 점을 노린 것이다. 특히 위장 임차인으로 인한 ‘2차 피해’는 다가구주택 거주자 등 정부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위치한 한 다가구주택에서는 20~30대 청년 9명이 3년 넘게 보증금 미반환 소송을 벌이고 있다. 2017년 건축주 김씨는 임대인 이씨 명의의 토지에 건물을 지으면, 이씨가 토지·건물 소유권을 이전해주기로 부동산 매매계약을 맺었다. 잔금은 세입자들에게 받은 전세보증금으로 치르기로 했다. 건축주 김씨는 이듬해 세입자들이 입주한 직후 “집에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연락하라”며 ‘실소유주’임을 자처했다.
그러던 김씨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시세 차익을 보기 어려워지자 태도를 바꿨다. “나도 건축대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라며 임대인 이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2020년 6월 주택에 가압류가 걸리고 경매에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자 자신의 부인과 아들, 지인 등 4명을 이 건물 세입자로 들였다.
경향신문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경매에서 최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 소액 임차인이다. 실거주한 정황은 없고, 관리비만 김씨가 납부 중이다. 경매 배당요구서도 모두 김씨가 제출했다. 임차인의 계약서는 임대인 이씨가 아닌 제3자 필체로 작성됐고, 공인중개업소 정보도 누락돼있었다.
피해자 9명은 이를 근거로 김씨가 ‘위장 임차인’을 심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김씨의 가족·지인이 받게 될 최우선변제금은 9300만원이다. 김씨는 임대인 이씨를 상대로 한 유치권 소송에서도 승소해 건물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게 됐지만, 보증금 등 채권 반환 의무를 피하기 위해 소유권 이전 절차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이로 인한 손해는 피해자들에게 돌아간다. 이 다가구주택은 최근 10억5999만원에 낙찰됐다. 원래대로라면 선순위 채권자인 A금융사가 약 6억4000만원을 배당받고도 피해자 9명 중 5명이 전액 변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위장 임차인들의 최우선변제금이 추가되면, 9명 전원이 전액 변제를 받을 수 없다.
인천 미추홀구 다세대주택에 거주했던 강모씨(33) 부부는 보증금 8000만원을 못받자 임차권등기를 설정하고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올해 초 자신들이 임차권등기를 설정해둔 집에 누군가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60만원으로 계약을 맺은 사실을 알게 됐다.
다급하게 새 세입자를 만나보니 ‘나는 최우선변제금만 받으면 되니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명의상 집주인이었던 A씨는 “나는 계약을 맺은 적이 없고 통장과 인감증명서도 실소유주인 장인 B씨가 갖고 있다”며 “나 역시 장인의 협박과 강요로 명의를 대여해준 피해자”라고 했다. 이 때문에 강씨 부부의 피해 구제가 어려워졌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전세피해 특별법’에 따르면 저리대출 등의 피해지원을 받으려면 ‘임차권등기 설정’과 ‘기존 주택 실거주(점유)’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강씨 부부의 경우 임차권등기를 설정한 주택에 다른 세입자가 전입을 한 상태라 실거주가 불가능하다. 만약 강씨 부부가 경매로 주택을 ‘셀프낙찰’받는다면 새 세입자에게 최우선변제금만큼의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고, 낙찰을 포기하면 최우선변제금 2700만원만 건지게 된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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