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려 노조 했는데…정치의 제물이 됐다”
가족·노조·야 4당에 손편지 남겨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만들길”
민주노총 “기획수사가 죽음 몰아”
건설노조, 오늘 대통령실 앞 집회
검찰 수사에 항의하며 분신해 지난 2일 숨진 건설노동자가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무리한 ‘낙인찍기’가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공분이 이어지고 있다.
3일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숨진 강원건설지부 간부 A씨(50)가 남긴 유서를 공개했다. A씨는 노동절인 지난 1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강원 강릉시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하면서 가족과 노조, 정당(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진보당, 기본소득당)을 수신인으로 한 유서를 남겼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2일 숨졌다.
노조에 남긴 유서에서 A씨는 “윤석열의 검찰독재 정치, 노동자를 자기 앞길에 걸림돌로 생각하는 못된 놈 꼭 퇴진시키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달라”고 했다. 정당들에 남긴 유서에서는 “먹고살기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열심히 살았다.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한 것뿐인데 윤석열 검사독재 정치의 제물이 됐다”고 했다. 이어 “무고하게 구속되신 분들을 제발 풀어달라”며 “진짜 나쁜 짓 하는 놈들 많지 않나. 그놈들 잡아들이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달라”고 했다.
노동계에서는 건설노조의 교섭 등 노조활동을 ‘공갈’ ‘협박’ 등으로 낙인찍은 정부의 강경 수사가 분신을 불렀다며 규탄했다. 정부가 문제 삼는 ‘조합원 채용 요구’와 ‘노조 전임비’ 등은 일용직 고용과 불법하도급 관행이 심각한 건설업계에서 노조가 요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이라는 것이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과 국제건설목공노련(BWI) 등은 이날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날 선 말과 수사기관의 무리한 법 적용이 두 아이의 아버지인 한 건설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며 인권위에 의견 표명을 요청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오후 6시30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노조탄압에 항거하며 산화한 건설노동자 추모 촛불문화제’를 열고 “건설노조를 향한 폭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더 이상 죽이지 마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정부가 죽였다, 사죄하고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박남신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파주지대장은 “노조 탄압 기획수사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생겼다. 이것은 살인”이라고 했다. 김봉현 건설노조 수도권서부건설기계지부 레미콘지회장은 “(고인은) 노조 활동을 하면서 자기를 희생하고, 노동자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면서 “이런 분에게 공갈·협박이라고 억울한 죄를 씌우다 돌아가셨다. 군사독재정권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수사기관이 답을 정해놓고 대대적 수사를 벌였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경찰이 특진까지 내걸고 전국 건설업체들을 돌며 고발장을 배포하고 신고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건설노조가 이날 공개한 경찰 배포 고발장을 보면, 경찰은 ‘민주노총 교섭위원 ○○○(공란) 등이 채용 강요를 요구’ ‘어쩔 수 없이 노조원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등 내용을 미리 적어둔 고발장 양식을 업체들에 배포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정부는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건설 현장 등 노동시장에서 공정과 노사 상생의 관행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건설노조는 4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5000명 규모로 정부 규탄 상경 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조해람·김세훈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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