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청동초 3학년 故황예서 양을 추모하며
10살 예서야! 안녕.
모르는 사람이 이름 불러서 놀랐지? 아줌마는 예서와 예서 언니 또래의 두 아들(11세, 15세)을 키우고 있는 부산 엄마야. 요즘에는 아줌마라고 안 한다니, 그냥 ‘이모’라고 할까 싶은데, 괜찮겠니? 이모는 신문기자야. 예서가 얼마 전 영도구 청동초 등굣길에서 사고를 당해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에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단다. 예서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는지를 함께 기억하고, 못난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이렇게 편지를 띄워.
이모네 신문사는 사고가 난 지난달 28일부터 오늘(3일)까지 줄곧 이 일을 취재하고 있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안전장치 없이 1.7t짜리 무거운(원통형) 짐을 옮기는 작업을 하다가, 그 짐이 비탈길을 굴러 재잘대며 걷던 예서를 뒤에서 덮친 사고가 왜 났는지,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져 묻고 파헤쳐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어.
예서야, 그날 아침도 다른 날과 비슷했겠지. 8시40분까지 등교에, 걸어서 10~15분 걸리니 늦어도 7시30분쯤 일어나지 않았을까. 중학생 언니랑 함께 쓰던 2층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일어나야지” 하며 토닥거리던 엄마 손길에 벌떡 깨서 엄마 품에 포옥 안겼겠지. 예서 방에 있는 유치원 졸업식 사진을 보니, 반찬 투정 안 하고 밥도 야무지게 잘 먹었을 것 같더라. 이모집 아침메뉴를 생각해보면, 간계밥이나 시리얼, 토스트, 누룽지 중에 하나를 먹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면서 현관문을 나선 그날 이후, “학교 다녀왔습니다”며 힘차게 그 문을 열지 못했구나.
예서야, 네가 다녔던 등굣길은 부산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었기에 이모네 신문사는 40여 일 전 ‘안전하게 만들어 달라’고 여러 번 기사를 썼어. 20년 넘게 예서를 포함해 수많은 청동초 아이가 매일 후문에 있는 높이 2m 넘는 옹벽 위를 안전펜스 없이 다녔잖아. 국회의원, 부산시교육청, 부산시, 영도구, 영도경찰서 등 너희들 안전을 책임져야 할 어른들이 손을 놓고 있었지. 지금 와서 보니 예서가 집을 나와 옹벽에 도착하기 전 지나다니던 그 비탈길도 참 위험했겠구나.
그래서, 정말 안타까워. 그때 학교 주변을 빠짐없이 취재해서 불법 주정차를 일삼는 어른과, 위험한 일을 하는 어른과, 안전하지 않은 펜스를 설치한 어른과, CCTV를 달아서 불법 주정차를 막아 달라는 요구를 무시한 어른 등.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제 할 일을 안 하고, ‘나 몰라라’ 하고 있다며, 빨리 대책을 만들라고 크게 목소릴 냈다면 네가 떠나는 걸 막을 수 있었을까.
얼마 전 아빠가 글을 쓰셨더라. 너무 보고 싶은 예서를 세상 사람이 함께 기억해 주기를 바라신다고. 5월에 예서 생일이 있어서 미리 선물을 사 회사에 보관했는데 전해 주지 못했다고, 일주일 용돈이 정말 적은데도 차곡차곡 모아서 “엄마아빠 생일선물 사 줄거야”라며 애교 넘치는 딸이라고 칭찬하셨단다. 만 8살 꼬맹이가 수건을 3단으로 그렇게 예쁘게 갠다면서? 우린 알잖아, 네 식구가 사는 집 빨래 양이 엄청난 거. 이모집 오빠들은 살살 달래다가 고함을 질러야 겨우 몇 장 개고 도망치는데. ‘예서 최고’라는 아빠 말씀에 이모도 한 표!
예서야, 이모네 신문사는 앞으로도 청동초 등굣길을 취재해서 다시는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힘쓸거야. 그러려면 ‘힘 있는’ 어른이 많이 도와야 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불법 주정차를 하거나 위험에 빠뜨릴 만한 일을 하면 큰 벌을 주고, 차량이 돌진해도 끄떡없는 튼튼한 안전펜스가 필요하고, 안전요원이 등하굣길에 너희를 돕게 하는 그런 법이 필요할 거야. 나쁘고 못난 어른들이지만, 지금부터라도 각자 일을 열심히 해서 지금보다는 더 안전한 등굣길을 만들도록 힘을 모을게.
예서야! 너무 긴 편지에 지루했지? 안전 대책이 많이 늦어 속상하겠지만, 지켜봐 주면 고맙겠어. 그리고 사고 다음 날 가기로 했던 태권도 1품 심사, 그곳에서나마 꼭 통과해서 품띠 메고 엄마아빠 꿈속에 자랑하러 오려무나.
고(故) 황예서 양의 명복을 빕니다.
임은정 메가시티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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