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범벅 공원, 미국과 해결하라

한겨레 2023. 5. 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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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용산어린이정원 개방
용산공원 개방에 앞서 환경오염 정화를 시행할 것을 함께 촉구하는 ‘용산공원, 오염 정화가 먼저다! 만보 걷기’ 행사에 참석한 서울환경연합과 온전한 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지난 4월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미군기지 14번 게이트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왜냐면] 윤미향 | 국회의원

정부는 5월4일 서울 용산구 주한미군기지 반환부지(이하 용산공원) 일부를 ‘용산어린이정원’으로 개방한다. 언론보도를 보면, 정부의 용산어린이정원 개장을 앞두고 주변 초등학교들이 “용산구청에서 용산공원 (어린이) 축구장 사용에 대한 수요조사를 하고 있다”며 “시설 사용을 원하면 신청하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이에 일부 학부모들은 “어린이들을 오염기지에 보내는 게 학교가 할 짓이냐”면서 반발했다.

서울의 중앙에 있는 용산공원은 지리적으로도 중요한데다, 남산~용산~한강의 생태 축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과거 일본군 주둔지를 넘겨받아 주한미군이 사용했고 오래된 유류 탱크와 관로 관리 부실로 기름을 유출해 인체 위해성과 오염정화 문제가 꾸준히 대두했다. 지금 이 공간에 정부가 ‘만 12살 이하 어린이 전용 야구장·축구장’을 조성한 것이다.

우리 의원실 관계자들은 지난해 6월 시범 개방한 용산공원을 환경단체, 전문가들과 함께 방문 조사했다. 당시 용산공원 몇 군데에서 검고 찐득한 기름구멍을 발견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쇠기둥 절단면을 덮기 위해 사용한 접착제와 고무 덮개의 기름기가 빗물과 함께 일부 기둥 안으로 흘러들어 간 것”이라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해명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그리고 정부는 지금 “15㎝ 이상 두텁게 흙을 덮고 잔디 식재나 매트·자갈밭 설치, 지상 유류 저장탱크 제거 등으로 안전 문제 요소들을 원천 차단”했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환경공단의 ‘(용산미군기지) 사우스포스트 환경조사 보고서’를 보면, 전체 면적의 66.1%인 10만8920㎡에서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의 토양오염 우려 기준 1지역(공원·학교용지·어린이놀이시설 등 부지)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왔다. 석유계총탄화수소(TPH) 기준치 500㎎/㎏ 대비 36배, 비소 9.4배, 납 5.2배 등 여러 항목에서 기준치를 초과했다. 석유계총탄화수소(TPH)는 디엔에이(DNA)에 손상을 주고, 비소는 1급 발암물질이며, 납은 체내 축적돼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독성이 발병하는 유해물질이다.

부천시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미군 부대 캠프머서 33만918㎡를 대상으로 토양오염 정밀조사를 했는데, 20% 정도의 토양을 벤젠 등이 오염한 것으로 나왔다. 1993년 미군 부대가 떠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오염이 확인된 것이다.

지난달 25일 정부는 용산어린이정원을 공기 질 측정 방식으로 환경 모니터링해 안전하다고 발표했지만, 정부는 지하 유류저장탱크, 송유관 시설, 기름 유출 범위에 대해 정확히 아는 바가 없고, 전수조사해 본 적도 없다. 자료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용산미군기지 주요 유류 시설물의 위치와 송유관의 위치에 해당하는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정부는 ‘어린이정원 개방’이라는 눈에 보이는 흥행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그냥’ 덮어버렸다.

용산공원의 또 다른 문제는 미군기지 환경정화 비용 처리를 어렵게 하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이다. 정부로부터 직접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2008~2018년) 및 용산 미군기지 주변 지역 환경정화(2002~2021년)에 지출한 비용은 모두 2350억원에 이른다. 소송비용·지연손해금 11억원을 포함한 액수다. 한국 정부가 2350억원을 투입하는 동안 미군은 환경정화비용을 단 한 푼도 지불하지 않았다.

미군은 그동안 부지를 반환할 때 공여 당시의 상태로 원상회복할 의무가 없다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제4조를 근거로 환경오염을 정화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은 환경에 관한 조항이 아니고, 미군에게 공여받은 시설과 구역을 오염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거나, 환경오염을 방치한 상태로 반환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미군은 환경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정화해서 기지를 반환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환경오염자 부담 원칙, 반환부지 원상복구 의무, 피해자 민사청구권에 따른 배상청구 협조를 주도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동안 미군기지 안에서 수차례 환경오염 사고가 있었으나 한국 정부와 미군은 사고 내역과 피해 범위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을 철회하고, 제대로 된 환경오염 정화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뛰어놀게 될 땅이 아닌가. 진정 윤석열 정부는 기름 범벅 ‘아메리칸 파이’를 우리 아이들에게 먹일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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