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형의 여담] 영국의 수학교육 강화, 잘 될 수 있을까

한겨레 2023. 5. 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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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형의 여담]

영국 리쉬 수낙 수상이 잉글랜드 고교생들의 수학교육 강화를 추진하고 나섰다. 수학 문해력 저하 문제가 심각한 만큼 합당한 정책이라는 반응도 있지만, ‘가르칠 사람이 없다’는 현실적 여건을 들어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올해 1월 시작된 영국의 수학교육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논란은 리쉬 수낙 수상이 잉글랜드에서 18세까지 수학교육을 의무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시작됐다.(교육정책은 영국의 자치구역들인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정부가 자체적으로 정한다.) 그는 신년 연설에서 수학교육 확대의 취지와 필요성을 강조한 뒤, 지난 4월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할 전문위원회 구성을 선언했다.

잉글랜드의 중고등 교육시스템은 크게 세단계로 나뉜다. 7학년부터 9학년까지는 대략 우리나라 중학교 과정과 대응된다. 그다음 10학년과 11학년은 ‘일반 고등교육 과정'으로 여겨진다. 7~10개 정도 과목을 수강한 뒤 11학년 말에 시험을 통과하면 GCSE(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라는 ‘일반 고등교육 수료증'을 받는다. 12학년, 13학년 교육은 ‘A-level (advanced-level)' 과정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는 ‘특화 고등교육'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대학진학 준비 성격이 강한 이 마지막 2년은 학생이 상당히 자유롭게 과목들을 선택할 수 있다. 가령 영문학, 역사, 프랑스어까지 인문학적 과목 세개만 수강할 수도 있고, 수학, 물리, 계산과학을 선택할 수도 있다.

짐작하겠지만 이런 교육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었다. A-level에서 듣는 과목 수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학생이 원하면 다섯과목까지 수강할 수 있지만, 세 과목만 수강해도 문제가 없고 대학 입학 때도 그 이상을 요구하지는 않기에 대부분 학생은 관심사에 따라서 딱 세 과목만 듣는다. 수강과목을 늘리자는 이들은 젊은이가 자신의 진정한 적성과 정열을 다양하게 탐구해 볼 기회도 없이 시야가 아주 좁은 상태에서 진로가 결정된다는고 비판한다. 또 수학이나 영어 같은 기초과목 학자나 교육자들이 자기 분야 과목의 의무화를 주기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수낙 수상의 최근 발표는 그동안 GCSE까지만 요구되던 수학 공부를 마지막 2년까지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영국은 ‘수학 문맹' 위기가 심각해 현대경제, 특히 정보와 기술 중심 세계에 젊은이들이 적응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실제 GCSE 수학 과목도 전체 학생의 3분의 1이 시험에서 낙제 점수를 받아 재수강해야 하는데, 재수강 성공률도 20% 수준에 그친다고 한다. GCSE 수학시험만 서너번 봐야 하는 학생도 드물지 않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수학 문해력이 9세 아동 수준을 넘지 못하는 어른이 8백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낙 수상은 ‘수학 외면 문화'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고, 이를 두고 칭찬과 비판이 동시에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비판의 핵심은 두가지다. 첫째 계획을 실현할 국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수학을 배워야 한다면 가르칠 인력부터 확보돼야 하는데, 수학을 가르칠 만큼 실력을 갖춘 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얘기다. 전국교육연구회는 최근 수년 동안 수학전공 학위가 없는 사람을 수학교사로 채용한 공립학교가 전체의 45%라고 밝혔다. 다음으로 이상주의적인 관점에서 개개인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수학공부의 의무화는 오히려 교육적 역효과만 초래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이런 종류 비판들은 수상이 국가건강보험 위기나 물가상승 같은 시급한 문제를 거론하기 싫어서 수학교육을 일종의 방어전략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과 함께 간다.

그런가 하면 여러 문제점을 고려하더라도 수학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일단 좋은 일이라는 의견도 많다. 왕립과학회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선언문을 내놓았고, 런던수학회에서도 적당한 반응을 검토 중이다.

수학교육을 둘러싼 이런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2011~2014년 마이클 고브 교육부 장관 시절에도 크게 한번 일었다. 고브는 역사적 발전의 원동력을 수학으로 해석하는 몇차례 연설과 선언문에서 수학교육의 의무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수학교육이 뛰어난 동아시아 국가들을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 그리고 산업혁명기의 영국과 재차 비교하면서. 하지만 당시 고브의 계획은 여론의 관심과 지지를 얻지 못했다. 당시에 비하면 수낙 총리의 현재 전략은 실현가능성이 좀더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는 가운데 다른 나라의 사정을 잠깐 엿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이 짧은 글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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