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눈·손·귀·입이 즐겁다'···4년만에 찾아온 이천도자기축제
6개 도자기 마을 240여개 공방 참여
각종 체험과 먹거리, 음악공연 선곡도 돋보여
제2중부고속도로 신둔IC를 빠져나가자 곧바로 이천도자기축제가 열리는 신둔면이었다. 가로수의 태반은 이팝나무. 꽃이 밥알(이밥)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3일 오후 영상 25도의 따뜻한 날씨에 힘입어 일제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잔 가지가 흔들리면서 꽃잎을 떨구어냈다. 빈 화분에 꽃잎이 쌓이면 영락없이 고봉밥이었다. ‘쌀과 도자기의 도시’ 이천의 풍성함을 상징하는데 이만한 풍경은 없을 듯 싶었다.
이천도자기축제의 본행사장 이천도자예술마을 예스파크에 도착하자 각 공방마다 거리에 내놓은 도자기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비취색과 흰색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는데 군데군데 화려하게 채색한 도자기들이 자리해 시선의 지루함을 덜어줬다.
이천도자기축제는 지난달 26일 개막, 5월 황금연휴를 관통해 7일까지 도합 12일 동안 치러진다. 긴 축제 기간은 1주 안팎으로 행사기간을 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구분된다. 그만큼 축제의 완성도와 진행이 매끄럽고, 찾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2019년 행사 때만 약 50만명이 행사를 즐겼다.
코로나펜데믹 이후 4년 만에 정상화된 축제는 올해로 37회째를 맞는다. 경기권은 물론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축제 중 하나다. 노동절 연휴가 막 지난 후 평일이어서인지 북적거리는 느낌은 없었다. 그래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려는 이들이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졌다.
이천 도자기를 대표하는 6개 마을의 240여개 공방이 문을 활짝 열고 노상에 매대를 펼쳐 손님을 맞았다. 자기 형태를 뼈대로 삼아 현대적인 감각으로 설계된 개성 넘치는 공방 자체가 작품이었다.
이천시에 따르면 이번 축제 주제는 '삼시세끼의 품격'이다. "삼시세끼처럼 일상화된 도자문화를 알리고 싶다"
는 설명처럼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찻잔, 각종 받침대, 화병 등이 평소보다 20~50% 싼 가격에 판매해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예스파크 중앙 회전교차로를 중심으로 양쪽 직선 도로에 자리한 판매부스에서는 화창한 날씨 속에 나들이를 나온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도공들과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A씨(46·여)는 행도예아트센터 판매부스에서 젊은 여성도공과의 밀당 끝에 6만원짜리 브런치 접시와 2만원짜리 라면그릇을 2개씩 샀다. A씨는 “이만한 가격대에 질 좋은 자기를 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래 친구 B씨도 “모처럼 왔는데 도자기 사는 게 좋지만 산책로도 좋고, 사람이 없으면 드라이브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서 혼자 왔다는 C씨(72·여). 그는 일체의 흥정 없이 공방을 돌며 자신만의 요리를 담을 도자기를 고르고 있었다. 다루기 까다로운 도자기만이 갖는 매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스테인레스를 패스트푸드라고 하면 도자기는 슬로푸드라고 해야 하나요. 도자기는 따뜻함과 차가움을 모두 오래 간직해요. 깨지기 쉬운 만큼 요리에 정성을 더 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애용합니다.”
판매부스 주변으로 안내로봇이 돌아다니며 흥정을 붙이는 것이 노년의 그녀에게는 ‘변화’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C씨는 “안내로봇도 그렇지만 이전보다 도자기 색채가 다양해지고, 공연은 더 현대적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미숙(63·여)씨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분청사기를 판매부스에 펼쳐놓고 있었다. 그는 “2002년 도자기 엑스포가 설봉공원에서 할 때 처음 행사에 참가했다”며 “꼭 돈을 번다기보다는 내 작품을 선보이는 기회가 모처럼 만에 돌아와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5년 작고한 남편 공영래씨의 유작을 자신의 진열장 가운데 배치해 놓고 있었다. 러시아까지 알려졌던 유명 도공인 남편도 아내 덕에 사후에도 21년 째 축제에 참가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날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곳은 뭐니뭐니해도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존이었다. 도자기와 손이 직접 맞닿는 물레와 핸드페인팅을 통해 아이들은 특유의 ‘손맛’에 빠져든 듯 했다.
각각 10살, 8살 된 아들과 딸이 물레체험을 하는 장면을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주던 박준수(43·성남 분당구)씨는 “와이프가 직장에 나가면서 추천해 처음 왔는데, 작가들의 세계를 아이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어 좋고, 무엇보다 집중력을 키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물레체험과 핸드페인팅을 돕던 이천세라믹랜드 대표 김향숙(62·여)씨는 “노동절 때만 해도 하루 100명이 넘는 사람이 찾아 체험을 하려고 줄을 섰다”며 “오늘은 가족들이 많이 왔지만 휴일에는 연인들이 많이 데이트 코스로 활용한다. 소문이 좋게 나 이제는 전국에서 찾아온다”고 말했다.
축제의 흥미를 더해주는 풍성한 음악공연도 하루 종일 이어졌다. 여느 지방자치단체 행사 공연의 공식지정곡 같은 트로트 대신
아닌 전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선곡이 돋보였다.
축제의 즐거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는 이천쌀, 인삼 등 특산품을 활용해 독특한 풍미를 자랑했다. 다가오는 황금연휴(5월5일~5월7일)에 눈과 손 그리고 귀, 입이 즐거운 이만한 나들이도 찾기 어려울 듯 했다.
김경희 이천시장은 "도자기축제를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드릴 수 있도록 오랜 기간 준비해왔다"며 "도자기축제를 통해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관광도시로 이천이 도약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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