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회 백상] "이것도 현실" 변화 속 역대급 감동 터진 연극상
백상연극상 작품 '당선자 없음'
연기상 배우 하지성
젊은연극상 극단 지금아카이브
감동에 감동을 더했다. '국내 유일무이 종합예술시상식'의 취지와 의미를 또 한 번 완벽하게 완성 시킨 연극부문이다.
지난 달 28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개최되고 JTBC·JTBC2·JTBC4·틱톡에서 생중계 된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부문은 백상연극상, 젊은연극상, 그리고 성별 구분 없이 처음으로 통합 된 연기상까지 3개 부문 수상자를 배출했다. 부활 5년 째를 맞은 연극부문은 해를 거듭할 수록 존재감을 높이며 감동의 소감, 그리고 명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올해는 백상연극상 '당선자 없음', 젊은연극상 극단 지금아카이브, 연기상 하지성 배우가 수상자로 무대에 올랐다.
심사위원들은 "2019년부터, 55회 백상예술대상부터 연극부문이 부활 돼 어느덧 다섯 번째 수상자(작)를 배출하게 됐다. 지난 5년 동안 연극부문은 후보에 오르는 것 만으로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심사 과정에서 연극부문의 후보들 하나하나에 우리 연극이 나아가야 할 미래지향적 가치를 담아냈기 때문이다"며 "올해부터 연기상을 남녀 구분 없이 하나로 통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기상이 하나 줄어든 대신 내년에는 연극부문의 상이 하나 더 늘어나기를 기대해 본다"고 총평했다.
백상연극상은 치열한 논의 끝 이양구 작가, 이연주 연출의 '당선자 없음'으로 결정됐다. 심사위원들은 "법질서가 심각하게 흔들리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아주 시의적절하게 포착했다"고 전하며 "이 작품은 광범위한 리서치를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이 제정되는 과정을 무대화함으로써 '공정'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는 법 또한 특정 시대 사회구성원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임을 주지 시켜 주었다. 이 공연은 지난 1년 동안 생산된 창작극 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겠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와 관련 올해 연극부문 심사위원들은 최종 후보 확정 단계에서 코로나 시대와 직결되는 부분으로 제작 극장인 두산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작품들이 다수 선정된 사실에 주목하기도 했다. 백상연극상 수상작 '당선자 없음'을 비롯해 '편입생'과 '웰킨'에서는 각각 연기상 후보가 나왔으며, '클래스'의 작가가 젊은연극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됐다.
심사위원들은 "'두산인문극장2022:공정'의 타이틀 아래 진행된 공연과 강연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을 직시하게 해줬다"며 "코로나 이후 두산아트센터와 같은 안정적인 제작 극장과 달리 민간 극단과 소극장들은 여전히 제작 환경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신촌 극장 공연작들이 후보에 오른 사실도 고무적이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더욱 존재감이 빛나고 있는 신촌극장은 대체로 젊은 창작자들의 실험성 넘치는 작품들이 이어지고 있어 각별히 주목을 끈다"고 전했다.
두산아트센터 김요한 프로듀서는 "'당선자 없음'이 연극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 만으로도 기뻤다. 수상까지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정말 영광이다. 영화·방송부문 후보자와 수상자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축하 드린다"며 "'당선자 없음'은 2020년부터 준비한 프로젝트였다. 코로나로 인해 사업들이 연기 됐다가 지난해 두산인문극장 공정 기획 첫 작품으로 올라가게 됐다. 헌법을 만드는 과정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제작 방송사를 배경으로 노동자의 취약한 권리와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낯선 주제와 첨예한 공정의 이슈 담아내야 했기에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제작진들이 많이 애써 주셨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 와 보니까 우리가 미디어 콘텐트 산업 중앙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고 말한 김요한 프로듀서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연극과 극장이 어떤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 된다. 소외된 자를 살피고 공정함 속 상심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에 역할을 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연극과 예술을 사랑하는 배우, 스태프, 그리고 관객 분들 가족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응원의 마음 전한다"고 인사했다.
젊은연극상은 극단 지금아카이브에게 돌아갔다. 심사위원들은 "지금아카이브는 지속적인 리서치, 워크숍, 창작자 캠프 등을 수행하면서 이를 공연으로 연결시키는 독특한 집단이다. 최근에 공연한 '코미디캠프'와 '조금 쓸쓸한 독백과 언제나 다정한 노래들'은 젊은 극단의 발랄하면서도 창의적인 작품성이 빛났다. 특히 배선희 작가, 김진아 연출의 '조금 쓸쓸한 독백과 언제나 다정한 노래들'은 공연과 전시가 함께 어우러지고 관객의 수행성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공연으로 집단창작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조금 쓸쓸한 독백과 언제나 다정한 노래들'을 쓰고, 언니 역할로 직접 연기한 배선희는 "극단 지금아카이브의 연극을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께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조금 쓸쓸한 독백과 언제나 다정한 노래들'은 혼자로 남겨져서 아주 아주 외롭고 아픈 여성, 하나를 생각하며 만든 연극이다. 저는 이 연극에서 언니가 되어 하나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하나와 함께 먹고 싶은 맛있는 시금치 커리를 끓였다"고 운을 뗐다.
"서로를 먹이고 살리는 시간을 매회마다 10명의 관객 분께서 함께 살아주셨다. 이 연극을 사랑하고 하나와 언니의 곁을 지켜주신 마흔 명의 관객 여러분께 특별히 고맙다"고 인사한 배선희는 "우리는 모두 혼자가 될 때가 있다. 저도 자주 하나가 된다. 하지만 연극을 하는 동안 깨달았다. 언니에게 하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오직 단 한 명 뿐인 하나라는 것을. 하나가 죽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연극할 수 있길 바란다"는 진심을 남겼다.
김진아 연출은 "지금아카이브는 선희와 저, 그리고 지구라는 창작자가 함께 하는 작은 극단이다. 그간 저희와 협업해 주신 동료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덕분에 계속할 수 있었다"며 "어떤 연극을 준비하던 2016년 겨울에는 일기에 이런 말을 썼습니다. '벌판 위에 집을 짓는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젊은 연극인들이 외로움과 불안 속에서 작업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각자가 하고 싶은, 보고 싶은 연극을 향해 계속 가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창작지원 제도, 기관에 관계하는 분들께서는, 젊은 연극인들이 긴장을 덜고, 소진되지 않으며 작업할 길을 계속 찾아주시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또 "이 작품은 아주 구체적인 다정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그 다정함은 하나를 살리기 위해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절망 속에서 같이 있다. 이 연극을 만들면서 저는 언니들을 자주 생각했다. 제가 떠올린 언니들은 고립과 소진, 단절 이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각자의 절망 이후로도 생생하게 살아있고, 웃고, 스스로를 살리고 또 누군가에게 다정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심지어 어떤 다정은 죽음 이후로도 이어진다. 세상의 많은 언니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고 덧붙였다.
올해 연극부문에서 주목도를 높인 지점은 단연 연기상 통합이다. 올해부터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은 남자연기상과 여자연기상을 '연기상'으로 수여하기로 했다. 심사위원들은 "이는 최근 많은 연극들에서 여성·남성의 단순한 젠더 구분이 사리지고 있고, 배우의 선천적인 성별만으로 연기를 구분하여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배역 또한 인간을 벗어난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고 있는 동시대 연극의 변화상을 반영한 것"이라며 "배우가 휴먼이 아닌 AI를 연기하거나 동물, 사물, 비가시적인 존재 등 근미래 연극에 등장할 다양한 역할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배우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겠다는 태도의 표명이다"고 설명했다.
통합 첫 수상자는 배우 하지성이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하지성 배우는 최근 '여기, 한때, 가가' '틴에이지 딕' '장애, 제 3의 언어로 말하다' 등에서 무르익은 연기력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특히 '틴에이지 딕'에서 당당히 주연을 맡아 195분의 긴 러닝타임을 시종 열정 넘치는 연기로 관통하며 무대를 압도했다"는 찬사를 보냈다.
하지성은 이 날 오로지 백상예술대상만이 선사할 수 있는 감동의 주인공이 됐다. 수상자로 호명되고,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부터 한 편의 감동 콘텐트의 오프닝 그 자체였다. 수상 소감은 그 방점을 찍었다.
"티비를 보고 계신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예술인 동료 선후배 여러분, 그리고 여기에 계신 방청객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틴에이지 딕'에서 리처드 역을 맡은 배우 하지성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하지성은 "여기에 올라서 보니까 비장애인 환경에서 제가 리처드 역으로 생각한다면 학생들 사이에서 제가 학생회장이 된 것 같군요!"라며 "2분 안에 말해야 하는데, 장애를 이용해서 1분만 더 쓰겠습니다"라는 위트 넘치는 인사로 순식간에 좌중을 몰입 시켰다.
이어 "'틴에이지 딕을 연기하면서 많은 대사량과 3시간 동안 무대에 있는 것 자체가 무섭고 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님과 배우들이 그 힘듦을 알아줘서, 계속 무대에 있으려고 하고 무대에서 연기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많은 대사량을 조금이라도 도전하고 싶어서 무대에 있는 것도 있다. 그런 것 다 기다려주고, 같이 인정해 주었던 신재훈 연출님 현경 조연출님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끝으로 하지성은 "이 상은 되게 저에게 무겁다. 왜냐면 저는 연기를 잘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대에서 잘하려고 하고, 잘하고 싶고, 계속 인물로서 무대에 존재하려고 하고 있다. 제가 여기까지 오르는데 20대부터 함께했었던 연극 단원들과 함께 이 영광을 누리고 싶다. '나 이렇게 큰 상 받았어!'"라고 외친 후 "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에게 한 마디 하겠다. '이것도 현실이에요.' 제 몸을 지키고 건강할 수 있는 그러한 배우, 그걸 제 자신으로 알아가는 그런 배우가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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