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기업, 드레스덴에 7조원 투자…EU ‘반도체 블록화’ 속도
“드레스덴은 의심의 여지 없이 유럽을 이끄는 디지털의 횃불입니다.”
2일 독일 동부 작센주 드레스덴에서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독일 반도체 기업 인피니언이 50억유로(7조3000억원)를 들여 이곳에 새로 짓는 ‘스마트 파워 팹’ 착공 행사에 나란히 참석한 것이다. 이 공장에선 2026년부터 전기자동차에 쓰이게 될 반도체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두 인물이 동시에 행사에 참석했다는 사실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이들이 쏟아낸 발언이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착공식 연설에서 “현재 반도체 (생산) 세계적 중심지는 대만과 한국이며, 언제든 긴장이 고조될 수 있는 지역이다. 무역에 약간의 차질이라도 생기면 유럽의 강력한 산업 기반과 시장에 즉각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지정학적 위험이 얼마나 급격하게 증가했는지를 모두 경험했다”며 “여기 유럽에서 매우 중요한 반도체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예 독일 첨단산업단지가 자리한 드레스덴을 유럽을 이끄는 ‘횃불’이라 불렀다. 숄츠 총리도 “반도체는 풍력 발전소에서 충전소에 이르기까지 모든 변환 기술의 기초”라며 이번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럽연합은 이 공장에 곧 입법이 마무리되는 ‘반도체법’을 근거로 전체 투자금의 20% 정도인 10억유로(1조4000억원)를 보조금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지난달 18일 역내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뼈대로 한 430억유로(63조3000억원) 규모의 반도체법을 제정하기로 합의했다. 법이 채 만들어지기도 전에 보조금 지급을 약속한 것이다.
유럽이 인피니언의 새 공장 건설을 버선발로 환영하고 보조금을 쏟아붓는 것은, 이대로 상황을 방치했다간 미래 산업 경쟁에 뒤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반도체 수요의 20%를 차지하는 3대 소비시장이지만,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 미만이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설계 전문) 기업은 많지만, 생산 능력은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산업의 핵심인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이 막히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지난해 8월 중국과의 경쟁을 의식해 총 527억달러(약 69조5000억원)에 이르는 지원책을 담은 반도체지원법(칩과 과학법)을 제정하자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이다.
유럽연합은 새로 만들어지는 반도체법을 통해 반도체 생산 세계시장 점유율을 현재(9%)의 2배에 해당하는 2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유럽연합은 반도체법에 쏟아붓는 돈이 430억유로라고 밝혔으나 자체 예산으로 조달하는 돈은 33억유로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각 회원국 예산과 민간 자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또 미국 정부가 투자액의 최대 40%를 세액공제 형태로 보조해주는 반면, 유럽연합 보조금은 투자금의 20% 정도다.
또 다른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에너지 위기다.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하지만, 전쟁 이후 전기료가 급등했다. 여러 회원국 합의가 필요한 유럽연합 구조상 보조금 집행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임금이 높은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이를 보여주듯 세계 최대 자동차부품 업체인 독일 보슈는 지난달 미국 반도체 기업 티에스아이(TSI)를 인수했다. 이들은 15억달러를 들여 유럽에 새 공장을 짓는 대신 미국 캘리포니아의 차량용 반도체 생산 공장을 현대화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더리(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티에스엠시(TSMC)도 지난해 드레스덴에 투자를 검토한다는 대만 언론의 보도가 있었지만,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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