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을 믿어서는 안 됐다"... 고 이예람 중사 부모 인터뷰

김주형 2023. 5. 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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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이예람 중사가 2021년 5월 21일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중사가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2차 가해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수사는 공군에서 국방부로, 국방부에서 특검으로 이어졌다. 총 20명이 군인등강제추행, 면담강요,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 씨와 어머니 박순정 씨는 이 중사의 사망 사건과 관련된 재판을 직접 보기 위해 1년 넘게 매주 법원을 찾고 있다. 뉴스타파는 고 이예람 중사 사망 2주기를 앞두고 이주완, 박순정 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고 이예람 중사의 어머니 박순정 씨와 아버지 이주완 씨. 뉴스타파는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 이예람 중사 장례식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고 이예람 중사 장례식은 아직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 중사의 시신은 경기 성남 소재 국군수도병원 영안실 영하 15도 냉동고에 안치돼 있다. 아버지 이주완 씨는 장례식장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추모공간 옆에 있는 방에 사건 자료들을 쌓아놓고 생각날 때마다 다시 읽고 메모한다. 공군, 국방부, 특검으로부터 받은 수사 자료에는 아버지 이주완 씨가 남긴 메모가 가득했다.

저는 이 사건이 생기고 나서 햇수로 3년 동안, 685일 동안 예람이와 같이 소통하고 아침저녁으로 교감하면서 여기서 숙식을 하고 있습니다. 특검 재판이 진행될 때마다 계속 가고, 작년에는 국방부 군사법원 재판에도 갔습니다. 장례식장이 집이 돼 버렸습니다. 소파에 상당한 양의 서류를 깔아놓고 한 장씩 한 장씩 들여다보면서 계속 궁금할 때마다 찾아서 복기하고 또 기억해 내고 새로운 건 체크합니다. 
-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 씨

딸이 죽었다 군을 믿었다

2021년 3월 4일, 성추행 사건 직후 이주완 씨와 박순정 씨는 충남 서산에 있는 이예람 중사 소속 부대를 찾았다고 한다. 거기서 만난 이 중사의 직속 상관과 대대장은 부모에게 피해자 보호를 약속했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2차 가해가 벌어졌고 가해자·피해자 분리도 2주 가량 지연됐다. 아버지 이주완 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군이 우리를 속였다”고 말했다.

바로 그 일(성추행)이 있을 때, 그 다음날 내려가서 반장 노OO 준위하고 김OO 대대장을 만났어요. ‘아버님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해자가 인정했습니다, 가해자와 이예람 중사를 분리시켰습니다’ 그러더라고요. 가해자가 ‘나는 죽기로 용서를 구한다’라고 했다면서 ‘병사를 따로 배치해서 가해자를 감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아니에요. (가해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탄원서를 받고 있었어요. 군이 우릴 속인 겁니다.
-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 씨

고 이예람 중사가 사망하고 사건 전말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공군 수사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2021년 6월 2일, 국방부 장관은 공군에서 국방부로 수사권 이관을 명령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 박순정 씨는 군을 믿었다고 했다. “딸이, 가족이 오랫동안 자랑스러워했던 군을 믿었다”고 했다.

군에 대한 불신이 시작된 계기는 국방부의 중간수사 결과라고 했다. 이 중사의 죽음과 관련해 아무것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국방부 검찰단은 성추행 사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군검찰을 기소하지 않았고, 군의 조직적인 사건 은폐 의혹도 밝히지 못했다. 고 이예람 중사의 가족들은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당하고 부대 내에서 고립된 끝에 죽음에 이르게 된 책임이 어디에 있는 지를 국방부 수사결과로는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아무 것도 없는 중간수사 결과를 가지고 왔어요. 이해가 안 됐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이 자리는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는 자리다. 이렇게 오실 필요가 없는 자리였다’라고요. ‘그냥 가시라’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
- 고 이예람 중사 어머니 박순정 씨

유족들은 특검을 요구했다. 군이 아닌 민간에서 사건을 수사해야 진상규명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2022년 4월, 특검법이 통과됐고 100일 간의 수사를 거쳐 8명(3명 중복)이 추가로 재판에 넘겨졌다. 성추행 사건 초동 수사 담당자와 2차 가해에 가담한 지휘관의 직무유기, 허위보고 혐의가 드러났다. 국방부 수사 때는 밝혀지지 않았던 성추행 사건 가해자 장 모 중사의 명예훼손 혐의, 공군본부 전익수 전 법무실장의 특가법상 면담강요 혐의도 확인됐다. 지난 2월 9일, 장 모 중사는 특검 재판에서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사람들

고 이예람 중사는 성추행 사건 직후인 2021년 3월 3일과 28일, 4월 14일 세 차례에 걸쳐 휴대폰 메모장에 유서 형태의 글을 작성했다. 4월 15일에는 성고충상담관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도 보냈다. '우울감이 정신을 집어삼키는 것 같다', '이러다 일 치를 것 같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성고충상담관이 작성한 피해자 상담지원 일지에는 사건 직후부터 사망 전까지 이 중사가 부대 내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2차 가해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성추행 사건 직후 작성된 이예람 중사에 대한 피해자 상담지원 일지

어머니 박순정 씨는 이 중사가 사망하기 한 달 전 나눴던 대화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식탁에 앉아서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생생하고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예람이가 식탁에 올려놓은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엄마, 사실은 내가 너무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때 상담관한테 장문의 메일을 보냈고 자살방지센터에도 보냈어’라고 얘기했어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딸이 그 정도로 괴로워하고 그 정도로 군이 사건을 무마하려고 시도하는지 몰랐거든요.
- 고 이예람 중사 어머니 박순정 씨

박순정 씨는 자살은 하지 않을 거라던 딸의 말을 믿은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제가 너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 딸이 벌떡 일어나 손을 들면서 저에게 ‘엄마, 우리 산책 가자. 그런데 엄마 나는 자살은 안 할 거야’ 라고 말했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저는 그 말을 믿었어요. 강한 아이였고, 제게는 친구이자 상담자 같은 딸이었는데, 그렇게 떠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어요.
- 고 이예람 중사 어머니 박순정 씨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예람 중사 추모 공간

고 이예람 중사의 위태로운 상황은 특검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심리감정서'에도 잘 나와 있다. ‘고 이예람 중사가 성추행 사건 직후 자살 관련 위험성이 급격히 높아졌고, 믿었던 상관으로부터 2차 가해를 당한 뒤, 또 타 부대로 전속간 뒤 높은 수준의 무기력감과 좌절감을 경험했다’고 적혀 있다. 이 중사가 소속된 부대의 지휘관과 수사를 담당한 군검찰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2차 가해를 방치했다는 사실이 특검 재판에서 드러났다.  

지난 3월 24일 열린 재판에서 한 피고인이 고 이예람 중사의 자살 암시 문자를 언급하며 “어떤 문구가 자살암시냐”고 물어본 것을 두고 어머니 박순정 씨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한 피고인의 변호사가 질문했었잖아요. ‘어느 부분이 자살암시냐’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 화가 났어요. 내가 알고 있는데 왜 변호사는 그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저렇게 얘기할까 싶었죠. 예람이는 피해자잖아요. 그리고 예람이는 지금 살아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 말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예람이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딸에게 너무 미안하고...
- 고 이예람 중사 어머니 박순정 씨

가족이 다시 모여 살 수 있기를…

고 이예람 중사는 생전 별명이 많고, 밝은 딸이었다. 어버이날에 아버지 이주완 씨에게 전화 해 “아버지 저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던 딸이었다. 자신의 생일에는 어머니 박순정 씨에게 “세상빛 보게 해줘서 고맙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딸은 애칭이 되게 많았어요. 어떨 땐 땡이라고 불렀다가 어떨 때는 애롬이라고 불렀다가 어떨 때는 딸랑구라고 했다가 그때 그때 다르게 불렀어요. 예람이 생일이 4월 27일인데, 생일 날 저에게 ‘엄마, 예람이 낳아줘서 세상빛 보게 해줘서 고마워’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그 문자가 너무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추억이 모두 아픈 기억이 됐어요. 지난 2년 동안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 고 이예람 중사 어머니 박순정 씨

고 이예람 중사가 생전 어머니 박순정 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지난 2월 9일, 공군은 고 이예람 중사의 죽음을 순직으로 결정했다. 이 중사가 사망하고 1년 8개월만에 나온 결정이었다. 이번 결정으로 이 중사는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게 됐다. 이 중사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될 지는 추후 국가보훈처 심사를 통해 결정된다. 

오는 6월, 특검이 기소한 피고인 6명에 대한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아버지 이주완 씨는 “딸의 사망과 관련된 재판이 모두 끝난 뒤에도 진상규명 직업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박순정 씨는 “사건 책임자로 기소된 사람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고, 가족들이 다시 모여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김주형 Fellow-jh@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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