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빈 지적한 김갑수, 고약한 꼰대철학[스경연예연구소]

이다원 기자 2023. 5. 3. 17: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매불쇼’에 등장한 문화평론가 김갑수, 사진|영상 캡처.



문화평론가 김갑수가 ‘소신’으로 가장한 발언들로 도마 위에 올랐다. 제59회 백상예술대상 대상을 받은 박은빈의 수상 태도를 두고 ‘배우의 품격’, ‘나이’ 등을 들먹이며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송혜교, 탕웨이가 하는 행동 정도가 교과서”라고 누구도 시키지 않은 수상 품격에 대한 정의를 내리더니, 그 프레임에 박은빈을 가두고 “송혜교에게 배워라”며 훈계도 서슴지 않았다. 누구나 문화를 평론할 순 있지만 그 누구도 생각을 강요할 순 없다는 걸 그는 잠시 잊은 것일까.

김갑수의 발언이 문제가 된 건 지난 1일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서다.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관해 다루던 중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대상을 받은 박은빈의 수상 소감을 두고 “스피치가 달려서 모든 시상식에서 ‘감사합니다’라고 끝나는 건 포기 상태다. 어쩔 수 없다. 거의 전 수상 소감 코멘트 80~90%가 누구누구한테 ‘감사합니다’라고 한다”라고 운을 뗐다.

‘제5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받은 박은빈. 나무엑터스



그는 진행을 맡은 최욱이 “그건 진심이에요”라고 말하자 “진심은 개인적으로 표하면 안 되나. 3시간짜리 시상식 자체도 하나의 프로그램이다. 개인적으로 감사한 거야 알아서 할 일이고, 자기의 생각이나 작품할 때 어려움 같은 여러 가지를 얘기할 게 많을 것 같은데”라며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아와서 스피치가 안 되는 건 포기하겠다. 그런데 대상을 받은 박은빈, 훌륭한 배우고 앞으로도 잘 하겠지만 울고 불고 코 흘리면서 아주”라고 말했다.

이어 “시상식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타인 앞에서 감정을 격발해서는 안된다. 훌륭한 배우이기 때문에 아끼는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대상에 호명되니 무대에 나오기까지 30번 이상 절하면서 나온다. 여배우가 주위에 모든 사람에게 꾸벅꾸벅. 이게 무슨 예의냐. 그러다가 자빠지고. 팡파레 터지니까 (놀라고) 나와서 엉엉 울고. 품격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심지어 18살도 아니고 30살이나 먹었으면”이라며 “모든 시상식장에서 자기 생각을 말했으면 좋겠다. 기쁜 건 알겠는데 코 흘리고 울며불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지들 마라. 모든 수상자가 절을 수없이 한다. 그게 예의 있다고 생각하는데, 과거에는 안 그랬다. 심화가 됐다. 탕웨이·송혜교가 하는 행동 정도가 교과서니까 보라”라고 덧붙였다.

그의 주장에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수상의 기쁨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어째서 ‘감정의 격발’인 것일까. 격발로 해석한다손 치더라도, 어떠한 경우에도 왜 타인 앞에선 감정을 격발해서는 안 될까. 18살이 격발하는 건 이해 받아도, 30살이 격발하는 건 어째서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인가. 감사한 마음에 수십번 고개 숙여 절하는 것은 품격이 없기 때문인 걸까.

사진|박은빈 SNS 캡처



게다가 박은빈은 수상 당시 김갑수가 지적한 ‘자신의 생각과 작품할 때 어려움’을 언급했다. 그는 “‘우영우’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가 조금이나마 자폐 스펙트럼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길 바랐다. 세상이 달라지는데 한몫을 하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작품을 하면서 적어도 이전보다 친절한 마음을 품게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전보다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다름’이 아닌 ‘다채로움’으로 인식하길 바라면서 연기했다”며 “내가 배우로서 우영우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으로 다가서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하고 많이 두려웠다. 처음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맞닥뜨릴 때가 있었는데 좌절을 딛고 마침내 끝낼 수 있어 다행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대체 김갑수는 박은빈의 ‘무엇’이 언짢았던 것일까.

김갑수는 3일 iMBC와 인터뷰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자기 감정 절제의 미덕이 없이 마구 토로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사회 모습이라고 생각해 왔다”며 박은빈은 그저 이런 이야기의 소재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시상식의 경우에 두 가지를 지적한 것이다. 하나는 스피치의 내용이 없고, 개인을 향한 감사 인사만 반복된다는 부분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에는 최소한의 감정 억제가 필요하다. 스스로 감격한 것을 눈물로만 드러내는 것이 너무 일반화되어 있다”며 “이번 시상식은 특히나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스피치 내용도 없고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고, 코를 훌쩍거리고, 꾸벅꾸벅 절하는 모습을 세계가 지켜본다는 점을 인식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며 발언의 의도를 설명했다. ‘매불쇼’에서 다하지 못한 얘기가 있었다며 유명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과도한 감정 몰입에 대한 지적까지 얹었다.

김갑수도 박은빈 못지 않게 발언에 무게가 실리는 직업, 문화평론가다. 방송에서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서만큼은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발언 의도를 또 다른 매체를 통해 재차 설명해야할 정도로 오해받게 말한 거라면, 그건 그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해명 자체도 개운하지 않다. 감정 절제를 미덕이라고 여기는 부류가 있다면, 가식 없이 솔직한 표현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선행과 악행을 구분하듯 가를 순 없는 문제다. ‘무엇이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냐’의 정답은 저마다 다르다. 자신이 생각하는 ‘성숙하지 못한 사회 모습’을 박은빈의 수상 소감에서 발견했다손치더라도, 그것을 두고 ‘30살이 어쩌고’ ‘품격이 어쩌고’라는 문구로 폄하할 필욘 없다. 감정 절제의 미덕을 강조하면서, 왜 자신의 발언에 실린 감정적 코멘트들을 거를 생각은 못하는 것인가.

김갑수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건 박은빈에 과하게 몰입한 감정 싸움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맞고 내 틀에 맞지 않는 너는 틀리다’라고 생각하는, 이른바 ‘꼰대 철학’의 고약한 냄새가 났기 때문은 아닐까. ‘유연한 사고의 미덕’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다원 기자 edaone@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