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보면 엄마 얼굴이 자꾸 마녀로 변해요" [책볼래]
끝없는 절망에서 용기 내어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전하는 엄마와 친구, 이웃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조현병, 낯선자와 떠나는 여행
"조현병을 악하고 천벌 정도로 여기는 한, 우리는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계속 배척할 것이며 그들의 가족을 계속 버려둘 것이다. 조현병에 걸린 젊은이들이 아직도 죽어가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해 보려고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호주의 유명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 언론가인 앤 데버슨이 아들 조너선이 열 일곱살 되던 해 조현병이 발병하자 그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날 때까지 매해 일어난 7년 동안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낸 기록이다.
조너선의 출생과 유아기의 전조, 정신병적 상태의 조너선이 때론 폭력적이지만 때론 연약하고 섬세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얼마나 깊이 엄마와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치료를 거부하면서 방황하다 결국 약물 남용으로 사망하는 과정까지 생생하게 묘사한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처럼 여운을 남긴다.
아들이 정신질환을 앓는 모습은 너무나 생생하다. 엄마로서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벽창호 같은 의료계 사회 체제와 마주하면서 무너지는 고통을 면밀하게 드러냈다.
조현병(schizophrenia).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와해된 행동, 정서적 감정장애 등의 증상이 주로 나타나고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는 질환으로, 얼마 전까지만해도 전신분열증이나 정신병이라는 부정적인 이름으로 불리웠다.
저자는 조현병을 가족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보는 대신, 연대의 힘을 믿고 사회와 체제의 적극적인 관심을 요구하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나선다. 그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엄마와 아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이해와 지지가 필요한 수 많은 질병 중 하나임을 깨닫게 한다.
조현병에 대한 편견은 뉴스를 통해 우리에게 고스란히 주입된다. 정신질환자가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누군가를 해코지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대부분 그들을 격리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한다. 때로는 사회 저명인이나 가족이 범죄를 저지르고는 법정에서 심신미약 등 정신적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법망을 빠져나가려 할 때 다가오는 박탈감은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을 더 키우게 한다.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실제 일반인보다 크게 낮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발표에 따르면 강력 범죄 중 조현병 환자에 의한 범죄율은 0.04%에 불과하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에서도 2017년 전체 범죄 중 일반인구(3.93%)보다 낮은 0.136%였다. 조현병 환자의 소행이라고 말하는 범죄의 많은 경우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부분 그 사건이 잊혀진 후에야 밝혀진다.
살인 등 위험한 경우는 대부분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된 경우다. 그마저도 가족들이 적절한 치료를 위해 많은 시도와 호소를 했을 것이다.
조현병에 대한 또다른 편견은 유전적 질환으로 보는 경우다. 가족력이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전으로 발병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전 세계적으로 100명 중 1명이 크고 작은 증세로 발병한다고 보고 되고 있다.
저자는 아들의 조현병 발병에 억울하고 분했다고 고백한다. 본인이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적절한 치료를 해주지 않아 결국 아들은 약물 남용으로 사망했다. 이들 옆에 있던 사람은 이웃과 친구, 또 다른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이었다.
부끄러운 실수와 고된 일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아들과 엄마가 뒤얽혀 엮어내는 드라마는 또다른 감동을 준다. 아들의 치료를 위해 누구나 그러하듯 하지 말아야 했을 여러 시도까지 해본다. 아들을 끌고 인도로 떠나고 제도를 바꿔보겠다며 유럽과 미주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 과정에서 만난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권위자인 칼 로저스, 로버트 랭, 플러 토리 등 저명한 인물들과의 인터뷰 기록과 과정도 고스란히 이 책에 남아 있다.
옮긴이는 이 책의 원서 '텔 미 아임 히어'(Tell Me I'm Here)를 조너선이 살던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거주하다 길에서 구입한 헌책 묶음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번역을 하게됐다고 한다.
이 책의 감수자인 정동선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자들을 포함한 그 가족과 이웃이 겪는 고통을 아주 현실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며 "원제 '텔 미 아임 히어'는 아들인 조너선이 급성정신병적 상태일 때 엄마에게 한 말로, 아마도 자신이 혼란을 겪고 있을 때도 스스로 여기 엄마 옆에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조현병을 악하고 두려운 천벌 정도로 여기는 한, 우리는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계속 배척할 것이며 그들의 가족을 계속 버려둘 것이다. 조현병에 걸린 젊은이들이 아직도 죽어가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해 보려고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30년 전인 1993년 호주에서 발간되었음에도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닮아있다. 우리 사회의 인식이 여전히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2016년 작고했다. 부정적 사회인식을 바꾸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조현병 환자와 가족들의 권익을 위한 전국 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현재 SANE이라고 불리는 국가단체인 '호주 조현병'(schizophrenia Australia)를 설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책이지만 호주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이 다큐멘터리의 기록은 강물처럼 흘러 여전히 끝없는 절망에서 용기 내어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앤 데버슨 지음ㅣ황수연 옮김ㅣ책책ㅣ480쪽ㅣ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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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민수 기자 maxpres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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