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가전서 희비 갈린 삼성·LG…생활가전사업부장 부재 때문?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반도체, 스마트폰과 달리 생활가전사업에서 유독 난항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에도 경쟁사인 LG전자에게 처참히 패배했다. 특히 지난해 말 생활가전사업부를 이끌던 이재승 전 삼성전자 사장의 돌연 사의로 한종희 부회장이 생활가전사업부장을 비롯해 DX(디바이스경험)부문장,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장까지 겸직하면서 사업의 집중도가 다소 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VD(영상디스플레이)·생활가전사업부 영업이익은 1천900억원으로, 전년 동기(8천억원)의 4분의 1수준에 그쳤다. 직전 분기(영업손실 600억원) 대비로는 흑자전환했으나, 증권가 컨센서스(4천억원)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반면 경쟁사인 LG전자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LG전자의 올해 1분기 H&A(가전)·HE(TV)사업본부 합산 영업이익은 1조2천191억원으로 전년 동기(6천340억원) 대비 92.3% 증가했다. 합산 매출은 11조3천813억원이다.
특히 H&A가 1분기에 영업이익 1조원을 넘어선 것은 분기 기준 최대 기록이다. 이번 H&A 영업이익은 LG전자 연결 기준 전체 영업이익의 68.0%를 차지했다. H&A 매출도 전년 동기와 견줘 0.6% 늘어난 8조217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율을 보면 LG전자가 지난해 1분기와 비슷하게 가전을 판매하고도 더 많은 수익을 낸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견실한 실적을 거둔 것이다.
◆TV 수익성 개선된 삼성, 생활가전이 '문제'
삼성전자는 해운 운임 하락과 더불어 철, 레진 등 주요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완화되면서 전체 고정비 부담이 줄었음에도, 올해 1분기 동안 LG전자 가전·TV 사업 영업이익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실적을 냈다.
특히 글로벌 시장서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TV 사업 부진이 뼈 아팠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 VD·가전 매출은 14조800억원으로 전년 동기와 견줘 9% 감소했다. 이 중 VD 매출은 7조4천300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15% 줄었다. 다만 LG전자도 TV 사업을 담당하는 HE의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7.4% 감소한 3조3천596억원에 그쳤다는 점에서 시장 불황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가전 분야에선 상황이 다르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 가전 매출은 6조6천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줄었다. 소폭 감소세지만, LG전자 H&A 매출이 다소 증가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아쉬운 결과다. 삼성전자가 VD와 가전의 영업이익을 따로 밝히진 않지만, VD의 올해 1분기 수익성이 전년 동기 대비 개선했다는 점을 비춰보면 가전 사업 수익성이 LG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또 VD·가전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6천100억원 줄어든 것도 가전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두 업체가 밝힌 실적 설명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삼성전자는 1분기 VD·가전 실적과 관련해 "VD는 시장 비수기와 글로벌 경기 침체 영향으로 TV 시장 수요가 위축된 가운데 프리미엄 TV 판매에 주력하고 운영 비용을 절감해 전분기 및 전년 동기 대비 모두 수익성이 개선됐다"며 "생활가전은 부진한 수요와 이로 인한 경쟁 심화로 비용 부담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반면 LG전자는 사업 구조 및 오퍼레이션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워룸(War Room) 태스크 등의 전사적 노력으로 역대 최고 수준 경영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H&A 사업과 관련해선 "고효율·친환경 제품의 매출이 대폭 늘었고, 기존 프리미엄 가전의 경쟁우위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볼륨존에 해당하는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는 투트랙 전략이 최대 실적 달성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H&E 실적 역시 "웹OS 플랫폼 기반 콘텐츠·서비스 사업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다 정교한 시장 수요 예측을 기반으로 오퍼레이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더해지며 수익성을 대폭 개선, 흑자 전환했다"고 분석했다.
◆잘 나가던 '비스포크'…삼성, 세탁기 품질 문제 후 신뢰 '뚝'
업계에선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실적이 엇갈린 것을 두고 지난해 세탁기 품질 문제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지난 2019년 '비스포크'를 론칭한 후 생활가전 사업에서 다소 성과를 드러냈지만, 세탁기 문제가 불거진 후 실적은 점차 고꾸라지는 분위기다.
실제로 2020년 1분기에 양사 TV·가전 영업이익은 삼성전자가 4천500억원, LG전자가 1조793억원으로, 격차는 6천293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2021년 1분기 양사의 영업이익 격차가 2천37억원으로 크게 줄었고, 2022년 1분기에는 삼성전자가 LG전자의 영업이익을 1천640억원이나 넘어섰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세탁기 강화유리 품질 문제가 논란이 된 후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의 분위기는 급속 냉각됐다. 리콜 명령까지 받으며 가전 브랜드 이미지에 금이 가면서 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기 67.1% 급감한 2천500억원에 그쳤고, 같은 해 4분기에는 6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양사의 TV·가전 영업이익 격차는 1조291억원에 달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양사의 제품력 차이가 실적을 갈랐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LG전자가 '코드제로 A9'으로 다이슨을 밀어내고 프리미엄 무선청소기 시장에서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는 초반에 내놓은 '파워건'이 단종된 데 이어 '제트'를 내놨지만 점유율은 20~30%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TV, 냉장고 외에 선도하는 제품이 거의 없다는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경쟁사가 개척한 시장에 후발주자로 진출하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앞세워 그동안 덩치를 키워 왔다. 하지만 지난 2019년부터 가전 사업 혁신을 위해 소비자 수요를 반영한 신개념 맞춤형 가전을 먼저 내놓는 '퍼스트 무버' 전략으로 선회했으나,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다. 특히 공기청정기, 의류관리기, 건조기 등 신가전에서 경쟁사 제품을 쫓아가는 데 급급했다.
업계 관계자는 "후발주자가 신가전을 개발할 때는 앞서 출시된 경쟁사 제품의 특허나 디자인 등을 피해 출시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비용 등이 더 많이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며 "패스트 팔로워 전략은 새 성장 가전의 판매량뿐 아니라 수익성 면에서도 부담을 가중 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제품군 강화도 여전히 숙제다. 백색 가전 시장에선 저가 공세에 나선 중국에 치이고 있는 데다 프리미엄 시장에서 '오브제 컬렉션'으로 인정 받고 있는 LG전자, 독일 밀레 등과 비교 시 다소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도 '비스포크 인피니트 라인'으로 프리미엄 시장에 대응하고 있지만, '비스포크'를 처음 론칭할 때 20~30대 젊은 층에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위해 가성비를 강조했던 것이 걸림돌이 됐다"며 "'비스포크=가성비'란 인식이 강하다 보니 '비스포크 인피니트'에 대한 인지도가 프리미엄 시장 안에서 경쟁사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듯 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삼성전자의 가전 시장 내 위치가 애매하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라며 "삼성전자 가전 경쟁력이 중국 저가 제품과 LG전자, 밀레 등 프리미엄 업체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 같다"고 덧붙였다.
◆일거리 집중된 한종희…삼성 가전 위기 극복 위해 '안간힘'
일각에선 한 부회장이 맡고 있는 역할이 많아 사업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도 다소 영향이 있다고 봤다. VD사업부는 용석우 부사장이 부사업부장을 맡아 한 부회장을 지원하고 있지만, 생활가전사업부는 한 부회장이 혼자 맡고 있는 상태다. 무선사업과 네트워크를 담당하고 있는 MX사업부도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이 담당하고 있지만, 한 부회장은 이를 모두 총괄하는 DX부문장을 맡고 있다는 점이 부담 요소다. 결국 한 부회장이 총괄하는 곳은 생활가전과 VD, 무선사업, 네트워크 등 4개의 세트 사업부로, 짊어져야 할 짐이 상당히 많다.
업계 관계자는 "한 부회장이 지난해 초 VD 사업부장직까지 맡았던 것은 워낙 자타 공인 국내 최고 TV 전문가였던 만큼 대체할 인물이 많지 않았던 데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업무 소화가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며 "생활가전사업부에서도 한 부회장 만큼 추진력이 강한 인물을 내부에서 찾기 힘들어 이처럼 운영되고 있지만, DX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사다난한 생활가전사업부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생활가전 사업에서 성과를 나타내려면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해 12월 선행 연구개발 조직인 삼성리서치 산하에 차세대 가전연구팀을 신설했을 뿐 아니라 외부 인재 수혈과 잡포스팅(사내구인)을 통해 생활가전사업부 인력을 보강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난 3월 21일 공개한 '비스포크' 신제품 라인업에선 한 부회장과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의 고민이 그대로 녹아 있는 듯한 제품들이 대거 출시됐다. 특히 전력 효율화와 친환경, 연결성을 중점으로 둔 프리미엄 제품들이 다양하게 구성돼 눈길을 끌었다.
한 부회장은 "세계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친환경 기능을 결합한 제품으로 올해 어려운 시장 상황을 뚫고 나갈 것"이라며 "비스포크 가전 판매는 작년 대비 50%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프리미엄 제품 판매 확대를 통해 지난해처럼 적자가 발생하는 일이 상반기 내에는 없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사진=김성진 기자(ssaji@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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