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떨어져도 ‘빚 다이어트’는 계속…부채 감소, 마냥 반갑지 않은 이유는[머니뭐니]

2023. 5. 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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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은행 대출금리가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가계의 대출 수요 감소세는 오히려 더 빨라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시작된 가계의 ‘빚 다이어트’ 열풍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불아난 가계부채 문제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가계부채 감소 현상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최근의 가계부채 감소 현상 기저에는 자산가격 하락이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급격한 하락은 금융시장에 더 큰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금리 떨어져도 대출 안 받아…“자산가격 회복 기대심리 있어야”

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4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77조5000억원으로 전월 말(680조8000억원)과 비교해 3조3000억원가량 감소했다. 대출금리 상승세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 대출 규제 영향으로 지난해 4분기 가계신용(포괄적 가계 부채)은 약 10년 만에 감소세로 전환한 바 있다.

주목할 점은 올해 은행권의 대출금리 인하세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가계대출 수요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3월 5대 은행이 취급한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4.69~4.84%로 금리 수준이 가장 높았던 지난해 11월(4.95~5.51%)와 비교했을 때, 상단이 약 0.7%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1분기 5대 은행의 가계대출 감소액(11조8000억원)은 지난해 4분기(3조9000억원)과 비교해 3배가량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대출금리와 대출 수요는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물품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가 증가하는 원리와 같이, 금리(가격)가 떨어지면 대출 수요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대출금리 하락이 계속된다고 해도, 가계대출 규모는 꾸준히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대출 수요의 또 다른 결정 요인인 ‘자산가격’ 때문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대출을 받아 소비하는 데 활용하는 비중이 높지 않고, 자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 대출 수요가 자산가격에 연동돼 나타난다”며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면, 소폭의 대출금리 인하세가 나타나더라도 대출이 늘어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 경기 악화와 최근의 전세사기 우려 등으로 주택 관련 대출의 감소세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대출금리 상승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늘어나던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월 말 기준 509조원으로 전월 말(511조2000억원)과 비교해 2조2000억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감소액(1조5000억원)과 비교해 50%가량 늘어난 수치다. 전세대출 잔액 또한 올해 들어 감소 속도가 빨라졌다.

‘고질병’ 가계부채 줄어들지만…‘버블’ 우려는 그대로

가계부채의 감소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과도한 가계부채가 한국 사회의 고질병 중 하나로 여겨지는 탓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신용 비중은 104.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등 주요국 중 최상위권에 속한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부채 상승 속도가 빠르게 나타나며, 경제성장률 악화 등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나타나는 가계부채 감소의 이면에는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가격의 하락이 있다. 그리고 빠른 속도의 자산가격 하락은 단기간에 ‘부동산 버블’을 꺼트리는 요인으로 작용해 금융시장에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주요 수단 중 하나인 통화정책의 효과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자칫 ‘잃어버린 30년’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 또한 나온다.

안 교수는 “현재는 형성된 버블이 꺼져가는 과정인데, 결국 속도조절을 통한 연착륙이 중요한 상황이라는 얘기”라며 “여기서 부동산 가격이 더 빠른 속도로 폭락하게 되면 금융시장에 큰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있고, 반대로 금리 수준을 급격히 낮추면 다시금 자산가격에 불을 붙일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리 운용에 있어 물가뿐만 아니라 자산가격 변동을 면밀하게 살피는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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