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기업이 크다고 미워할 수는 …
산업 생태계에 손 자주 대면
빅테크 기업이 자랄수 없어
거기서 美와 EU 차이가 갈려
제임스웹 망원경이 보여주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은 우주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알록달록한 성운과 은하까지의 거리도 거리지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빛의 하모니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렇듯 크다는 것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의 땅으로 돌아와서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생명체를 찾아보자. 언뜻 생각하면 우영우가 좋아하는 흰수염고래 혹은 대왕고래가 그 답일 것 같지만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사실 그 답은 한 가지로 정해질 수 없다. 먼저 크다는 것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
체적을 기준으로 삼으면 미국 캘리포니아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있는 '제너럴 셔먼'이란 이름의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강력한 후보다. 수령 2200년이 족히 넘는 이 나무는 체적이 1200㎥를 넘는다. 그러나 길이나 높이를 그 기준으로 삼으면 호주 태즈메이니아의 유칼립투스 나무나 보르네오섬의 '메나라'로 불리는 나왕(Yellow Meranti) 나무가 제너럴 셔먼을 능가한다. 이들은 축구장 길이인 105m에 육박하는 높이를 뽐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과학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더 복잡해지는데 그 이유는 개체라는 개념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버섯과 곰팡이를 포함하는 균류는 서로 얽혀 있어서 한 개체의 경계를 구별하기조차 쉽지 않다. 켈프와 같은 해조류도 상황이 비슷하다. 실제로 이들은 움직이는 동물보다 조용하고 나무보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훨씬 큰 거인이다. 가장 큰 버섯은 대왕고래 몇 마리를 합친 것보다 무거우며, 메마른 땅에 퍼진 균류는 그리스 면적과 맞먹는 거대한 생체 구조물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비즈니스 세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예전과는 달리 다양한 기업이 협력하고 생태계를 구성해서 공동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점차 보편화되면서 특정 행위나 결과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판단하기도 어려워졌다. 이런 귀속의 올바름이나 정당함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조차 애매할 때도 많다.
1000원을 내고 스마트폰으로 영화 한 편을 보려면 스마트폰은 물론 콘텐츠 제작, 패키징 및 배포, OTT 등 플랫폼, 인터넷 통신망 등이 한 번에 어우러져야 한다. 이들은 1000원을 어떻게든 나눠 가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기업은 '제너럴 셔먼'처럼 커지고 또 다른 사업자는 메나라처럼 도드라질 것이다. 초목이나 꽃이나 심지어 균류의 역할을 하는 사업자도 있겠다.
여기서 큰 것이 영양분을 많이 가져간다고 내치거나 제한하는 것이 과연 1000원을 이미 낸 소비자에게 얼마나 득이 될지 모르겠다. 일단 무엇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그런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실제로 자기 입맛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정원을 설계하고 나무와 꽃과 이끼를 여기저기 심는 것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미국 반독점법의 기틀을 세운 '셔먼법'(제너럴 셔먼과는 다른 상원의원 셔먼)도 단 3개의 조항으로 기본 원칙만 천명하였다. 그 덕분에 미국은 오늘날 혁신과 규제의 균형을 통해 전 세계를 휩쓰는 테크 자이언트와 그들의 생태계를 키워낼 수 있었다. 이에 반해 EU 집행위원회(EC)는 끊임없이 정원을 만들고 보수한다.
정원에서 제너럴 셔먼과 같은 나무를 키워낼 수 없는 것처럼 유럽은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빅테크도 없다. 우리도 플랫폼, 이통사와 같은 큰 기업의 횡포를 막고자 법안을 만들고 새로운 사업자를 들인다고 하는데, 가지치기나 흙갈이만 하고 정원까지 만들지는 않았으면 한다.
[김도훈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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