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품던 공간, 작품이 되다

도재기 기자 2023. 5. 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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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
건축가·사진가·디자이너 등 13인 참여
미술관의 기둥·창문·전시도면 등 재해석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신진작가 발굴전인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이 열리고 있다. 사진은 중앙홀에 설치된 작가팀 뭎(조형준, 손민선)의 영상·설치작품. 도재기 선임기자

예술작품 감상을 위해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은 작품 말고도 많은 것들을 만난다. 벽과 기둥·창문·계단 같은 건축 요소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간, 안내도 같은 각종 자료들, 독특한 분위기 등이 대표적이다. 작품 관람 행위와 시각적·비시각적 미술관 구성 요소들이 섞이면서 관람객은 저마다의 미술관 경험을 축적한다. 미술관의 주인공은 작품과 감상이지만 부수적으로 여겨지는 다양한 ‘조연’들로 미술관 경험은 더 깊고 넓어진다.

오늘도 많은 관람객이 찾는 미술관을 작가적 시선으로 다채롭게 재해석해 미술관, 미술관을 둘러싼 각종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드는 전시가 마련됐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 전이다. ‘젊은 모색’ 전은 1981년 ‘청년작가전’으로 출발해 가장 역사가 긴 신진작가 발굴 프로그램이다.

올해 전시는 시각예술계에서 색다른 작업방식 등으로 최근 주목받는 건축가, 공간·가구·그래픽 디자이너, 미디어아티스트, 사진가 등이 참여했다. 김경태, 김동신, 김현종, 뭎(손민선·조형준), 박희찬, 백종관, 씨오엠(김세중·한주원), 오혜진, 이다미, 정현, 조규엽, 추미림, 황동욱 등 13인(팀)이다.

이들은 제도적 공간인 미술관을 저마다의 관점·경험·분석을 바탕으로 재해석해 다양한 작품들로 승화시켰다. 시각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드러내 보이면서 미술관에 대한 인식의 지평도 넓혀준다. 미처 보지도, 생각하지도 않은 것들을 들춰내 미술관을 둘러싼 관람객의 경험을 보다 풍성하게 이끈다. 전시는 ‘공간’ ‘전시’ ‘경험’ 등 3개 소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돼 1~2전시실과 중앙홀에서 선보인다. 전시장은 시인들의 시로 시작돼 참여 작가들의 인터뷰로 마무리된다.

미술관을 자주 찾는 관람객들이 대부분 무관심하게 지나친 미술관 구성 요소들을 어엿한 작품으로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감독이자 미디어아티스트 백종관의 ‘섬아연광’ 설치 전경 일부(왼쪽, 사진 김주영, 국립현대미술관 제공)와 관람객들의 관람 모습(사진 도재기 선임기자) .
제1 전시실 전경 일부(왼쪽, 사진 도재기 선임기자)와 제2 전시실 전경 일부(사진 김주영,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씨오엠(김세중, 한주원)의 작품 ‘미술관 조각 모음’(왼쪽)과 조규엽의 ‘바닥 부품’. 사진 김주영,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가 김경태와 건축가 김현종은 미술관의 핵심 건축 요소이지만 애물단지로 여겨지는 기둥을 주목했다. 김현종은 재미라고는 없는 콘크리트 사각 기둥이 조형미를 뽐낼 수도, 앉아 쉴 수도, 감각을 자극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철판과 무늬목·거울을 재료로 기둥을 새롭게 봐 기존 편견·통념을 깨는 것이다. 김경태의 사진들은 같은 기둥도 시점, 카메라의 화각, 확대·축소 같은 크기 변화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보여지는지를 일깨운다. 실제 미술관 기둥들과 사진 속 기둥들을 함께 보며 새삼 사진의 매력, 착시현상 등도 떠올리게 된다.

안무와 건축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뭎은 중앙홀을 설치작품 전시공간으로 삼았다. 큰 규모와 높은 층고·창문 등으로 작품이 공간 특성에 압도당할 수 있어 작가들이 전시를 꺼리는 곳을 특유의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 흥미를 돋우는 곳으로 변화시켰다. 중앙홀의 특성들을 주목한 뭎은 힌두교 신들의 상징성을 차용하고, 관람객의 체험을 유도하며 공간들을 연결·소통시키는 중앙홀처럼 갖가지 것들을 융합시키는 상징적 의미의 ‘용광로 공간’으로 만든 셈이다.

공간·가구 디자이너들에게 미술관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씨오엠은 미술관 구석구석의 갖가지 형태를 포착해 책상 같은 일상 가구로 여겨지는 작품으로 빚어냈다. 조규엽은 명확한 용도나 목적을 가지지 않은 여러 형태의 작품으로 관람객이 앉거나 기대는 등 다양한 행위를 가능케 한다. 공간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어떻게 만나게 할지 고민한 결과물로 관람객들이 공간을 더 창의적·적극적·주체적으로 활용하기를 기대한다.

김동신의 작품들 설치 전경(왼쪽)과 오혜진의 작품 ‘미술관 읽기’ 설치 전경 일부. 사진 김주영,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박희찬의 작품 ‘리추얼 머신’(왼쪽)과 추미림의 작품들 전시 전경 일부. 사진 김주영,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래픽 디자이너인 김동신·오혜진은 미술관의 옛 전시 관련 정보들을 담은 자료에서 영감을 받았다. 김동신은 전시도면·상량문 등을, 오혜진은 포스터·리플릿·티켓 등을 미술관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색다른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영화감독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인 백종관은 관람객들의 시선·동선을 주목한 영상·설치작을 선보인다. 작가가 여러 겹의 막으로 구획해 놓은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저 멀리 영상이 막에 뚫린 구멍으로 보이거나 보이지 않기를 반복한다. 동선과 시선의 미묘한 변화, 막으로 빚어진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건축가 박희찬은 아예 관람객의 동선을 종교 공간에서의 순례에 비유하며 건축적 기계장치를 선보인다. 관람객이 유리구슬을 굴리면 구슬은 긴 복도 등 미술관 공간을 은유하는 곳들을 차례로 지나가는데, 구슬이 곧 관람객인 셈이다.

전시기획자인 정다영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향후 ‘젊은 모색’ 전이 나아갈 방향성을 보다 확장된 시각으로 탐색하고자 건축·디자인을 처음으로 참여시키는 등 장르·매체를 보다 확대했다”며 “그동안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미술관의 공간, 전시, 경험에 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사유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의 다채로운 감상, 전시 주제에 대한 논의 확장을 위해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필자로 참여하는 단행본도 발간되며, 큐레이터 토크·퍼포먼스·작가와의 대화, 김리윤·박세미·임유영 시인의 시 낭독회 등 연계 행사도 마련됐다. 전시는 9월10일까지.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 전의 전시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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