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상습체불 사업주 경제적 제재 강화…“근본대책은 빠져”
정부가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 제재 범위도 전체 체불액의 60%가량이 들어갈 수 있도록 넓힌다. 그러나 반의사불벌죄 폐지, 임금채권 소멸시효 확대 등 노동계가 요구해 온 임금체불 근절 대책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상습체불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매년 임금체불 규모는 1조3000억원이 넘고, 피해 노동자가 24만명이다. 특히 두 번 이상 체불하는 경우가 전체 체불액의 80%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상습체불 사업주는 신용제재·명단공개 등의 경제적 제재를 받는다. 신용제재 대상은 대출이나 신용등급 평가를 받을 때 불이익을 받는다. 그러나 상습체불 사업주 요건이 엄격해 체불 예방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노동부는 제재 실효성 강화를 위해 상습체불 사업주 요건을 ‘완화’한다. 최근 1년간 노동자 1인당 3개월분 이상 임금을 체불하거나 5회 이상 체불하고 체불액이 3000만원 이상인 사업주로 제재 대상을 넓히기로 했다. 현재는 3년간 2회 이상 임금체불로 유죄가 확정된 사업체 중 1년간 체불액이 3000만원 이상이면 명단공개, 2000만원 이상이면 신용제재 대상이다. 이 장관은 “새 기준으로 보면 전체 체불액의 60%에 해당하는 8000억원, 약 7600개소”라고 설명했다.
제재 수준도 높이기로 했다. 상습체불 사업주는 정부·지방자치단체 보조·지원사업 참여를 제한하거나 공공입찰 시 감점을 받도록 하는 근거를 근로기준법에 마련한다.
노동부는 또 퇴직자뿐 아니라 재직자 체불임금에 대해서도 지연이자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한다. 2005년 도입된 지연이자 제도는 체불사업주가 법정이자(상법 연 6%)보다 높은 연 20%의 이율을 부담하게 해 신속한 체불임금 변제를 유도할 수 있다. 다만 지연이자 적용대상이 ‘사망 또는 퇴직으로 근로관계가 종료된 노동자’로 한정돼 있다.
건설업에서 체불 사건이 발생하면 불법 하도급 여부를 조사해 추가 행정조치가 이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이 장관은 “일본이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클 텐데 임금 체불액은 우리가 18배 정도 많다”며 “상습체불은 마약 같다.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개선은 됐으나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 근본적인 대안은 빠졌다’고 평가했다.
임금체불에 대한 반의사불벌죄는 2005년 도입됐다. 사용자에게 합의 동기를 제공해 체불임금 청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인데 ‘합의 종용’이란 부작용이 빈발했다. 직장갑질119는 “반의사불벌죄로 인해 임금을 떼인 노동자에게 합의를 강요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고, 심지어 근로감독관도 합의를 종용한다”며 “임금체불죄를 반의사불벌죄로 두고 있는 것 자체가 임금체불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내고, 당연히 전액을 다 받아야 할 노동의 대가(체불임금)를 하루라도 빨리 받기 위해 감액된 금액으로 합의를 하게 만든다”고 짚었다.
재직자 체불임금에 대해서도 지연이자를 물리는 방안은 담겼지만 지연이자를 근로기준법상 임금으로 간주하는 내용은 빠졌다. 지연이자를 미지급해도 임금체불이 아니니 사업주는 그간 처벌을 받지 않았다. 결국 노동자가 민사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 박성우 노무사는 “지연이자까지 체불임금으로 계산해 노동부의 지급지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임금채권 소멸시효 확대도 빠졌다.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임금체불죄의 공소시효가 3년에서 5년으로 확대됐지만 임금채권 소멸시효는 여전히 3년이다.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대책도 이번에 나오지 않았다. 현재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제도는 내국인 노동자에게도 적용되는 대지급금제도(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일정 범위의 체불임금을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것)와 외국인근로자고용법상 임금체불보증보험제도가 있다. 임금체불보증보험의 한도는 1인당 400만원에 불과하다. 대지급금제도는 ‘농·어업 중 법인이 아닌 자의 사업으로서 상시 노동자 수가 5명 미만인 사업’에는 적용할 수 없다. 이 장관은 “(대지급금제도) 적용을 받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챙겨보겠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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