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보증금채권 공공 매입? “정가 매입은 피해자 반대, 고가 거래는 배임 성립”

윤희훈 기자 2023. 5. 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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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전세보증금채권 공공 매입 후 피해자 보상 방안 주장
캠코, 개인 채권 매입 사례 없어
채권 매입 열려도 피해자 보증금 80% 손실 불가피
전세 사기 여파에 서울 빌라 경매 낙찰률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매에 나온 빌라 10채 중 9채 넘게 주인을 찾지 못해 유찰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3일 서울 강서구의 한 빌라 밀집지역. /뉴스1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전세 보증금에 대한 채권을 공공이 매입한 후 피해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안을 야권에서 주장하고 있지만, 공공이 매입 가능한 가격이 보증금의 극히 일부에 불과해 실질적인 구제 수단은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들의 구제 차원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채권을 고가에 매입할 경우, 회사에 손실을 끼쳐 업무상 배임이 성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일 채권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캠코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보유한 연체 채권을 매입하는 사업을 하고 있지만, 개인의 채권을 직접 매입한 적은 지금까지 없다.

캠코는 연체 채권의 매입 가격을 회계법인 평가를 통해 결정한다. 회계법인에서는 채권의 금액과 연체 기간 등을 고려해 채권의 가치를 평가한다. 캠코는 회계법인이 평가한 금액을 기준으로 매입 결정을 내린다. 채권 매입 가격을 결정할 때 자금 회수가 얼마나 가능한지를 중점적으로 따진다.

만약 캠코가 전세보증금채권에 대한 매입을 진행하게 된다면, 개인 채권에 대해서도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권한이 부여되면 전세보증금채권을 매입해서 얼마나 회수가 가능한지에 대한 회계법인의 평가를 진행하게 된다.

전세보증금채권의 가격은 해당 전세사기 물건의 경매 예상가에서 선순위 근저당 등을 제외한 금액을 토대로 산정된다. 선순위 근저당이 거의 없어 전세보증금채권으로 돌아올 몫이 많다면 채권 매입 가격도 그만큼 높아진다.

문제는 전세사기 피해가 극심한 인천 미추홀구의 경우 선순위 근저당이 많아 전세보증금채권으로 돌아올 몫이 적다는 것이다. 가구별로 차이가 있지만 근저당이 많을 경우 채권 매입 가격이 10~20%밖에 안될 것이라는 게 채권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캠코 사무실 내부. /한국자산관리공사 제공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사례 가운데 경매가 유찰된 물건을 살펴보면 1억2000만원의 임차인 보증금과 새마을금고의 선순위 근저당권 1억7700만원이 설정돼 있다. 해당 물건의 경매 낙찰가가 1억7700만원 이하인 경우 보증금 채권으로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0원이다. 2억원에 낙찰이 돼야 겨우 230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구조다.

경매 낙찰 예상가가 2억원으로 추산되는 경우, 캠코에서 매입할 수 있는 채권 매입 최고금액은 2300만원으로 책정된다는 얘기다. 전세사기 피해자들로선 1억2000만원의 보증금 중 2300만원만 돌려받고 9700만원에 대해선 손실을 확정해야 한다. 피해자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손실 규모다.

이 때문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달 27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 브리핑에서 “추심업체와 캠코의 운영제도로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니 평가액이 (보증금의) 10% 이하 또는 최대의 경우에도 20% 이하로 나온다. 피해자들은 (보증금의) 10~20%를 받고 채권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캠코가 피해자 구제 차원에서 채권을 회수 가능한 금액보다 더 비싸게 매입할 경우, 기관이 손실을 입게 된다. 배임죄로 볼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캠코가 공공기관이라는 점에서 채권 매입을 통해 큰 이익을 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손실을 보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재무적 손실과 함께 기관 평가에도 부정적 요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보증금에 대한 구제 방안 중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받기 위해 실행한 전세대출 채권을 매입하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영향으로 금융기관 대출을 연체한 개인채무자의 연체 채권을 캠코가 매입하는 ‘금융 취약층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코로나19로 소득원을 상실해 대출을 갚지 못한 개인 채무자가 가혹한 채권 추심을 받지 않도록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다만, 이 같은 방안은 피해자들 간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낸 사람은 구제 대상이 되는 반면, 개인이 저축해둔 자금으로 전세금을 낸 사람은 구제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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