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만 의존 지나쳐” 반도체 자립 속도내는 EU... 유럽 내 생산 강화
지원법 힘입어 공장 투자 줄이어
독일 최대 반도체社 인피니언, 7조 투자 공장 첫 삽
인피니언 CEO “유럽의 미래 건설”
글로벌 생산 공장 유치 경쟁 치열
유럽은 여전히 한국과 대만 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이곳은 언제든 긴장감이 고조될 수 있는 지역이다. 우리 모두는 지정학적 위험이 얼마나 급격하게 커졌는지 경험하고 있다. 유럽 내 반도체 대량 생산을 더 늘려야 한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언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2일(현지시각)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독일 최대 반도체 기업 인피니언 팹(공장) 기공식에서 한 말이다. 폰 데어 라이언 위원장은 “반도체 대량 생산은 오랫동안 우리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으나, 궁극적으로 이것(반도체 생산) 없이는 모든 것이 중단될 수 있다”며 유럽의 첨단 반도체 자립을 강조했다. EU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반도체 소비 시장에 속한다.
전 세계 주요국이 반도체를 ‘경제 안보’ 핵심 품목으로 꼽으며 자국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인피니언이 EU 반도체 지원에 힘입어 역대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드레스덴에 짓는다. 이날 첫 삽을 뜬 인피니언은 공장 설립에 50억유로(약 7조3800억원)를 투자하고, EU 반도체법을 통해 10억유로(약 1조4700억원)를 지원받을 예정이다. ‘스마트 파워 팹’이라고 불리는 이 공장에서는 2026년부터 12인치(300㎜) 전력 반도체를 생산한다.
요헨 하네벡 인피니언 최고경영자(CEO)는 이 자리에서 “전 세계 반도체 수요는 재생에너지와 데이터센터, 전기차 등 높은 수요 덕분에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며 “우리는 생산능력을 크게 늘려 아날로그 및 혼성신호 반도체, 전력 반도체를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 공장은 전 세계에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공장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곳에서 새로운 장을 열고 유럽의 미래를 건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EU는 지난달 18일 아시아와 미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역내 반도체 산업 육성에 430억유로(63조4500억원)를 지원하는 반도체법 시행에 합의했다. 이를 통해 반도체 생산 능력을 4배 키워 2030년까지 EU의 세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기존 9%에서 20%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유럽엔 반도체 생산을 외부에 위탁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가 많아 한국, 대만 등에 비해 생산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데, 이런 약점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통 큰 지원 덕에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도 줄을 잇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대만 TSMC는 유럽 내 처음으로 독일 드레스덴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조율 중이다. 미국 전력 반도체 제조업체 울프스피드도 유럽 첫 공장으로 독일 자를란트에 27억5000만유로(약 4조원)를 투입, 세계 최대 최첨단 실리콘카바이드(SiC) 반도체 생산 시설과 연구개발 센터를 짓는다. 전체 투자 금액의 20%는 독일 정부의 보조금이 투입된다.
최근 영국 팹리스 ARM과 손잡은 미국 인텔은 앞서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메가 팹’이라 불리는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데 170억유로(약 25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 역시 독일 정부가 전체 공사비의 40% 이상을 보조금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스위스 전력 반도체 업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도 이탈리아에 7억3000만유로(약 1조원) 규모의 통합 SiC 웨이퍼(반도체 기판) 공장을 건설한다. 투자액의 30%는 이탈리아 정부가 지원한다.
세계 각국의 반도체 공장 유치 경쟁은 인재 확보와 맞물려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코트라(KOTRA) 파리무역관 관계자는 “EU는 해외 기업의 제조 공장 유치는 물론, 해외 인재 확보와 육성에도 대대적인 투자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며 “시스템 및 차량용 반도체에 투자를 늘려가는 국내 기업들과의 경쟁이 한층 더 심화하겠으나, 유럽 내 생산 설비 수요가 증가하면서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진출 기회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시행 후 유럽, 일본, 한국이 모두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마련한 데 이어 대만도 반도체법 막바지 조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만 정부는 전날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 세액 공제 조건과 최저 법인세율 12% 등의 내용을 담은 대만판 반도체법의 하위 법령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은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규정을 충족할 경우 5세대 이동통신(5G), 전기차, 저궤도 위성 등 첨단 기술 분야 업체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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