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수지 추락하는데, 위기는 아니라고?
■ 가파르게 꺾인 경상수지
우선 우리 경상수지 흐름부터 봅니다. 통계청이 제공하는 데이터는 1980년부터입니다. 참고해서 월간 단위와 주간 단위로 막대 그래프를 그렸습니다.
우선 최근 하락세가 완연합니다. 분기 기준으로는 지난 2021년 3분기(235억 달러 흑자), 월간 기준으로는 2021년 5월(113억 달러 흑자)을 정점으로 꺾였습니다.
그리고 떨어지는 기울기가 가파릅니다. 물론 기저효과도 작용합니다. 최근 몇 년 막대그래프의 키가 굉장히 컸습니다. 길게 잡으면 대략 2012~3년부터 10여 년, 짧게 보면 코로나 이후 2년 안팎, 막대그래프가 참 높고 좋았습니다. 그렇게 좋았으니, 최근의 악화가 더 크게 느껴지는 요인도 있습니다.
■ 1997년, 2008년 위기를 닮았나?
여기서 조금 더, 경상수지가 악화되었던 시점들을 살펴보시죠. 두 번의 살펴볼 만한 기간이 있습니다.
우리 경상수지는 역사적으로 만성적 적자를 기록하다가 80년대 후반 반짝 흑자 기조를 이어가더니(흑자 폭은 크지 않습니다. 경제 규모와 무관치 않겠죠.) 90년대 다시 적자 기조로 돌아섭니다.
그러다가 90년대 후반, 첫 번째 이상 징후가 보입니다. 95년 이후 적자 폭이 점점 커집니다. 그러다 1997년 1분기, 76억 달러 적자로 정점을 찍습니다. 그 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너무도 명확히 기억합니다. IMF 외환위기가 왔습니다. 외채 빚을 너무 많이 내서, 단기 채무를 너무 많이 내서 흥청망청 쓰다가 위기가 왔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경상수지를 보면 이미 위기 신호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2005년 이후도 한번 살펴보시죠. 2006년, 2007년, 2008년... 계속 듬성듬성 적자가 발생합니다. 이때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미국 월가의 탐욕이 일으킨 위기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흥국으로 그 위기의 지진해일에 휩쓸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역시 경상수지를 보면 뭔가 과거와 달리 위태로운 분위기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입니다. KDI 김준형 박사(경제 전망실 모형총괄)는 "2020년 4/4분기를 기준으로 경상수지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일각에서는 경상수지의 하락을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나 대외건전성 악화로 해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경상수지의 흐름을 보면 위기로 다가가는 초입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겁니다.
■ 교역조건의 악화 탓
그래서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KDI는 우선 경상수지의 단기적 변동만 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경제의 펀더멘털이나 경쟁력을 결정하는 그 이면의 원인을 봐야 한단 겁니다. 그러니까 흑자나 적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수지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을 분석해야 한다는 건데, KDI는 세계교역량, 교역조건, 원화가치 상승요인들의 서로 다른 영향, 그리고 국내 소비 흐름의 변화를 그 요인으로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교역조건'과 '내수' 두 가지 변수로 설명에 나섭니다.
우선 교역조건이 악화되어 실질소득이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교역조건은 수입 가격과 비교한 수출 가격입니다. 수입 가격이 늘면 교역조건이 악화되고, 수출 가격이 내려가도 교역조건은 악화됩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원유와 가스 등 에너지 수입가격이 상승하는 동시에, 반도체 가격 등 수출가격이 하락했습니다.
이에 따라 실질 국내총생산(GDP)에다 교역조건을 반영한 실질 국내 총소득(GDI) 감소세가 가팔랐던 것이죠.
■ 내수 증가가 경상수지 악화시켰다고?
그런 가운데서도 민간소비나 설비투자는 높은 증가세를 유지합니다. 민간 소비가 유지된 것은 개인들의 소비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설비투자가 유지되었단 점은 '미래 수출을 위한 오늘의 투자'가 유지되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둘을 합한 내수 경기 자체는 유지가 되었던 겁니다.
이 내수 유지, 경상수지의 언어로 번역하면 '적자요인'입니다. 내수 회복세가 지속되니 해외에서 수입해와야 하는 원자재와 에너지의 양도 늘고, 그러면 자연히 경상수지가 악화되는 작용입니다.
KDI의 모형 분석도 이 같은 설명을 입증합니다.
구체적으로 세계교역량과 교역조건이 1%p 상승하는 경우 경상수지는 각각 최대 0.13%p, 0.43%p 상승합니다. 교역조건의 영향이 훨씬 큽니다. 실질 실효환율이 1% 상승하면, 즉 원화가치가 1% 하락하면 경상수지는 최대 0.09%p까지 증가합니다. 이 영향은 작다고 볼 수 있겠죠.
마지막, 내수입니다. 내수가 1%p 증가하는 경우 경상수지는 최대 0.6%p까지 하락합니다. 증감 폭으로 치면 내수의 경상수지 효과가 가장 큽니다.
즉, 우리 경상수지는 '교역조건'과 '내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실증적으로는 이렇습니다.
-교역조건 악화로 인한 경상수지 하락이 -2.4%p였습니다.
-내수가 양호한 흐름이어서 경상수지가 -1%p 나빠졌습니다.
-전체 5%p 정도로 측정된 2022년 하반기 경상수지 악화 폭의 70% 정도(3.5%p)를 두 요인이 설명했습니다.
■ 올해 경상수지 흑자 160억 달러 밖에 안되지만... KDI "위기는 아니다"
KDI는 앞서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298억 달러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800억 달러 안팎이던 때와 비교하면 적지만,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 나은 수준이죠. 그런데 이번에 이 숫자가 160억 달러까지 떨어질거라고 했습니다. 매우 나빠지죠. 하반기에 회복되더라도, 상반기 적자 폭이 이미 1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경상수지는 큰 폭으로 악화된단 겁니다.
상품수지만 보면 흑자 전망 폭은 불과 60억 달러 밖에 안됩니다. 분명 어두운 실적이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아니라는 것이 KDI 진단입니다.
대외 건전성을 고려하면 1997년 당시와는 현저히 달라서 외환위기의 가능성은 작고, 2008년과 같은 단기 외채 위기 위험도 크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한국의 순 대외자산 규모가 GDP 대비 지금 46%임을 살피면 향후 경상수지 적자가 1~2년 정도 발생한다 하더라도 순 대외자산 감소로 인한 외환위기의 가능성도 작습니다. KDI 판단은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현재의 경상수지 악화가 주로 1. 교역조건이 나빠지면서, 그런 가운데 2. 내수는 괜찮은 상황이어서 발생했단 분석을 내세웁니다. 따라서 거시경제정책 기조는 경상수지의 단기적 변동에 지나치게 좌우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합니다. '위기'라면 위기대응을 해야겠으나,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 내린 겁니다. 특히 무역수지 적자 폭이 크다고, 이를 축소하려고 하면 '내수 둔화'나 '고용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합니다.
■ 한계는 있으나, 의미도 있다
이 분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실, 위기란 예고된 방식으로, 또는 기존의 방식으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기존 위기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있고, 그에 맞춘 대응책도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기존 위기와 비교해봐서', 또는 '현재 상황을 우리 내재적 역량 기준으로 분석해봐서' 괜찮다는 말은 부분적 설명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이 분석에는 의미도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나 근거가 부족한 두려움 자체가 '자기 실현적으로' 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한 막연한 불안감과 현 상황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객관적 설명은 언제나 충분한 의미가 있습니다.
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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