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도 못 버틸걸요?”… 사표 던진 최 간호사는 ‘결혼식 알바’를 뛴다
간호사들은 왜 현장을 떠나나
편집자주
한국은 의료 가성비가 좋다고 하죠. 아프면 예약 없이 3,000~4,000원에 전문의를 보는 나라, 흔치 않으니까요. 그러나 건보 흑자, 일부 의료인의 희생 덕에 양질의 의료를 누렸던 시대도 끝나 갑니다. 지방 병원은 사라지고 목숨 살리는 과엔 지원자가 없는데, 의대 정원은 18년째 3,058명입니다. 의사 위상은 높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의료 효능감은 낮아지는 모순. 문제가 뭘까요? 붕괴 직전에 이른 의료 현장을 살펴보고, 의사도 환자도 살 공존의 길을 찾아봅니다.
징글징글한 병원, 이제라도 벗어나서 다행이에요.
수도권 대학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했던 최수영(가명·31)씨는 매일 아침 구직사이트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결혼과 맞물려 병원을 그만둔지 1년째, 슬슬 일을 시작할 생각이지만 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간호사 구직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악몽에 며칠 시달린 뒤 복귀 생각을 싹 접었다. 나이팅게일을 꿈꿨던 최씨는 요즘 소일거리로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다.
'많이 뽑고, 많이 버리는' 티슈노동자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다. 2020년 기준, 면허를 취득한 간호사 중 임상간호사로 활동하는 인력은 55.3%. 딱 절반만 남았다. 5년 내 퇴사율 49.9%.(보건복지부 자료) '신규'가 하도 귀해, 1년을 채우면 병원에서 대대적으로 돌잔치를 열어줄 정도라고 한다.
인력 부족은 간호대 정원이 적은 탓은 아니다. 18년째 꽁꽁 묶인 의사 정원(3,058명)과 달리 간호대 정원은 2007년부터 매년 700명씩 늘어, 지난해 2만 8,000명에 달했다. 4년제 대학 모집인원(35만 8,000명)의 8%가 간호사를 직업으로 희망한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희망은 절망으로 바뀐다.
그 많던 간호사들이, 천직을 스스로 등지는 것은 버틸래야 버틸 수 없게 만드는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이다. ①화장실 갈 시간도 아껴야 하는 고강도 노동을 ②하루 10~12시간씩(무급 추가 시간 포함) 감수하는 것도 모자라 ③생체리듬을 흩트리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앗아가는 원흉인 교대 근무(데이·이브·나이트)가 원인이다.
더 많은 간호사를 고용해 숨통을 터 줘야 하지만, 국내 병원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남아 있는 간호사들을 '쥐어 짜며' 버티고 있다. 의료법상 간호사 한 명이 돌보는 환자를 12명으로 권고하고 있으나, 말그대로 권고일 뿐이라 현장 간호사들은 '일당백'으로 고군분투 중이다.
복지부가 밝힌 국내 상급종합병원의 간호사 1명당 평균 환자 수는 16.3명. 미국(5.3명)과 일본(7.0명)과 비교하면, 한국 간호사들은 2, 3인분 몫을 감당하고 있다. 수도권 종합병원 30년차 김효정(가명·55) 간호사는 "코로나 때 전담병원이라 병동 나이트(밤~익일 아침) 근무 당시 환자를 20명까지 봤는데 전쟁 치르는 거 같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간호사들 사이에선 "간호사 1명이 지방 중소병원에선 30명, 요양병원은 40명까지 커버했더라"는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병원 입장에선 아쉬울 건 없다. "신규 간호사들이 못 버티고 나가도 다음 해에 대체할 신규는 차고 넘치기 때문"(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이다. 병원 입장에선 월급 많이 줘야 하는 경력 간호사보다, 신규 간호사가 싸게 먹히기 때문에 비용 절감 차원에서도 유리하다. 간호사가 부족하다 해서 정원을 늘려놨더니, 현장을 지키는 간호사는 갈수록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많이 뽑고. 많이 버려지는' 전형적인 티슈노동자 생태계다.
왜 떠나나: ①혼 빠지는 노동
지난달 5일 수도권 종합병원 간호간병통합병동(보호자나 간병인 없는 병동)에서 한국일보 기자들이 지켜본 윤혜지(가명·31) 간호사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 보였다. 이날 데이(아침~이른 오후) 근무인 윤 간호사가 돌봐야 할 병동 환자는 12명. 그나마 권고 기준을 지키고 있으니 다행이라 보이기도 하지만, '권고'와 '현실'은 천지차이였다.
윤 간호사의 업무는 수십 개에 달했다. 출근 시간(7시)보다 30분 일찍 나와 나이트 근무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고, 처방된 약제와 주사제를 배분하고 수액 등을 섞어 놓는 사전 작업부터가 시작. 환자들의 활력징후(혈압·체온 및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오전 회진 후 추가 처방을 입력하고, 퇴원 서류 작업 및 외래 안내 정도는 루틴한(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루틴은 '폭풍 전 고요'였다.
"윤 선생님, 내시경 환자 관장 한번 더 해야 한다고!"
"네네."
내시경 환자 상태를 확인할 새도 없이, 고열과 구토로 실려온 치매환자가 응급실에서 올라왔다. 보호자에게 환자 병력 등을 확인하며 입원 절차를 밟고 수액도 새로 달아야 했다. 검사나 수술 전후, 신환(신규환자)이 오면 오더(의사의 진료지시)가 쏟아진다. 전화가 계속 울려댔지만, 받을 수 없다.
"윤 선생님, 내시경 환자부터 일단 빨리 내려보내래."
"하아..."
한숨을 내뱉기 무섭게 "간호사 선생님"을 찾는 환자와 보호자의 목소리가 병동 안에서 빗발쳤다. 동료 간호사들도 동시다발로 터지는 업무에 붙들려 있다. 근무 시작 2시간도 안 돼 혼이 쏙 나간 윤 간호사는 그제서야 출근하면서 사들고 온 커피 한모금을 쪽 빨아 삼켰다.
제 유일한 (병원에서의) 한끼에요. 보통 근무시간엔 밥 먹으러 갈 여유가 없어 이렇게 때우고 말죠.
(간호간병통합병동 윤혜지 간호사)
이날 윤 간호사는 오후 5시에 퇴근했다. 원활한 인수인계를 위해 2시간 가량 자발적 초과노동을 했지만, 이 정도면 비교적 선방한 "운수 좋은 날"이다.
왜 떠나나: ②내가 살려고 너를 태운다
이런 착취 구조는 '을'들 사이의 착취로 대물림된다. 선배 간호사들이 교육을 가장해 후배들을 괴롭히는 '태움'(불에 타서 재가 될때까지 들볶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은어)말이다.
"병원은 징글징글하다"고 했던 최수영 간호사는 태움의 피해자였다. "신입 때 중환자실에 들어갔는데 제일 어려운 환자를 몰아주고 일이 서툴다고 괴롭히는 거예요. 나중엔 제 옷차림과 슬리퍼 소리를 일일이 트집 잡은 데스노트까지 만들어 다른 병동으로 돌려 보더라고요."
태움은 신입의 '업무 미숙' 탓일까, 선배의 '가학적 갈굼'이 전부인 걸까.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봤다.
23년차 선배 간호사(수도권 대학병원) = "제 일만으로도 과부하가 걸리는데 후배가 1인분 못하면, 서너 명이 일을 추가로 떠안아야 하니 폭발할 수 밖에 없는 거죠."
6년 차 후배 간호사(최수영 간호사) = "뭘 잘못했는지 알려주고 개선하라고 해야지 화풀이로 끝내면 안되잖아요. 한번은 여고생 환자 앞에서 제가 손이 느리다면서 진료 차트판으로 정수리를 콕콕 때리더라고요. 나중에 학생이 '언니 왜 그렇게 당하고 사느냐'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13년 차 선배 간호사(수도권 종합병원) = "누군가를 계속 가르치면서 내 일을 다 하는건 쉽지 않아요. 또 그렇게 가르쳤는데 3개월, 5개월도 안 돼서 그만둔다고 생각해보세요. 몇 년째 반복되면, 좋은 마음으로 가르치는 게 쉽지 않죠."
병원이 간호사들을 전쟁터에 내몰고 정부가 이들의 권익을 지켜주지 않는 사이, 전장에 남겨진 '을들'은 서로를 벼랑 끝으로 떠밀고 있었다.
왜 떠나나: ③환자 죽는 게 나 때문인가?
저 결코 친절하거나 좋은 간호사 아니거든요? 그래도 매일매일 죄책감에 살아요. 중증도 높은 환자분 있으면, 다른 분들 케어를 못하니까. 그렇게 오래 봤던 환자들이 돌아가시면 '나 때문인가 싶고' 그게 제일 힘들죠.
(수도권 대학병원의 이지안(가명·44) 간호사)
간호사 부족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다.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가 많을수록, 입원 환자의 사망률이 높아진다(을지대·가천대 간호대학 연구팀)는 연구 결과를 굳이 들추지 않아도, 간호사들은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다.
수도권 종합병원 13년차 정슬기(가명) 간호사는 '환자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환자 한 명이 심폐소생술(CPR)을 받거나, 대량 수혈을 해야 하거나, 긴급 수술이 들어가야 하는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그 환자 한 명한테 모든 간호사들이 쏠려요. 그러면 나머지 환자들 상태가 나빠져도, 그냥 버려지는 상황이 되는 거죠. 버릴 수 밖에 없어요. 한 명을 택해 우선순위를 정하는 거죠."
경력 20년이 넘은 수도권 대학병원 이지안(가명·44) 간호사도 응급상황에서 환자를 취사선택해야 하는 순간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응급 상황에 다른 환자 보호자가 찾으면 '여기 숨 넘어가는 거 안보이냐'고 쏘아붙이거든요. 나중에 정신차리고 가보면 거기도 나름 응급이 벌어지고 있어요." 베테랑 간호사도 환자에게 제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순간을 마주하는 게 싫어 출근이 두렵다고 한다.
티슈노동자들의 나이팅게일 선서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중략)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나이팅게일 선서)
간호대 학생들은 임상 실습을 나가기 전 이렇게 나이팅게일 선서를 읊는다. 숭고한 봉사와 헌신을 상징하는 촛불을 들고 "환자를 위해 헌신하고 전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간호사가 티슈노동자로 전락한 현재 시스템에선 아무리 희생정신이 투철한 나이팅게일이 온다 한들 버티기 어렵다. 이를 개선하고자 정부는 지난달 "간호사 1명이 돌보는 환자를 5명으로 제한하겠다"면서 간호 인력 충원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간호계 현장에선 정부의 약속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글쎄요, 발표가 아니라 실행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하객 알바'를 알아보는 최수영 간호사는 아직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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