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물가에 힘 실리는 ‘금리 동결론’…치솟는 환율·유가가 변수
한은, 물가 부담 덜었지만 “하반기 변수 많아”
원·달러 환율 1340원대 급등
Fed, 5월 ‘마지막 금리인상’ 할까
고공 행진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년 2개월 만에 3%대로 떨어졌다. 물가 상승 우려가 누그러지면서 한국은행이 올해 상반기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인 다음달 25일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7%를 기록했다. 지난해 2월 이후 14개월 만에 3%대로 내려왔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배럴당 100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가 안정되면서 석유류 가격이 하락한 영향이 컸다. 석유류 가격은 1년 전보다 16.4% 내렸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기저효과의 영향으로 에너지 가격 및 가공식품 가격 상승률이 상당폭 낮아지면서 둔화 흐름을 이어갔다”고 했다. 기저 효과(base effect)란 비교의 기준으로 삼는 시점에 따라 경제 지표가 실제보다 낮거나 높아보이는 현상이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도 “석유류 물가가 전체 물가상승률을 0.9%포인트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지난달을 기점으로 물가상승률이 3%대로 꺾이면서 한국은행이 ‘고물가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한국은행은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5~6%대까지 뛰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두 차례 단행하는 것을 포함해 올해 1월까지 7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한 바 있다.
그러나 올 들어 물가 오름세가 둔화하고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자, 금통위는 2월부터 기준금리를 연 3.5%로 두 차례 연속 동결했다. 현 수준의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완만한 물가 하락을 유도하기에 충분한 데다, 지나친 긴축은 경기를 냉각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은 앞으로 물가 전망에 대해 “올해 중반까지 뚜렷한 둔화 흐름을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6~7월 물가상승률이 6%대까지 높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중순까지 기저효과가 작용하면서 물가상승률도 3% 중반대까지 더 낮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대 이하 물가 상승률을 기록 중인 국가는 한국 외 스페인(3.1%), 일본(3.2%), 룩셈부르크(2.9%), 스위스(2.7%) 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오는 2~3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마지막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한국은행의 금리 동결론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이번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뒤 동결에 돌입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연준이 지난 3월에 공개한 점도표를 보면 FOMC 위원 18명 중 절반 이상이 한 차례 더 금리를 인상한 뒤 동결하는 방향이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긴축의 여정이 출발점보다는 종착점에 훨씬 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와 한국은행은 아직 ‘물가 안정’을 확신하기엔 이르다는 입장이다. 물가 상승세 둔화가 뚜렷해지고 있지만, 아직 한국은행의 물가 목표(2%)와는 거리가 있고 하반기 물가를 자극할 만한 변수가 남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제유가 추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크다는 게 대표적이다. 국제유가는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 산유국의 감산 결정 등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 등의 여파로 하반기 국제유가가 들썩일 경우 물가도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상승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물가상승률이 지난 2월 4.8%→3월 4.2%→4월 3.7%로 서서히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근원물가 상승률은 3개월 연속 4%를 유지했다. 주변 환경에 민감하지 않은 물품을 기준으로 산출한 근원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소비자물가 하락 속도도 느려질 수 있다.
한국은행은 “물가가 목표 수준(2%)을 웃도는 오름세는 연중 지속될 것”이라며 “향후 물가 경로상에는 국제유가 추이, 국내외 경기 흐름, 공공요금 인상 폭 및 시기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다”고 했다.
최근 들어 다시 요동치고 있는 환율도 물가와 한국은행의 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연초 1200원대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은 최근 1330~1340원 수준으로 뛰면서 이달 들어 연고점을 경신했다. 환율 상승(원화 약세)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소비자물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외환당국은 현재 환율 상황을 두고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환율이 하반기 물가 경로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김 심의관은 “지난해 물가가 많이 올랐던 것에 따른 기저효과를 고려하면 하반기 물가는 전반적으로 안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전기·가스요금 인상 시기와 국제유가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 추이, 환율 등 여러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인천 송도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 “원화가 지난 1월에 가장 양호한 통화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일 일어나는 환율 변화를 크게 걱정하지는 않지만 큰 변동성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4월의 경우 외국 투자자들에 대한 배당금 지급이 많아 (원화 절하) 압력을 받고 있으나 상황은 나아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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