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어디에 살까? 국민연금 상위 0.2% 은퇴 부자의 고민 [왕개미연구소]

이경은 기자 2023. 5. 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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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개미연구소] #내돈부탁해 21
해외에서 10년 넘게 살다 귀국한 은퇴 가정입니다. 선진국 노인들이 은퇴해도 연금으로 여유롭게 사는 걸 보고, 젊을 때부터 연금 준비를 많이 했어요. 수출 역군이던 남편은 작년부터 연금을 받고 있는데,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으로 월 278만원씩 받아요. 은퇴 후 집에서 쉬다가 갑갑했는지 지금은 일자리를 구해서 밖에 나가 월 200만원씩 법니다. 현역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신축 아파트 월세도 매달 180만원씩 들어와서 생활이 빠듯하진 않아요. 나중에 제 연금까지 합하면 최소 500만원 이상은 고정 현금이 들어올 것 같아요. 노후 자금 준비는 그럭저럭 된 것 같은데, 제 고민은 은퇴 후 주거지에 대한 것입니다. 지금은 용인 구축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데, 나이 들어 이사 다니려면 힘들 것 같아 걱정입니다. 수도권에 실거주용 구축 아파트를 살까 고민 중인데, 2주택자가 되어도 괜찮을까요? 보유 현금이 많지 않아서 걱정은 됩니다.(평생 살 곳을 찾고 있는 연금부자 A씨)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연합뉴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이 답해드립니다

지난 1월 기준 우리나라 은퇴 가정의 평균 국민연금 수령액은 62만원 정도입니다. 상담자 가정은 국민연금에서만 매달 210만원씩 받고 있으니, 수령액 기준으로 우리나라 상위 0.2%에 속하는 연금부자 가정입니다(아래 그래픽 참고).

국민연금으로 매달 200만원 이상 고정적으로 들어오면, 노후에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월 200만원은 최소한의 부부 노후 생활비는 넘기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특별한 질병이 없는 상태에서 부부가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한 최소 생활비는 월 198만7000원이었습니다(적정 생활비는 월 277만원).

국민연금 상위 0.2%의 비결은 연금 납입기간을 늘린 것입니다. 배우자는 의무납입기간(만 60세)이 끝났어도 돈을 계속 납입했습니다. 국민연금은 납입기간을 늘리면 연금액이 더 커지는데, 제도의 장점을 잘 활용하신 것 같습니다. 전업주부인 상담자도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등 부부가 연금 준비를 탄탄하게 해뒀고, 배우자는 퇴직 후에도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으니 모범적인 은퇴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런데 국민연금 수령액 기준 상위 0.2%인 상담자에게도 고민은 있습니다. 현재 용인 구축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상담자는 부부가 노후에 정착해서 살 곳을 찾고자 합니다. 신축 아파트 한 채를 부부 공동명의로 보유하고 있지만 입주할 생각은 없고, 월세를 받아서 노후 생활비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혹시 ‘일주·이토·삼상(一住·二土·三商)’이라는 부동산 용어를 아시나요? 부동산 시장에서 손쉬운 투자 방법이 주택, 토지, 상가 순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임대 사업이라고 하면 월세 받는 상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투자 난이도로 보면 상가가 가장 어렵고 복잡합니다.

상담자는 신축 아파트로 임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수익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나이 든 은퇴 생활자에겐 아파트 임대 사업이 최선일 수 있습니다. 임대 사업은 건물 관리나 월세 연체 관리에 상당한 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감정 노동’이나 다름없습니다. 은퇴해서 이런 스트레스를 겪으면 건강도 나빠지고 삶의 질도 하락하게 되지요.

그나마 아파트 임대 사업은 상대적으로 관리하기가 수월해 은퇴 가정도 그렇게 부담되지 않습니다. 공동 주택이라서 대부분 관리 사무소에서 처리해 주니까 신경도 덜 쓰이죠. ‘아파트는 적은 비용으로 귀족처럼 사는 집’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구축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상담자는 “세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나이 들어서 집을 옮겨 다녀야 하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고민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실거주 아파트를 한 채 구입해서 2주택자가 되는 것은 어떨지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담자가 보유한 자금은 전세보증금 5억원, 현금 5억원으로 총 10억원입니다. 아파트 매수 자금으로 다소 부족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시는데, 최근 대출 규제가 완화되어서 소득이 있다면 은행에서 일부 융통이 가능합니다. 다른 대출이 없는 상태에서 월 200만원 소득이 있다면 약 1억9000만원(금리 4%, 40년 원리금균등분할상환)까지 빌릴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월 상환액은 80만원 정도인데, 신축 아파트 월세(180만원)로 충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상담자는 은퇴 생활자이니 집을 사고 팔아 차익을 남기는 재테크 목적에서 아파트를 매수하진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실거주 주택은 진리’라고 해도 아파트를 사고 나면 가격 추이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고점에 사진 않았는지, 너무 서두른 건 아닌지 걱정하게 되는 거죠. 일단 집을 샀으면 가격엔 신경 끄고 살아야 하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출렁대는 가격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 좋은데, 적당한 매물 찾기가 쉽진 않을 겁니다. 주차장이나 편의시설 등을 잘 갖춘 신도시 부근 타운하우스 단지를 찾는 것도 방법입니다. 다만 가격이 비싸서 대출을 껴야 할 텐데, 아무래도 은퇴 가정엔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내 형편에 맞는 주거의 실속 소비 관점에선 지혜롭지 않죠.

가격 측면에서 보면, 작년 금리 인상 여파로 나타났던 ‘아파트 세일 기간’은 거의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하향 안정화 추세로 접어들자 거래가 급증했고 이 과정에서 급매물은 대부분 소진됐기 때문입니다. 공시가격 하락으로 보유세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아파트 가격도 조금씩 상향 조정되고 있습니다. 지표를 봐도 실거래가는 조금씩 위로 오르는 추세이고요.

물론 이런 회복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인지는 불확실합니다. 2008~2012년에 나타났던 ‘W자형 더블딥’이 다시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요. 실제로 수도권 아파트값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8년 급락한 뒤 2009년에는 급등했지만, 그 이후 3년 동안은 하락했습니다.

지금은 여전히 소득이나 물가에 비해 집값이 비싸고, ‘저금리 시대로의 회귀’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점도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경제성장률이나 통화량 팽창 속도도 예전 같지 않고요. V자형 상승은 힘들다고 생각하시고, 2~3년 안목으로 천천히 매입을 해도 늦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집값이 오르면서 본인 소득으로 ‘내집 마련’을 할 때 걸리는 기간은 계속 늘어났다. 서울의 PIR(소득 대비 집값 비율)은 한때 18배까지 치솟았다. 정부가 집값의 적정한 기준으로 제시하는 PIR은 10~12배다.

✅반짝세일 마무리... 30곳 이상 발품 팔아야

만약 꼭 지금 매수해야겠다면, 싸게 사는 수 밖에 없지요. 미래 리스크를 낮추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매입가를 낮추는 것입니다. 가계 재무 상황에 맞는 실거주용 아파트를 찾는다면 시야를 넓게 잡고,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급매물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죠. 수도권 아파트 실거래가 고점은 2021년 10월입니다. 직전 최고가 대비 30% 이상 떨어진 곳을 찾는 게 좋습니다. 참고로 수도권에서 심한 낙폭을 보인 곳은 경기도 용인, 수원, 화성, 의왕, 그리고 인천 송도 등입니다.

거주할 지역을 확정했다면 한 아파트 단지만 둘러보지 마시고, 30곳 이상 찾아보시는 게 좋습니다. 온라인에는 공개되지 않은 물건이 있을 수 있어 현장 방문은 필수입니다. 또 주거지를 선택할 땐 집 주변에 산책할 만한 곳이 있거나 병원이나 약국 등 편의 시설이 가까운 곳을 우선하세요.

한편, 추가로 아파트 한 채를 더 살 때는 부부 공동명의로 하는 편이 양도세를 절감할 수 있어 유리합니다. 나중에 차익을 남기고 팔더라도 차익이 부부 각자에게 분산되어 저율의 양도소득세를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부세도 부부 한 사람 단독명의보다 부부 공동명의가 유리할 수 있습니다(올해 기준 다주택자 기본공제금액 9억원).

또 한 가지, 2주택자가 되면 신축 아파트 월세에 대해 세금 신고를 해야 합니다. 고가 주택이 아니라면 1주택자는 월세 소득을 신고하지 않아도 되지만, 2주택자부터는 매년 세무서에 월세 소득 신고를 해야 합니다. 더불어 신축 아파트 월세가 1년에 2160만원이고, 국민연금으로 1년에 2520만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료 추가 부담(월급외소득 2000만원 이상이면 발생)도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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