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잔인한 ‘강아지 공장’, 합법 번식장도 다를 게 없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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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마른 푸들이 뜬장 안에서 원을 그리며 쉴새 없이 맴돈다. 또 다른 개는 작은 케이지의 벽면으로 돌진하며 극도의 흥분을 보인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어미 개는 눈도 못 뜬 새끼를 보호하려 안절부절못한다. 펫숍의 귀여운 강아지들이 태어나는 번식장의 민낯이다.
3일 국제동물권리단체 페타(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가 ‘한국 강아지 공장의 악몽 같은 현장’ 이라는 영상을 공개하며 국내 반려견 번식장의 열악한 실태를 고발했다. 페타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10개월간 국내 합법 번식장 4곳을 찾아 사육 환경, 동물의 건강 등을 살폈다.
좁은 뜬장 속 처절한 정형행동
단체가 공개한 1분 분량의 영상에는 작은 철제 우리에 갇힌 품종견들의 모습과 어린 개들이 거래되는 모습이 담겼다. 이들은 “이것이 한국의 퍼피밀(강아지공장)이다. 개들은 절망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원하지만 제대로 몸을 돌릴 공간조차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종모견들은 작은 철제 우리에 살며 기계처럼 번식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렇게 태어난 새끼들은 ‘디자이너 도그’로 펫숍에서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페타 조사관들이 <애니멀피플>에 제공한 8분 길이의 편집 전 영상에는 좀 더 구체적인 장면도 있었다. 좁은 뜬장 케이지에 갇힌 품종견들은 심각한 정형행동을 보이거나 무기력하고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였다. 푸들 품종 번식장으로 보이는 한 농장의 개들은 케이지의 내부를 빠른 속도로 원을 그리며 맴돌거나 벽을 차고 점프하며 흥분하는 듯했고, 사람 손이 다가가면 몸을 움츠리고 새끼를 지키려고 했다.
‘애견 번식장’이란 간판을 달았지만 야외 뜬장에 개를 사육하는 곳도 있었다. 이곳은 시바견, 도베르만, 킹 찰스 스패니얼 등 품종견을 키우긴 했지만 바로 옆에 진도믹스, 도사견을 키우는 등 식용개 농장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영상을 검토한 수의사 권혁호씨는 “영상과 같은 뜬장에서 지내는 개들은 발에 염좌, 골절 등 상처를 입기 쉽다. 쌓인 분변과 환기가 어려운 환경 탓에 호흡기, 소화기계 질환을 앓기도 한다. 또 산책이나 교감이 없는 환경 속에서 개들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불안을 지속적으로 겪게 되고 이런 모견 아래서 태어난 강아지는 다 자라도 불안증이나 정신적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사관들이 ‘합법 번식장’만 찾은 이유
페타는 영상 속 농장들은 지난해 3월부터 지난 1월까지 10개월 동안 국내 합법 번식장 4곳을 방문해 촬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농장을 방문해 사육 환경, 건강 상태, 사업장 허가 유무를 조사했으며 동물판매업자로 접근해 번식업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이 방문한 농장들은 경기도·충청남도·전라북도의 번식장으로 모두 동물보호법에 따라 동물 생산업 허가를 받은 곳이다.
조사 이후 페타는 농장들이 ‘동물보호의 기본 원칙’(동물보호법 제3조)를 위반했다며 지역 경찰서 4곳에 고발했지만 모두 입건 되지 않았다. 동물보호법 제3조는 처벌 조항이 없고, 일부 농가에 설치되어 있는 뜬장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바닥이 철망으로 뚫려 있는 사육장(뜬장)의 추가 설치를 금지하고 있지만, 시행규칙 개정 이전 2018년 3월22일 생산업 허가를 받은 농장에 한해서는 허용하고 있다.
페타 조사관들은 일부러 이번 조사 대상을 합법적인 생산업 농장으로 국한했다고 했다. 이들은 “기존에 폭로된 많은 강아지 농장들은 환경이 열악하고 불법적인 무허가 농장이 많았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모두 모범적이라고 평가를 받는 곳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동물을 좁은 공간에서 가두고 번식하며 이익을 취하고 있었고, 이 산업의 잔인성은 다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 번식장의 경우 연간 5~6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추정했으며 또 다른 농장주는 그가 데리고 있는 번식견들의 총 몸값을 30억 원으로 평가했다고 전했다. 한 농장에선 반려동물 거래뿐 아니라 투견을 위해 개를 사육하다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고기를 위해 개를 팔았다는 증언도 있었다고 말했다.
“동물 사고 파는 현실이 낳은 악몽”
‘양평 개 집단학살 사건 주민대책위원회’ 김성호 공동대표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동물을 사고파는 문화, 그리고 그것을 허용한 정부에 있다. 2016년 강아지 공장의 열악한 현실이 폭로된 뒤 동물생산업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뀌었지만 그 이후 철저한 관리·감독은 미비했다”고 말했다. 김 공동대표는 “동물보호법이 전면개정되고 번식장에 대한 점검, 운영 기준, 시설 규정 등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지자체의 적은 인력으로 시설들이 관리되고 있다. 시설 점검 투명성을 위해서는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고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펫숍을 통한 동물 거래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3월 초 경기 양평 용문면의 한 주택에서 1200여 마리의 사체가 발견돼 충격을 안겼다. 양평경찰서는 집 주인이 번식장 등에서 더 이상 쓸모없어진 개들을 처리비용 1~2만원을 받고 데려와 방치해 죽인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피의자는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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