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기 전 탈출해야”…해외 부동산 고점 투자한 국내 금융사 ‘울상’

국내 금융사 해외 부동산 투자 약 72조
10년 새 14배 폭증…고금리로 시장 침체
美·유럽 부동산 투자, ‘위기 진앙지’ 꼽혀
전문가 “투자금 조기 회수로 손실 최소화”

해외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국내 금융시장에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내 금융사들이 약 72조원 규모의 해외 부동산 펀드를 형성했는데, 해당 시장이 불황에 빠지면서 국내 금융업계의 손실이 예상돼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3일 발표한 ‘해외 부동산 투자 리스크와 위기대응 전략’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펀드 규모는 10년 새 14배 이상 상승했다. 2013년 말 5조원 수준에서 지난해 말 71조8000억원으로 폭증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6일 기준 공모와 사모를 합한 해외 부동산펀드 설정액은 74조3529억원에 달한다.

자료는 국내 금융사의 리스크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상업용 부동산펀드 투자 상당수가 부동산 가격이 고점인 시기에 이뤄져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저금리·저물가’ 시대에 해외 부동산 투자가 활성화했고, 고금리·고물가 시대로 접어들면서 관련 시장이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달 뱅크오브아메리카가 글로벌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펀드매니저들은 시스템적 위기가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진원지로 미국과 유럽 상업용 부동산(CRE)을 꼽았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미국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이 주가폭락과 함께 다시 위기설에 휩싸이는 등 해외발 금융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라며 “잠재적 위험요소로 미국 상업용 부동산시장 침체와 관련 대출 부실화가 거론되는 만큼 우리도 위기의 전이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사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펀드의 해외부동산 설정액(단위: 억원). 자료=금융투자협회

◆“출구전략·유동성 지원책 필요”

이날 대한상의는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국내 금융업계의 위기대응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법무법인 세종, 미국계 다국적 로펌인 그린버그 트라우리그와 공동으로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종의 박영준 변호사는 세미나에서 “해외 부동산 대출 만기가 도래하기 전이라도 임대료 수입 감소 또는 자산 가치 하락으로 초래된 선순위 대출계약 위반이 있을 땐 추가자금 투입이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뉴스1

박 변호사는 최적시점에서의 출구전략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지 선순위 대출계약상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차환에 실패하거나 부동산 매수인을 찾지 못한 경우, 부동산 또는 부동산 담보 채권을 할인·매각해 투자금을 조기에 회수하는 등 투자자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엑시트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린버그 트라우리그의 아시아 부동산부문장 조엘 로스테인은 “부채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미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유형의 대출기관 특징부터 미국 법제도상 채권자의 권리 및 구제책까지, 미국 부동산 대출 시장의 고유한 특징 및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시장침체가 예상되는 만큼 투자기업은 자체적인 스트레스 테스트에 따른 자본 확충, 충당금 적립 등의 선제조치가 요구된다”며 “정부 당국은 금융시장 급변으로 일시적 어려움에 빠진 금융회사들을 위해 유동성 지원책을 마련해 위기가 닥쳐도 시장을 신뢰할 수 있다는 확실한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