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할 위혐도 전염"…방송 뒤 청소년 응급실행 늘었다

15~19세 여성, 20~24세 남성 증가세 두드러져
청소년 정신건강에 악영향…"사회적 고민 필요"

자해 콘텐츠 방영 전후 자해로 인한 청소년 응급실 방문 분석/서울아산병원 제공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자아를 형성해가는 과정에 있는 청소년에게 자해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자칫 자해가 현실을 돌파할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실제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아산병원의 김효원·이태엽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남국 융합의학과 교수의 연구팀은 2018년 3월 청소년 대상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해를 다룬 내용이 방영된 뒤 청소년 사이에서 자해로 인한 응급실 방문이 유의미하게 늘어났다고 3일 밝혔다.

연구팀은 국가응급환자 진료정보망을 이용해 2015년 1월부터 2018년 12월 사이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 가운데 자해(자살 시도 및 자살 의도 없이 신체에 손상을 입힌 행동) 환자 11만5647명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했다.

자해 콘텐츠가 방영된 시점은 2018년 3월 말쯤으로 당시 청소년을 주 시청층으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해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내용이 소개돼 청소년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연구팀이 월 평균 자해로 인한 응급실 방문자 수를 분석한 결과 콘텐츠 방영 전후 차이가 뚜려했다.

2018년 2월~3월(방영 전)과 그해 4월~12월(방영 후)를 비교하면 10~14세의 경우 월별 인구 10만명당 0.9명에서 3.1명으로, 15~19세는 5.7명에서 10.8명, 20~24세는 7.3명에서 11명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15~19세 여성과 20~24세 남성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콘텐츠가 방영됐던 2018년에 들어 자해 시도도 확연히 증가했다. 연간 자해로 인한 응급실 방문자 수는 10~14세가 2015년 인구 10만명당 8.1명에서 2018년 31.1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15~19세는 63.5명에서 119명으로, 20~24세는 75.7명에서 127.1명으로 각각 늘었다.

여성 청소년의 자해 역시 늘었다. 자해로 응급실에 온 10~14세 청소년 중 여성은 2015년 46.6%에서 콘텐츠가 방영된 2018년 76.7%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15~19세의 경우 여성 비율이 55.8%에서 67.8%로, 20~24세는 55.7%에서 61.9%로 늘어났다.

자해 방법으로는 신체 긋기에 의한 자해가 현저히 늘었고, 약물에 의한 자해도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국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디어가 청소년 자해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밝혀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김효원 교수는 "미디어 속 자해 콘텐츠는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자해는 해도 되는 것' 혹은 '자해는 멋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심리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써 자해를 다수의 청소년에게 알린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의 김효원·이태엽 교수, 김남국 융합의학과 교수/서울아산병원 제공

특히 김효원 교수는 "미디어에서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미디어가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남국 교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돌발성 자극과 이에 민감한 사회 계층을 사전에 찾아내고 관련 영향을 줄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미국소아정신과학회가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미국 소아청소년 정신의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Child and Adolescent Psychiatry, 피인용지수 13.113) 최근호에 게재됐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