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식물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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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겐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가꾸는 일을 저리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자연히 되는 일이란 없으니 저 우렁우렁한 잎들이란 얼마나 놀라운 현상인가.
그러니 매일 아침 화분 몇 개에 쏟는 나의 정성은 대자연적 인과관계에의 참여라고 과장스레 소개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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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아래로/ 뻗어 내렸는지// 뿌리는 뿌리에서 만나/ 최초의 커플처럼 곁에 머무른다/ 서로의 고독에 다가가는 춤으로// 비가 많이 내리는 미래엔/ 식물이 집을 먹고/ 집은 숨을 내어 주지’
- 허주영 ‘미래의 집’(시집 ‘다들 모였다고 하지만 내가 없잖아’)
아버지에겐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가꾸는 일을 저리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주말이면 토마토나 고추 같은 작물의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한껏 공을 들여 키웠다. 어린 내 눈에는 그저 지루해 보였다. 시장에 가면 넘쳐나는 것들에 정을 쏟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와서 내게 그 장면은 부모 마음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진다. 자라거나 자라지 않거나, 수확을 할 수 있거나 없거나 정성을 들이는 마음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될 때쯤 나 역시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불쑥, 자연에서 무르익는 초록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이든 자연히 되는 일이란 없으니 저 우렁우렁한 잎들이란 얼마나 놀라운 현상인가. 그러니 매일 아침 화분 몇 개에 쏟는 나의 정성은 대자연적 인과관계에의 참여라고 과장스레 소개할 수 있으리라. 어쩌면 나이 들어감에 따른 변화일지도 모른다. 한 시인은 내게 “나이 들었더니, 꽃 사진을 눈치 보지 않고 찍을 수 있어 그건 참 좋더라” 했다. 아끼는 고무나무에 앙증맞은 새순이 돋았을 때, 나도 몰래 탄성을 내지르고 만 일이 떠올라 나는 하하 웃었다.
아침 출근길엔 비가 내렸다. 나는 우산을 펴기도 전부터 ‘아- 화분을 내어놓아야지’ 생각한다. 쨍한 빛깔의 잎사귀를 자랑하며 제 몸 곧추세울 식물들을 생각하니 즐겁다. 그것들 사진을 찍어 자랑하고 싶은데, 그 자랑을 들어줄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내 안에 흐르고 있을 아버지의 피가 한쪽으로 기울었나 보다. 그가 그리웠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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