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청소년 마약 범죄 '철퇴' 필요한 과학적 이유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3. 5. 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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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에 마약이 널리 퍼지면서 국민의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얼마 전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진 ‘마약 음료 시음’ 사건은 대중의 상상을 초월한 대담한 범죄였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마약청정국이라고 부르던 나라에서 학생들에게 마약 음료를 마시게 하고 연락처를 알아내 “당신 아이가 마약을 한다”며 부모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는 시도가 있었다니 이게 정말인가 싶다.

신문을 보니 검찰이 피의자들에게 사형까지 구형할 수 있는 법조항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마약류관리법에 있는 ‘미성년자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거나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여하면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으로 가중 처벌한다’는 조항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적용한 적이 없어 사실상 겁만 주는 수준이었는데, 최근 상황이 워낙 심각하다 보니 칼을 빼든 것이다.

이런 와중에 며칠 전 싱가포르에서 대마(마리화나) 1㎏을 유통하다 잡힌 사람에게 사형을 집행했다는 외신이 나왔다. 이 나라 법으로 대마 밀수 규모가 0.5㎏만 넘어도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싱가포르는 작년에만 마약 사범 11명을 사형시켰다.

‘다른 마약도 아니고 여러 나라에서 합법화하거나 묵인하는 대마를 팔았다고 사형이라니 너무 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얼마 전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사이트에 올라온 한 논문이 떠올랐다.

예쁜꼬마선충에게 내인성카나비노이드를 투여하자 쾌락성 섭식을 보였다는 내용이다. 내인성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는 몸 안에서 직접 만드는, 대마초 성분과 비슷한 화합물을 뜻한다. 쾌락성 섭식(hedonic feeding)은 먹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달거나 기름진 음식을 강하게 추구하는 식성이다.

사람이 포함된 척추동물 계열과 5억 년 전에 갈라진 선충에서도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이 있고 심지어 분자인 AEA도 공유하고 있다. 최근 연구 결과 선충에 AEA를 투여하면 식욕이 늘고 후각(화학감각) 민감도가 바뀌어 영양이 높은 먹이(왼쪽)에 대한 선호도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람이 대마초를 흡입했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다.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 예쁜꼬마선충에도 있는 시스템

‘대마초를 피우거나 섭취하면 식욕을 촉진한다는 사실이 수 세기 동안 알려져 왔다.’

뜻밖에도 논문은 위의 문장으로 시작했다. 대마초에 취하면 식사를 한 뒤에도 지속적인 허기를 느끼고 특히 달거나 고지방인 음식을 더 갈구하게 된다는 내용이 뒤따랐다. 대마초의 주성분인 THC가 이런 작용을 일으키는 데 주된 역할을 한다. 참고로 대마초(학명 카나비스 사티바)에 존재하는 THC를 비롯한 독특한 구조의 분자들을 카나비노이드라고 부른다. 

THC는 체내에서 내인성카나비노이드인 AEA와 2-AG의 역할을 한다. 우리 몸에는 CB1과 CB2 같은 내인성카나비노이드가 달라붙는 수용체가 있는데, THC가 여기에 붙어 작용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몸의 내인성카비노이드가 하는 역할 가운데 하나가 식욕과 식성을 조절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실제 연구 결과 뇌에서 식욕을 조절하는 부위인 시상하부의 신경세포(뉴런)에 내인성카나비노이드 수용체가 많이 분포하고 몸의 영양 상태에 따라 AEA와 2-AG가 만들어지고 분해되는 일이 반복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굶으면 내인성카나비노이드가 만들어져 수용체에 달라붙어 신호를 보내고 그 결과 식욕을 느끼고 특히 칼로리가 높은 달고 기름진 음식을 갈구하게 된다. 음식을 먹어 위가 채워졌다는 신호가 전달되면 내인성카나비노이드를 분해하는 작용이 신속히 일어나 식욕이 가라앉고 달고 기름진 음식이 물리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매일 식탁에서 경험하는 일들은 내인성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인 셈이다.
 

논문은 사람이 포함된 척추동물과 무려 5억 년 전에 갈라진 선충에서도 내인성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이 같은 작용을 함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사람과 똑같은 내인성카나비노이드 분자인 AEA도 만든다. 내인성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을 통한 식욕과 식성 조절은 동물 진화 초기에 확립된 생리 반응으로, 생존 확률을 높이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수 억 년 동안 이어져 온 셈이다.

논문 내용을 잠깐 소개하면 예쁜꼬마선충은 박테리아(세균)를 먹이로 삼는데, 영양이 풍부한 종류를 선호한다. 그런데 내인성카나비노이드의 농도가 높아질수록 선호도의 편차가 심해진다는 걸 행동 실험으로 밝혔고 이 과정에서 후각(화학감각)의 민감도가 바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영양이 많은 박테리아에서 나오는 냄새 분자에 더 민감해지면서 이들이 있는 쪽으로 이동한다.

흥미롭게도 사람 역시 대마초를 피우면 후각의 민감도에 변화가 생기고 미각 역시 유독 단맛에만 민감하게 바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마초를 피우면 식욕이 왕성해지는 배경에는 감각 민감도의 변화가 있다.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 음식 냄새와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몸 상태를 반영한 내인성카나비노이드의 작용 때문이다. 대마초 흡입처럼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카나비노이드를 공급하면 실컷 먹었음에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신호가 계속 전달돼 정상적인 물림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식욕(appetite) 조절은 배고플 때 위에서 분비되는 식욕촉진호르몬인 그렐린(ghrelin)과 배부를 때 지방세포에서 분비하는 식욕억제호르몬인 렙틴(leptin)의 상호작용 결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ECS)이 폭넓게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마초를 흡입하면 그렐린 수치가 올라가고 렙틴 수치가 떨어지는 것과 함께 후각 민감도가 바뀌면서 식탐이 커지고 특히 달고 기름진 음식을 찾게 되는 배경이다. 분자과학 국제저널 제공

● 각종 대사질환의 배경

지난 1월 학술지 ‘바이오의학’에는 대사 조절과 관련 질환에 미치는 내인성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의 영향을 다룬 리뷰 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오늘날 만연한 비만, 당뇨, 고혈압, 동맥경화 등 대사 증후군은 정적인 생활 습관과 부적절한 식단으로 내인성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을 비롯해 여러 생리 조절 시스템이 교란된 결과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패스트푸드 같은 고지방 음식을 즐겨 먹으면 내인성카나비노이드인 AEA와 2-AG가 많이 만들어져 신호가 증폭한다. 이런 음식에 많이 들어있는 오메가6 지방산인 리놀레산이 AEA와 2-AG 생합성의 원료이기 때문이다.

내인성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은 단순히 식탐을 늘릴뿐 아니라 간에서 지방을 합성해 지방조직에 저장하게 유도하는 역할도 한다. 몸에 영양이 부족하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잘못된 식습관으로 내인성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의 활동성이 커진 상태에서는 식사량을 조절하기 어려운데다 어렵게 과식을 피해도 살이 찌기 쉽게 체질이 바뀐다.

‘그렇다면 내인성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의 활동을 억제하는 약물이 비만치료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른 독자도 있을 텐데, 대마초의 카나비노이드와 반대 작용을 하는 약물을 투여하면 식욕과 지방합성을 억제할 것이므로 그럴듯하다.

실제 여러 제약회사들이 연구에 뛰어들었고 이런 효과를 지닌 약물인 리모나반트(rimonabant)가 2006년 비만치료제로 유럽에서 승인돼 시장에 나왔지만 2년 만에 퇴출됐다. 

살을 빼고 각종 생리 지표를 개선하는 효과는 좋았지만 다른 부작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약을 복용한 사람의 30%가 우울증 등 각종 정신질환의 조짐을 보였고 구토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도 10%가 넘었다. 이는 내인성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이 식욕뿐 아니라 몸의 많은 생리 과정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대마초 성분인 THC를 조금 변형한 분자인 나빌론(nabilone)과 드로나비놀(dronabinol)은 화학치료를 받은 암환자들의 구토방지제로 쓰이고 있다. 드로나비놀은 에이즈 환자의 식욕부진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대마초를 비롯한 마약이 중독성을 보이는 것은 뇌의 보상회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대마초의 경우 반복 투여하면 보상회로의 내인성카나비노이드 신호전달 체계가 왜곡되면서 뇌의 적절한 보상 기능과 감정의 항상성 유지가 교란되면서 약물을 끊었을 때 견디기 힘든 상태로 빠지며 약물을 갈구하게 된다.

다른 시스템도 그렇지만 진화적으로 오래된 것일수록 몸의 많은 영역에 관여하는 경향이 있다. 병이나 노화로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 활성에 문제가 생겼을 때만 이를 조절하는 약물을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제로 절제해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십중팔구 몸의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이 잘 작동할 것이므로 대마초 흡입 등으로 함부로 건드리면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특히 청소년 시기처럼 이런 시스템이 정교하게 구축되는 단계에서 약물 복용은 더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마약 범죄에 사형까지 구형하려는 검찰의 움직임을 ‘지나치다’고 말하기가 망설여지는 이유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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