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에 더해진 상상력, 또 다른 서사가 되다

2023. 5. 3. 11:1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는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비단 후배 작가들이나 관객들의 마음만 훔친 것이 아니다.

이에 지난 2016년에는 그의 그림을 흠모해 마지않던 17명의 작가들이 의기투합해 호퍼의 작품에 자신의 서사를 얹어 단편 소설을 썼다.

에드워드 호퍼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가 그렇듯 아내인 조세핀 니비슨 호퍼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호퍼 작품 영감받은 작가 17명
단편소설 모음집 ‘빛 혹은 그림자’ 펴내
소설 속 작품 중 3점은 서울서 전시 중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는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비단 후배 작가들이나 관객들의 마음만 훔친 것이 아니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작품 분위기 덕에 소설가나 시인 등 문인들 중에도 그의 팬들이 많다. 이에 지난 2016년에는 그의 그림을 흠모해 마지않던 17명의 작가들이 의기투합해 호퍼의 작품에 자신의 서사를 얹어 단편 소설을 썼다. 이 작품들의 모음집이 바로 바로 ‘빛 혹은 그림자’(문학동네)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로런스 블록은 서문에 “호퍼는 캔버스 위에 펼쳐진 시간 속의 한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며 “거기엔 분명히 과거가 있고 미래가 있지만, 그것을 찾아내는 일은 우리 자신의 몫”이라고 썼다. 블록의 말처럼 호퍼의 작품 안에는 분명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듯 보이고, 이는 작가적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이 책에서 선정한 17점의 작품 중 현재 국내에서 전시되고 있는 3편을 소개한다.

푸른 저녁, 1914, 캔버스에 유채, 91.8 × 182.7 cm, 휘트니미술관, 조세핀 호퍼 유증

▶담배를 문 피에로 ‘푸른저녁’은 판타지로 재탄생=저녁이 막 내리기 시작한 시간, 식당에는 동양풍의 렌턴에 불을 밝히고 손님들이 앉았다.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분장을 했지만 그 피곤함이 보이는 담배를 문 피에로와 그 맞은편에 앉은 2명의 남자, 그리고 그 테이블을 약간 떨어져서 내려다보는 짙은 화장의 여자. 호퍼의 1919년작 ‘푸른저녁’이다.

호퍼는 이 작품을 파리 유학시절 이후 미국에 돌아와서 완성했다. 본인이 느꼈던 파리의 단상인 셈이다. 1993년 ‘이상한 산의 향기’(A Good Scent from the Strange Mountain)로 퓰리처 상을 수상한 로버트 올렌 버틀러는 광대와 여자, 그리고 화자(화가 본인)와 옆자리에 앉은 남자(르클레르 대령)를 주인공으로 삼아 환타지 스릴러를 펼친다.

광대는 자신만의 뮤즈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르클레르 대령과 눈이 맞으리란 걸 알면서도 결국 그 현실을 확인한다. 작가는 이같은 처참한 감정을 광대에 대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린다. 어린이를 위한 광대는 결코 즐거움의 대명사가 아니다. 잊는 편이 나았던 과거가, 모른척 하는 편이 좋았던 현재와 겹쳐지며 기어코 수면 위로 떠오른다.

햇빛 속의 여인, 1961, 캔버스에 유채, 101.9 × 152.9 cm 휘트니미술관, 앨버트 해킷부부 기증

▶누드의 여성 ‘햇빛 속의 여인’은 자살을 준비?!=누드의 여성이 방 안에 서있다. 양 다리는 살짝 벌린 채 바닥을 단단하게 디디고, 손에 든 담배는 반쯤 탔다. 검정 펌프스 한 켤레, 나무 침대, 벽엔 그림이 두 점 걸렸다. 여자는 당당하게, 자신감이 넘치는 포즈다. 방안으로 길게 들어오는 햇빛 속에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가 그렇듯 아내인 조세핀 니비슨 호퍼다. 실제 이 그림이 그려진 1961년 조세핀은 78세였으나, 호퍼는 디테일에 충실하기보다 자신의 심리에 솔직했다.

폴 개리슨이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한 저스틴 스콧은 이 작품에서 햇볕이 들이치는 시간을 아침으로 상정했다. 여자가 담배를 태우면서 고민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이 삶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끝낼 것인가.

그녀의 준비는 이미 끝났다. 어제 밤을 같이 보낸 이름 모르는 남자에게서 권총을 구했고, 차도 팔고, 주변 정리도 끝났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계속 되짚어 보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담배만 다 피우고 결정할 것이라는 여자의 말에선 미련이 읽힌다. 왜, 이런 상황까지 와야했는지 그리고 그 결론은 어떻게 날 것인지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밤의 창문, 1928, 캔버스에 유채, 73.7 × 86.4 cm, 뉴욕 현대미술관, 존 헤이 휘트니 기증[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캄캄한 밤, 핑크 슬립 여성의 ‘밤의 창문’은 범죄 스릴러로=호퍼의 1928년작 ‘밤의 창문’은 흔한 도시의 밤에 맞딱뜨릴 수 있는 한 장면이다. 길게 낸 창으로 방 안쪽이 살짝 보인다. 핑크색 슬립을 입은 여자는 피곤한 하루를 정리하는 중인 듯 등을 돌린 채 분주하다. 누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줄도 모르는 것 같다.

현대 미국 도시를 관음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도시의 외로움과 고립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호퍼는 1920년대 후반과 30년대 초반 도시의 밤을 자주 그렸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화가인 조너선 샌틀로퍼는 자신의 작품에서 핑크 슬립을 입은 여자와 그를 바라보는 시선(남자)을 이야기의 주요 화자로 삼는다.

관음증 환자 수준인 남자는 맞은편 창문이 보이는 건물에 거처를 얻고, 희생양이 될 여자를 기다린다. 덫을 데이트로 가장하고, 병적 집착을 연애로 치환하는 이 관계는 희생양인 줄 알았던 여자가 사실은 주도적으로 기획한 판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범죄 스릴러 정도로 분류될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