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보단 더하기로 ‘정동’만의 色 만들것”
올해 뮤지컬 등 29편·427회 공연
장르·관객세대 ‘균형과 조화’ 강조
정동 역사가치 담은 콘텐츠 개발
창작의 핵심기지 역할 해나갈 것
정동은 꿈이 깃든 곳이다.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은 덕수궁 돌담길엔 100여년 전 누군가의 꿈과 역사가 자리한다. 그 위로 차곡차곡 내려앉은 또 다른 꿈이 쌓여 정동의 이야기를 써나간다. 오래도록 피어난 정동에서의 꿈은 시간을 멈춰 세운다. 어지러운 소음도, 불친절한 시선도 없어 오래 머물고 싶은 곳. 지금도 정동은 꿈을 꾼다.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 조용한 변화를 만든다.
“개인적으론 이 곳에 50년 만에 다시 왔다는 것에 의미가 커요. 중·고등학교 시절을 정동에서 보냈어요. 오랜만에 다시 와서 보니 그 사이 많이 정돈되고, 또 다른 문화유산이 돼 있더라고요.”
정성숙(65) 국립정동극장 대표는 옛 러시아공사관이 정동 아파트이던 시절, 예원학교를 다녔다. 여전히 생생한 그날들의 기억은 지난해 11월 대표가 돼 다시 찾은 공간에서 오랜만에 꺼내놓게 됐다. 최근 국립정동극장에서 만난 정성숙 대표는 “변화보다는 더하기로, 정동만의 색깔을 확고하게 만들어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장르와 세대 아우른 ‘균형과 조화’=정 대표의 출발은 좋았다. 취임 이후 맞은 첫 시상식인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지난해 초연한 ‘쇼맨,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가 대상을 비롯해 3관왕에 오르며, 제작극장으로의 견고한 입지를 보여줬다. 올해의 슬로건은 이전의 성과를 추동 엔진 삼은 ‘미래를 향한 쉼 없는 도약’이다.
“정동극장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어요. 2010년 즈음만 해도 관광 활성화를 위한 전통 위주의 극장으로 자리했고, 이후 뮤지컬과 연극 콘텐츠의 부족을 느껴 장르 확장을 시도했어요. 우리는 우리만의 색깔을 보여주면서 잘 된 것은 북돋워주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올 한 해 정동극장에서 선보이는 작품의 편수가 부쩍 늘었다. 연극, 뮤지컬, 전통무용 등 전 장르를 아울러 총 29편, 427회의 공연이다.
정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과 조화”라고 강조했다. 장르 간의 균형, 관객 연령층의 조화를 첫 번째 과제로 삼고, “어떤 공연을 봐도 믿고 볼 수 있는 극장”을 목표로 뒀다.
최근 공연계에선 다소 소외된 전통 분야를 강화, 업계에선 처음으로 무용 완판 무대를 보여준다. 세대의 조화 역시 지금의 극장이 마주한 중요한 과제다. 정 대표는 “현재 뮤지컬, 연극을 비롯해 공연계엔 20~30대 관객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며 “전연령층을 아우르는 문화 쉼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봤다. 정동극장의 새로운 역할은 여기에서 찾았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극장으로의 공연을 담아낼 계획이다.
▶정동의 이야기로 정체성과 색깔 확립=국립정동극장의 강점 중 하나는 ‘역사성’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를 복원한다는 의미를 담아 세워진 이 극장은 ‘정동’이라는 공간의 상징성과 만나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었다.
정 대표는 “국립정동극장의 색깔을 강화하기 위해선 정동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정동극장이 올 한 해 레퍼토리로 정동 일대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담은 콘텐츠를 개발하기로 한 이유다. 첫 작품은 뮤지컬 ‘딜쿠샤’다. 딜쿠샤는 일제강점기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지은 집으로, 백년을 함께 지켜온 모든 삶에 대한 희망의 이야기다.
“정동은 근대문화유산이 시작된 곳이에요. 다른 극장과는 차별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콘텐츠는 정동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정동만의 색깔이고요.”
국립정동극장의 또 다른 얼굴은 예술단이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은 기존 국립단체와는 달리 연희를 중심에 둔다. 한 장르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체인 셈이다. 악(樂), 가(歌), 무(舞)는 물론 풍물까지 포함, 이들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동의 이야기로 국립정동극장만의 색깔을 살리고, 연희에 주력한 예술단을 강화하는 시도가 국립정동극장의 ‘전통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원각사는 과거의 전통이 됐지만, 당시 원각사에선 그 시대의 춤과 소리,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그 시대에 가장 핫하고 현대적인 작품을 해온 원각사는 당대의 틀을 깬 극장이었던 거죠. 원각사를 잇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가장 현대적인 것일 수도 있어요. 국립정동극장 역시 하나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원각사의 정신을 이어 다채로운 우리의 색깔을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공연 생태계 발전 위한 ‘창작 핵심 기지’로...=어려운 살림살이 일궈놓고 희생과 체념을 친구 삼아 살아왔던 ‘흥보 마누라’. 더이상 참지 않고 이혼 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달 세실극장에 공연한 창극 ‘흥보 마누라 이혼소송 사건’이다. 전통을 비틀어 동시대 메시지를 담았고, 서양 악기와 국악기가 어우러진 음악으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었다. 공연 생태계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 진행 중인 국립정동극장의 지원사업인 ‘창작ing’에 선정된 작품이다.
젊은 창작자를 발굴하고, 이들에게 지속가능한 무대를 마련해주는 것은 정 대표와 국립정동극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다.
정 대표는 “창작자들이 너무나 힘들게 1차 개발한 이후 관객과 만나지 못하고 사장된 작품이 굉장히 많다”며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작품들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창작의 핵심 기지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정동극장은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정동에서의 공연은 내년 상반기가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동극장은 그간 오랜 역사를 품은 이 길 위에 활기를 채워줬다. 극장의 바람은 소박하다. 덕수궁 옆 돌담길을 따라 걷고, 극장 안으로 들어와 공연 한 편을 보고, 다시 그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모든 과정에 여운을 새기는 것이다.
“공연이 없는 날 정동길은 오가는 사람이 없어 너무나 조용해요. 정동극장이 없으면 이곳은 박제된 공간이자 유물 같은 거리죠. 극장이 있어 살아 숨 쉬는 거리가 될 수 있었어요. 바람이 옷을 벗기는 것이 아니라, 햇볕이 옷을 벗기잖아요. 결국은 마음 먹은 것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느려도 꾸준히,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정동의 랜드마크로 자리하고자 합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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