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가 천직 아닌가 싶어…언젠가 ‘동네 밥집’ 차리고파”

이호재 기자 2023. 5. 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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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엄마가 보증을 잘못 선 바람에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엄마와 이혼했던 아빠는 이미 세상을 떠난 상황.

"집안이 무너진 뒤 언니인 가수 양희은(71)이 아빠, 제가 엄마 역할을 해야 했어요. 과거엔 밥하는 일이 지긋지긋했는데 50년을 하고 나니 좋아지더라고요. 연기가 아니라 요리가 천직인가 의심될 정도라니까요. 하하."1981년 연극 '자 1122년'으로 데뷔한 그는 드라마에서 주로 말썽을 일으키는 고모나 이모 역할을 맡아 '국민 고모'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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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에세이 낸 배우 양희경
배우 양희경. 달 제공
고등학교 1학년, 엄마가 보증을 잘못 선 바람에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엄마와 이혼했던 아빠는 이미 세상을 떠난 상황. 언니는 밖으로 나가서 통기타를 치며 돈을 벌었고, 동생은 엄마와 언니 대신 아침저녁 밥상을 차리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시간이 흘렀다. 배우가 된 동생은 TV 드라마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부엌을 벗어나진 못했다. 잠을 줄여가며 일하고, 집에 돌아와 밥을 차리면서 서러울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을 바꿨다. 친구들에게 “우리 집에 와 밥 좀 먹어”라며 초대해 함께 밥을 해 먹고 놀았다. 부엌에서 지내는 시간을 긍정하니 요리가 일이 아닌 ‘놀이’가 됐다. 지난달 24일 에세이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달)을 펴낸 배우 양희경 씨(69) 이야기다.

배우 양희경은 연극, TV 드라마, 뮤지컬 무대를 오가며 활동했다. 달 제공.
1일 전화로 만난 그는 “사실 요리는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해서 시작한 일”이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집안이 무너진 뒤 언니인 가수 양희은(71)이 아빠, 제가 엄마 역할을 해야 했어요. 과거엔 밥하는 일이 지긋지긋했는데 50년을 하고 나니 좋아지더라고요. 연기가 아니라 요리가 천직인가 의심될 정도라니까요. 하하.”

1981년 연극 ‘자 1122년’으로 데뷔한 그는 드라마에서 주로 말썽을 일으키는 고모나 이모 역할을 맡아 ‘국민 고모’로 불린다. 연극 ‘늙은 창녀의 노래’(1995년) ‘자기 앞의 생’(2019년), 드라마 ‘딸 부잣집’(1994년)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년) 등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프로 연기자로 인정받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두 아들의 집밥을 챙겨야 하는 주부였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줄 수 없으니 밥이라도 잘해주자 싶었거든요.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건 투쟁이었어요.”

배우 양희경이 음식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달 제공.
그는 신간에서 화려한 음식이 아닌 된장, 콩나물처럼 냉장고만 열면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소개한다. 콩나물 무 생채, 시금치 카레 같은 집밥 레시피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푸근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 젊은이들이 배달음식만 시켜 먹지 않았나요. 혼자 사는 이들이 스스로 집밥 해 먹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담았어요.”

그가 집밥을 하는 건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는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식당 음식을 먹으면 자주 탈이 나는 체질 때문에 촬영장에 항상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다. 나이가 들수록 연기 섭외가 줄어들어 시간을 채울 일도 필요했다. 3년 전부터 자신의 집밥 레시피를 소개하는 유튜브 ‘양희경의 딴집밥’를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고추 간장 레시피를 소개한 영상은 조회수가 60만 회에 이를 정도로 인기다.

언니 가수 양희은(왼쪽)과 동생 배우 양희경은 희노애락을 함께한 친구 같은 사이다. 달 제공.

“아들 권유로 시작한 유튜브인데 요즘 집밥 그리운 사람이 많은가 봐요. 전 언젠가 ‘동네 밥집’을 차리고 싶어요. 내고 싶은 만큼만 돈을 내면 집밥을 먹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요.”
그는 2013년 영화 ‘고령화 가족’ 이후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다. 그러나 1일 통화 때 그는 “촬영 차 전남 여수시에 머물고 있다. 10년 만에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고 귀띔했다. 무슨 역할인지, 고희(古稀)가 코앞 인만큼 역할에 제약이 생기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고모 역할을 맡을 때도 골라서 한 게 아니듯, 전 제게 오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다만 세상이 내 연기가 필요 없다고 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그러다 정말 섭외가 안 오면 집밥 해 먹으며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어떤 영화인지는 아직 비밀!”

에세이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표지. 달 제공.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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