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독재 가문이어도 괜찮아…필리핀 손잡는 미국

황경주 2023. 5. 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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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향한 또 다른 대통령이 있습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인데요.

1년 전만 해도 미국과 필리핀의 정상회담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무슨 사연인지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이야기 나눠봅니다.

필리핀 대통령이 윤 대통령과 마치 바통 터치하듯 미국으로 갔네요.

[기자]

그저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만났습니다.

필리핀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10여 년 만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필리핀보다 더 좋은 동반자는 없다"고 표현하며 크게 환영했는데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필리핀과 밀착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조 바이든/미국 대통령 :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필리핀보다 더 좋은 동반자는 생각할 수 없어요. 우리가 잘 지내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필리핀은 지난 3월부터 자국 내에서 미군이 군사기지 4곳을 더 쓸 수 있게 허가해줬습니다.

최근엔 역대 최대 규모로 연합군사훈련도 했습니다.

[앵커]

두 나라의 밀착은 중국 견제라는 면에서는 필리핀도 미국과 뜻이 맞기 때문이죠?

[기자]

필리핀과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두고 오래 싸우고 있는데, 최근 들어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필리핀 해역에서 중국과 필리핀의 해안경비대가 마찰을 빚기도 했는데요.

그러자 미국이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을 공격하면, 미국이 나서겠다고 경고를 날렸죠.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남중국해 문제는 주된 논의 대상이었습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필리핀 대통령 : "현재 남중국해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필리핀과 미국의 관계를 강화하고 재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나라가 갑자기 가까워지는 건 지난해 필리핀 정권 교체와도 연관이 있는데요.

전임 두테르테 정권은 친중반미 행보를 보였던 데 반해, 현재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친미 성향으로 분류됩니다.

[앵커]

하지만 그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가까워진다는 것 때문에 미국 내에선 오히려 논란이 되고 있다고요?

[기자]

'마르코스'라는 이름은 필리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죠.

현재 대통령인 마르코스 주니어는 1965년부터 20년 넘게 독재 정권을 유지했던 아버지 마르코스 대통령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마르코스 시절 필리핀에서는 반대파 수천 명이 체포돼 고문 끝에 숨지기도 했습니다.

마르코스 일가가 부정 축재한 재산만 13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필리핀 마르코스 정권 피해자 : "마르코스 주니어는 공인된 범죄자라서 처음부터 자격이 없었습니다. 법에 따라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겁니다."]

결국 시민 혁명으로 쫓겨난 마르코스 일가는 하와이로 망명했는데요.

1990년대 중반 하와이 법원은 인권 침해 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마르코스 일가가 희생자들에게 20억 달러, 지금 돈으로 따져도 2조 7천억 원 정도를 배상하라고 명령한 거죠.

하지만 마르코스 일가는 이 명령을 무시하고 대부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앵커]

결국 미국이 인권탄압, 부정부패의 상징이었던 아버지, 그를 잇는 아들과 손을 잡는다는 점이 비판받고 있는 거군요?

[기자]

네 심지어 바이든 대통령은 필리핀의 독재 정권 비판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상원의원이던 1980년대에는 아버지 마르코스를 비판했고, 하와이로 망명한 마르코스 일가를 보호하던 당시 레이건 미국 정부에도 반대 목소리를 냈었죠.

심지어 마르코스 일가족은 법적으로 미국에 발을 들일 수도 없는 신세인데요.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하와이 법원의 명령을 어기고, 필리핀으로 돌아가 자산을 불법 매각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르코스 주니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바이든 정부는 "국가 원수로서 외교적 면책 특권이 있다"며 체포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앵커]

그래서 1년 전만 해도 필리핀과 미국의 정상 회담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거군요?

[기자]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려고 '필리핀 독재 가문'에 구애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이 마르코스 일가에 면죄부를 준다는 거죠.

부정 축재한 재산을 환수하는 등 독재에 책임을 물으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런 비판에도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맞서 세를 불리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한국과 필리핀 정상을 잇달아 만난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달 에 일본과 호주도 순방할 예정입니다.

지구촌 돋보기였습니다.

황경주 기자 (ra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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