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 급선회 필리핀 마르코스…'독재자의 子'→美안보 '린치핀'

박재하 기자 2023. 5. 3. 10: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중 외줄타기서 친미…"변혁적인 필리핀 대통령"
'독재가문' 명예회복 위한 "수정주의자" 비판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1일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철통같은 동맹'을 강조한 가운데 뉴욕타임스(NYT)가 취임 1년만에 '친중'에서 '친미'로 급선회한 마르코스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집중 조명했다.

특히 마르코스 대통령이 필리핀에서 20년 동안 장기집권하며 온갖 부정부패와 인권침해를 일삼은 독재자의 아들에서 미국 안보 전략의 '린치핀'으로 부상할 수 있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일(현지시간) NYT는 "마르코스 대통령은 미중 관계가 격화되는 가운데 외교적 외줄타기를 벌이다 미국으로 급선회하면서 필리핀에서 가장 변혁적(transformative)인 외교 정책을 펼치는 대통령으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미중 외줄타기에서 '친미'로 급선회한 마르코스

마르코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미국이 (필리핀에) 들어오면 중국을 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하며 전임자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친중 정책을 지지해왔다.

지난해 5월 취임 이후에도 친중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자 미국은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다. 미국 최고위급 관리들은 잇따라 필리핀을 방문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을 빗대어 중국의 대만 침공 시 필리핀이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이후에도 지난 1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하며 중립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돌연 다음달 미군에 군사기지 4곳에 대한 사용 권한을 제공하며 친미 노선으로 선회했다.

제공된 군사기지 중에는 필리핀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 최전선과 대만에서 불과 360㎞ 떨어진 최북단 지역도 포함됐다. 또 필리핀은 미국과 지난달 역대 최대 규모의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남중국해에서 계속되는 중국의 위협에 미국과 한목소리로 강력히 규탄하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마르코스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초청받아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중국이 필리핀을 공격하면 미국이 대응한다는 지침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은 필리핀을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비하기 위한 로켓과 미사일, 포병 부대를 배치할 수 있는 주요 전략지로 여긴다"고 평가했다.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반중 여론이 높아지던 필리핀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여론조사 기관 '펄스 아시아'가 지난 3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마르코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7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유엔 총회 중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독재가문' 명예 회복 위한 친미 행보인가

한편 마르코스 대통령의 친미 외교 정책이 자신의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개인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NYT는 "반대파들은 마르코스 대통령이 가문의 명예회복을 위해 이미지를 세탁(whitewash)하려는 역사 수정주의자(revisionist)라고 비난한다"고 전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친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20여년간 장기 집권하며 계엄령을 선포해 반대파 수천명을 체포·고문하고 살해하는 공포정치를 펼쳤다. 이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86년 '피플 파워' 혁명으로 쫓겨나 하와이로 망명한 뒤 1989년 사망했다.

그러다 1995년 미국 하와이 지방법원은 마르코스 가문이 선친의 계엄령 시절 학대받은 피해자들에게 20억 달러(약 2조6000억원)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마르코스 일가는 이에 불복해 필리핀으로 돌아가 동결된 자산을 판매했고 법원 명령 불복족으로 미국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필리핀 여론조사 기관 WR 누메로 리서치의 클레브 아르구엘레스 대표는 "마르코스 대통령은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배척돼왔다"며 "만일 마르코스 대통령이 가문의 명성과 영광을 되찾으려는 의도가 있다면 이는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의 필리핀 역사학자 아드리안 데 레온 부교수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의 저명한 인사들로부터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았던 것이 불과 50년도 채 되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 그의 아들에게 구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의원이던 시절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보호하려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비판에 앞장 선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마르코스 대통령이 취임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바로 축화 전화를 했다.

데 레온 부교수는 "역사가 잊혀지는 것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삭제(lobotomize)되는 속도가 매우 충격적이다"고 우려했다.

마르코스 일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던 로버트 스위프트 변호사는 "지난 50년간 미국은 자국에 우호적인 독재자라면 얼마든지 지원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미국은 간섭하지 않고 독재자들이 본국에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둘 것"이라고 전했다.

25일 (현지시간) 필리핀 메트로마닐라 케손시티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의 첫 국정연설을 앞두고 필리핀 활동가들이 시위 도중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을 묘사한 모형을 훼손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박기현 기자

jaeha67@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