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부채가 더 걱정…백악관 “협상 불가’ 재천명, 디폴트 우려 고조
수정헌법 14조 따라 대통령 권한으로 채무 이행 가능성도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미국 정부가 이르면 다음 달 1일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백악관은 부채 한도 문제에 대해서는 ‘협상 불가’라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부채 한도를 놓고 정치권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대통령 권한으로 부채 한도를 올려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오는 9일로 예정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 의제와 관련해 “대통령은 부채 한도 문제에 대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부채 한도는 공화당 소속인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에서 특별한 일 없이 세 번이나 증액됐다고 덧붙였다.
장-피에르 대변인은 다만 이번 회동에서 “지출에 대한 별도 대화를 가질 것”이라며 별도의 예산 절차 시작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채 한도는 그간 관례대로 조건 없이 상향하되 공화당이 문제 삼고 있는 정부 지출 조정은 따로 논의하겠다는 얘기다.
전날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의회 지도부에 서한을 보내 “내달 1일에는 모든 정부 지급을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디폴트 우려 시점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의회가 부채한도를 상향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 미국 정부의 부채 상한은 31조4000억달러(약 4경 2107조원)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행정부의 부채 한도가 역대 정부에서 조건 없이 상향돼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과 전 세계의 경제 재앙을 피하기 위해 공화당이 부채한도 상향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은 지난달 말 정부 지출 삭감을 전제로 한 연방정부 부채 한도 상향 관련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며 바이든 대통령을 압박했다.
행정부가 내놓은 2024 회계연도 예산 지출안에서 기후변화 기금 폐지, 학자금 대출 탕감 종료 등을 통해 2022년도 수준으로 지출을 줄이는 대신 1년 한도로 부채 한도를 1조5000억달러 상향한다는 게 골자였다.
다만 상원에선 민주당이 다수당인 데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해 이 법안이 시행될 가능성은 없다.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은 9일 회동에서도 평행선을 달릴 공산이 큰 만큼 부채 한도를 둘러싼 정치적 대치는 이어질 전망이다.
부채 한도가 증액되지 않으면 미국 정부의 신용 등급이 하락할 수 있고 그 결과 시장 금리가 급등해 미국 가계와 기업의 신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미국 경제가 흔들리면 그 파급력은 전세계로 퍼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 동의 없이 부채한도를 높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백악관, 재무부, 법무부의 최고위층이 최근 수정헌법 14조를 근거로 부채한도를 무시하고 연방 정부 채무를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수정헌법 14조는 “법률에 의해 승인된 미국의 공공 부채의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학자인 개럿 엡스 오리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은 연방정부가 아주 단기간이라도 채무를 갚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의회가 이같은 사태를 막지 못할 경우 대통령이 나서서 자신의 권한으로 부채한도를 올려 디폴트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지난 2011년 오바마 행정부 시기 공화당의 반대로 디폴트 우려가 발생했을 때 민주당 내에서 제기된 바 있다. 다만 공화당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반론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검토되진 않았다.
어차피 소송을 피할 수 없다면 대통령 권한으로 디폴트 사태를 막자는 목소리가 바이든 행정부 참모 내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NYT는 전했다.
다만 주무부처 수장인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 2021년에 “정부가 만든 채무에 대해 지불 의사를 보여주는 것은 의회의 책임”이라며 “(수정헌법 14조 발동은) 국가가 처해서는 안 되는 비극”이라고 밝혀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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