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20세기 붓글씨 집대성 ‘근묵’, 보물된다

2023. 5. 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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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인에서 국왕까지 서예작품 총망라
채색불화 아미타여래구존도도 보물 예고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정몽주 이후 K-서예의 600년 집대성본 ‘근묵(槿墨)’이 보물로 지정된다.

또 아미타여래구존도,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등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3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근묵은 근대의 저명한 서예가이자 서화 감식가였던 오세창(1864~1953)이 1943년 80세의 나이에 엮은 서첩으로, 가문의 8대에 걸친 수집품의 토대 위에 오세창의 감식안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정몽주(1337~1392)에서 이도영(1884~1933)에 이르기까지 약 600여 년에 걸친 1136명의 필적 등 국내 최대 분량이 수록되어 있다.

첩장본(帖裝本:길게 이은 종이를 옆으로 병풍처럼 접고 앞뒤로 따로 표지를 붙인 형태로 만든 책)의 서첩 34책과 선장본(線裝本:인쇄된 면이 밖으로 나오도록 종이의 가운데를 접고 여러 장을 모아 앞뒤로 표지를 대고 끈으로 묶는 형태로 만든 책)의 목록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재청이 3일 보물 지정 예고한 근묵

▶근묵, 중인에서 왕까지 붓글씨 망라= 서첩 34책은 필적의 크기에 따라 양면 또는 단면에 1점씩 수록하였고, 오른쪽 첨지(添紙:책에 무엇인가를 표시하려고 붙이는 쪽지)에는 이를 쓴 사람의 이름, 생몰연대 등을 적어 놓았다.

서첩 제1책의 표지에는 전서(篆書:한자 서체의 하나로 진-秦-나라 이사(李斯)가 만든 전자(篆字) 모양으로 쓰는 서체)로 쓴 ‘근묵(槿墨)’이라는 제목에 ‘팔십위(八十葦)’라는 문구가 쓰여 있으며 목록 1책에는 글씨를 쓴 사람의 성명・자호・향관(고향)・시대・직업・계통 등을 기록하였다.

근묵은 수록된 필적의 시대적 분포가 고려 말에서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고, 쓴 사람의 신분도 국왕에서 중인, 승려 등에 이르며 그 범위가 폭넓다.

또한 수록된 필적의 문체 및 내용 또한 한문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있으며, 특히 사회 경제적 상황을 잘 담고 있는 서간문의 비중이 압도적이어서 당시의 사회상・생활상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역대 명필들의 필적이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어 각 시기에 유행하던 서풍 및 그 변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서예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현존 서첩 가운데 양과 질 양면에서 가장 우수한 서첩이라고 평가되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아미타여래구존도= 아미타여래구존도는 1565년(명종 20)이라는 제작연대가 정확한 조선 전기 불화로, 화기(그림의 제작과 관련하여 발원자, 작가 등의 내용을 담은 기록)에 조성연대, 화제, 시주질 등이 기록되어 있다.

미타팔대보살도

조선 전기에 그려진 아미타여래구존도는 6점이 현존하는데, 국내에 있는 작품 중 유일하게 제작연도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채색 불화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삼베 바탕에 주존(主尊)인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비롯한 팔대보살이 좌우 대칭된 모습으로 표현되는 고려 후기 불화의 요소가 남아 있으며, 동시에 주존을 중심으로 보살을 에워싸는 배치, 여래와 보살의 형상과 묘사, 필선의 사용과 문양을 배제한 색 중심의 채색법에서는 조선 전기 불화의 새로운 요소, 특히 16세기 불화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또한 본존의 머리와 몸을 둘러싼 원형 광배(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의장) 형식, 둥글고 넓적한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와 반달형 중간계주(髻珠:육계 중간에 있는 둥근 구슬)의 표현, 문양이 생략된 채색 등 조선 전기 불화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고려 후기~조선 전기 불화의 형식과 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자, 1565년이라는 정확한 제작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 전기 불화 연구에 절대적 기준이 되는 자료로서 중대한 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또한 조선 전기 불화는 대부분 국외에 있고, 국내에 현존하는 작품은 그 사례가 드물어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있다.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수조각승 계찬(戒贊)을 비롯해 인계(印戒), 영언(靈彦) 등 7명의 조각승들이 1657년(효종 8) 완성해 동화사 대웅전에 봉안한 삼불상이다.

세 불상의 복장에서 각각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조성연대, 제작자 등을 확인할 수 있는데 불상 제작에 필요한 상세한 시주물목이 기록되어 있어 조각승 간의 협업과 분업, 불상 제작에 필요한 물목과 공정을 이해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된다는 점에서 큰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조성발원문 외에 각 불상의 대좌(臺座:불상을 올려두는 받침) 상판에도 대동소이한 조성기가 묵서로 기록되어 있어 조성기 내용과 교차 검토가 가능하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으로 평가된다.

수조각승 계찬은 1643년부터 1671년까지 활동사항이 알려져 있는 17세기 중엽 경의 대표적인 조각승이다. 수조각승으로 성장하기 전, 응혜(應惠)와 승일(勝日) 등 당시 대표적 조각승의 작업 현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성장한 인물로, 이 작품은 계찬이 수조각승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사례이다.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직사각형 평면을 가진 탁자(卓子) 형태의 수미단(사찰 전각 정면에 불상을 모셔두는 단으로 수미산을 본뜬 것) 위에 가운데 석가여래 본존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모셔져 있다. 석가여래는 양 옆의 약사여래・아미타여래보다 큰 크기로 조성되었으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왼손을 무릎에 얹고 오른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으로, 석가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악마를 굴복시키고 깨달음에 이른 순간을 상징)을 결한 전형적인 석가모니의 도상을 하고 있다.

수조각승 계찬에게 영향을 준 스승이나 선배 조각승의 작품보다 다소 간략화되고 단순화된 표현 양상을 보이는데, 17세기 중반을 넘어서며 나타나는 전반적인 이러한 단순화의 경향은 조선 후기 불상 양식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러한 흐름으로의 변화상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환기의 작품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제작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조성발원문 등의 기록 자료가 존재한다는 점, 제작 당시의 모습대로 원래의 봉안 장소에서 온전히 전해져 오고 있다는 점, 계찬이 수조각승으로 참여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 조선 후기 불상 양식의 중요한 전환기에 위치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연구하고 보존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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