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기밀유출에 백악관 사전 설명 없었다…양국 모두에 피해"

김성식 기자 2023. 5. 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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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현지시간) 키이우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 주자나 카푸토바 슬로바키아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4.28.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의 기밀문건 유출 사고와 관련해 백악관으로부터 어떠한 사전 설명도 듣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양국 모두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3일 보도된 워싱턴포스트(WP)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기밀문건 유출 사태를 다른 사람들처럼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면서 "백악관이나 국방부로부터 사전에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에겐 그런 정보가 없었고 개인적으로도 그랬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는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백악관과 미국의 명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달 미 국방부가 동맹국에 대한 광범위한 도청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급 기밀 문건이 미 온라인 커뮤니티 '디스코드'를 통해 대거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확산했다.

유출된 문건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의 냉정한 평가도 게재됐다. 올봄 대반격을 꾀하는 우크라이나군이 실상은 무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과 미국이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러시아 본토 공격 계획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한 정황 등이 대표적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문건 유출로 인해 양국 간 신뢰가 손상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며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곳에선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은) 위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지원에 잠재적인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드러낼 만한 가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쟁이고 우리 둘만 전장에 있다면 모든 이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바를 말하겠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고 했다.

아울러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폭로로 인해 자신의 삶이 복잡해 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며 일단은 러시아군이 점령한 영토를 탈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019년 7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한 통화 내용이 같은 해 9월 폭로된 바 있다. 관련 녹취록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천연가스 회사 이사를 지낸 조 바이든 대통령 아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요구하는 듯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에 민주당은 '조사 외압'을 주장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미 하원에 발의하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통화 녹취록이 공개된 데 대해 "조작인지 사고인지 그리고 내가 왜 이를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점령 해제에 대비해야 하는 게 내 임무"라고 강조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대화가 어떻게 유출됐는지 기억하느냐"며 "그들은 그것(녹취록)을 인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조차 내 허락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시간 동안 이어진 대면 인터뷰에서 기밀문건 유출과 관련해 때로는 격양된 모습을 보였다고 WP는 전했다. 그는 일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두고 관심을 보일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기밀문건 유출이) 러시아를 돕는 'TV 쇼'라고 말했다. 또한 전차 등 서방국들이 지원한 새로운 무기가 속속 도착했다며 러시아군을 상대로 대반격을 감행해 전장 주도권을 되찾아 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출된 문건에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열악한 방공망 상황과 반격 대비 태세 대한 우크라이나군 여단 차원의 세부 정보도 실려 있었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일부는 과장됐지만 일부는 스캔들에 불과하다"며 "어떤 식으로든 적에게 미리 전력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히 마이너스다. 어떠한 이점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유출된 문건에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의 사상자 정보가 포함된 데 대해서는 "사람들이 이걸로 누가 이득을 보느냐고 묻는다. 내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며 "누가 이득을 보는지 파악할 시간이 없다. 대신 누가 혜택을 받지 못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1일자로 작성된 '전투 지속 가능성 및 병력 소모' 문건에는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의 사상자 정보가 포함됐다. 관련 문건에 따르면 미국은 우크라이나군 사망자를 1만5500~1만7000명으로, 부상자는 10만6500~11만500명으로 추정했다. 반면 러시아군 사망자는 3만5000~4만2500명으로, 부상자는 15만500~17만700명으로 추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인터뷰 내내 유출된 기밀문건 내용의 진위와 관련해서는 이를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았고, 답변을 회피하는 과정에서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를 드는 것조차 거부했다고 WP는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민감한 사안이 아니"라며 "내가 (민감한 사안이라고) 대답해버리면 진짜 문서가 있다는 뜻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난은 이제 그만 쳐달라. 나는 전쟁 중인 국가의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고위 관리와 정보기관들은 자신들과 관련된 기밀 문건 내용에 대해 러시아의 허위 정보에 불과하다고 일축해 왔다.

한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기밀문건 유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지난달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통화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미국 당국자가 WP에 전했다. 당국자는 양측의 통화는 지난달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외무장관 회의를 논의하고자 사전에 예정된 일정이었다고도 덧붙였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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