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몽래인 김동래 대표 “드라마 제작사에 IP를 주는 게 선순환구조”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좋은 드라마를 만들어 제작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IP(Intellectual Properties, 지식재산)를 확보해 회사를 발전시켜나가는 게 드라마 제작의 선순환 구조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제작사 ㈜래몽래인의 김동래 대표이사가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체득한 지론이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드라마 제작에 참가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기획력의 중요성을 입증하고 콘텐츠를 글로벌화 하는 데 역할을 해온 총괄 제작자(EP, Executive Producer)다. 누구보다 콘텐츠 산업이 IP비즈니스임을 실천해온 현장 전문가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중소기업인 외주제작사가 IP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김동래 대표는 2010년 제작한 KBS ‘성균관스캔들’의 IP를 소유해 해외방영권과 DVD, OST 판매, 화보 등 상당한 부가수익을 올린 바 있다. 지금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IP를 제작사인 에이스토리가 가지는 사례가 간혹 나오기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어림없는 일이었다.
“당시는 MBC가 ‘동이’를, SBS가 ‘자이언트’를 각각 50부작으로 방송하고 있었고, 둘 다 시청률도 30%나 올리고 있어 ‘성균관스캔들’은 땜방 형태로 들어갔다. 송중기, 유아인, 박민영 등 당시로서는 신인이나 무명배우들을 기용해 방송국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 대표는 비교적 쉽게 IP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성균관스캔들’의 반향은 컸다. 일본에서도 큰 반응이 나왔다. 이 때 김 대표는 IP의 중요성을 어렴풋이 알게됐다고 한다.
그리고 2022년 시청률 26.9%를 기록한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을 제작해 대형 히트를 쳤다. IP를 JTBC스튜디오가 2022년 사명을 변경한 ‘SLL’과 래몽래인이 50대 50으로 나눠갖는 조건이었다.
“단순히 드라마를 납품하는 구조를 원치 않는다. 물질적인 소득도 있지만 명예도 따라온다. 작품을 만든 사람이 IP를 가지게 되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고, 제작사인 래몽래인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재벌집’은 해외 시장에서 각광 받으면서 리메이크 문의가 많이 오는 등 여전히 부가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SLL과 협의해 결정하는 구조다.”
김동래 대표는 1991년 매형의 권유로 방송 음향 일을 하면서 드라마 제작에 참가했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 제작의 눈을 키웠다.
“스태프라는 직업상 PD보다 훨씬 많은 작품에 참가했다. PD는 일년에 1~2개 작품을 하지만, 스태프는 그렇게 해서 먹고 살 수가 없다. 스태프이긴 하지만, 방송될 때까지의 과정을 눈여겨봤다. 대본, 편집, 음향을 자세히 보면서 글자에서 영상으로 나오는 과정을 경험했다. 어떤 게 성공하고 어떤 게 실패하는지를 목격했다.”
그러다 스태프로서의 한계를 느낄 때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드라마 제작 내에서의 확장이었다.
“철공소에서 일하다 보니 기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격이다. 드라마라는 집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팔리는지를 보게되자 내가 직접 설계하고 집도 지어보고싶었다.”
그래서 휴픽처스라는 제작사를 만들어 ‘그린로즈’ ‘프라하의 여인‘ ‘불량주부’의 기획에 참가하고 제작했다. 이 세 드라마는 김 대표를 생존하게 해준 작품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PD 출신이 아니어서 제작사로서 진입장벽이 있었지만 다양한 제작 경험으로 극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작사 올리브나인 부사장으로, ‘마왕’ ‘황진이’ ‘주몽’ 등을 제작하며 실력을 키웠다.
김 대표는 2007년 래몽래인을 설립했다. ‘꿈이 오고 사람이 온다’(來夢來人)는 사명을 직접 지었다. 그가 드라마를 제작할때 우선시하는 원칙은 공감 포인트와 틀을 깨려고 하는 시도다.
“‘오징어 게임’이 왜 잘됐을까. 코로나 시절 어려운 사람이 많았다. 어차피 인생은 그런데, 몇백억 있으면 목숨을 걸고 도전한다는 공감 포인트가 있다. 문화는 달라도 세계 어디서나 게임 방식에서 공감할 수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도 그런 것이다. 희망이 없을 때, 로또가 맞거나 복권 결과를 하루 전에 안다면? 삶은 후회를 많이 하게 되는데, 천리안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것이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할 수 있다. 9.11 테러를 미리 알았으면 사람을 살릴 수 있고, 주식시장의 미래를 알면 돈도 벌 수 있다. 머슴이 양반의 뺨을 때릴 수 있다. 픽션을 가미해 나를 부린 사람을 혼내주며 통쾌함을 줄 수 있는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송중기, 이성민 등 배우들이 리얼리티를 잘 살려주었다.”
김동래 대표는 ”‘재벌집’은 3년6개월간의 기획, 개발과정이 어려웠지만, 좋은 작품이어서 원작을 개발하는 기간동안 보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기존 작품들과 다른 새로움을 주려는 것도 김동래 대표의 제작 철학이다. 청춘사극 ‘성균관스캔들’이 기존 사극과 다른 건 누구나 알고있다. 올리브나인 시절 만든 ‘황진이’도 왕을 중심으로 하는 기생사극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자유 의지를 새롭게 보여주었다. 의상 확인까지 김 대표가 참가한 작품이다.
내년 방송될 사극 ‘직필’은 기억을 잃어버린 사관이 복수하는 무협활극이자 사극판 본 아이덴터티다. 이영애가 여성지휘자로 출연하는 클래식 음악 드라마 ‘마에스트라’, ‘지옥사원’ ‘신들의 정원’ 등 텐트폴 작품, 라미란과 엄지원이 출연하는 ‘잔혹한 인턴’ ‘아홉수 우리들’ ‘아엠그라운드’ ‘리틀 히어로즈’ 등도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 왓챠를 통해 공개된 BL(Boy′s Love)물 웹드라마 ‘시맨틱에러’를 제작하며 시장을 체크했고, 최근 종영한 시대물 ‘오아시스’도 제작했다. 하지만 TV조선 개국 특집 드라마 ‘한반도’ 등 실패 사례도 있다. 실패도 좋은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만든 드라마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그저 바라보다가’(2009)였다고 한다. 톱스타(김아중)와 우체국 직원(황정민)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공감과 희망, 꿈을 모두 따뜻하게 보여준다고 했다.
래몽래인은 또 오는 6월 18일 유명 가수들이 참가하며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리는 ‘2023 드림콘서트 in JAPAN’을 연예제작자협회와 함께 공동 주최한다. 한일 대중문화 교류를 촉진하기 위함이다.
김동래 대표는 제작사가 IP를 가져가야 자본을 확충할 수 있고 새롭게 도전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음을 재차 강조한다.
”창착에 대한 고통은 제작사가 가지는 거다. 우리는 예전 방식으로 미니시리즈 16부작을 쓰는 작가를 원치 않는다. 연속극 작가는 사라졌다. 드라마 같은 드라마를 쓰면 안된다. 우리 회사는 신인작가가 60%나 된다. 지금은 숏폼 시대다. OTT에는 4~12부작이 많다. 회당 분량도 30~40분. 작품의 밀도가 훨씬 높아졌고,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게 명확해졌다.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는 신인작가가 신선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김 대표는 제작사에 음악처럼 저작인접권을 줘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창작자들을 모아 제작 분위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것.
”배추를 재배하는 사람이 없는데 포장지를 만들어 뭐합니까? 한류 지속성은 좋은 배추(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에 달렸다. 래몽래인이 10년에 대박이 하나 나온다면, 그런 제작사가 100개 있으면 1년에 10개의 대박 드라마가 나올 수 있다. 제작사가 IP를 가지면 자본도 확충하고 안정된 제작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이게 한류 지속을 좌우한다. 유통과 마케팅은 방송국에서 맡으면 된다.”
김동래 대표는 기획 프로듀서의 기능과 역량을 더욱 키울 것을 주장한다. 래몽래인은 작가가 쓴 대본을 선별만 하는 게 아니다. 파이낸싱과 기획, 제작 관리로 이어지는 스튜디오 시스템을 구축했다. 6명의 프로듀서와 기획본부장, 총괄 제작자가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런 식으로 드라마 제작은 집단 창작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를 새롭게 바라보는 신진작가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거기에 나도 역량을 발휘하며 끝까지 책임지겠다.”
김동래 대표는 지금까지 기획 제작에 참가한 수십개 드라마를 세세하게 파악하며 완벽하게 꿰뚫고 있다. 그는 드라마 산업의 판을 바꿔 건전한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게임 체인저’의 길을 가고 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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