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보다 윤석열이 먼저 손 내밀었다” [+영상]

김지영 기자 2023. 5. 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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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윤석열과 ‘나’]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 검사 많다고? 文정부는 운동권 일색
● 단일화 없었으면 정권교체 불가
● 대한민국 정체성 지키는 것 높이 평가
● 협소한 인사, 소통 부족 안타까워
● 정당 정치 아닌 진영 정치가 문제
● 선도국가 도약에 힘쓰는 게 내 사명

[+영상] 윤석열과 '나' |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금이 우리나라가 선도국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지호영 기자]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노장(老莊) 철학의 대가로 정치와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1월 19일 국민의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대위원장으로 나서자 의외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그의 행보를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했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정권교체'라는 대의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는 데 결정적 힘을 보태기도 했다.

지난 대선은 막판까지 결과를 예단하기 힘든 박빙의 승부였다.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았으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지 못했을 거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최 명예교수는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의 초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김인철 당시 후보자가 도덕성 문제로 자진 사퇴하면서 그 자리를 대신할 인물로 지목됐다. '안철수 패싱' 논란을 잠재울 만한 '공동정부'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시각에서다. 호남 출신 인사라는 점도 지역 안배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결과는 예상을 비켜갔다.

‘신동아'와 1년 만에 만난 그는 "안철수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직접 그 자리를 제안했지만 사양했다"고 밝혔다. 인터뷰 장소가 서울 여의도 선거캠프에서 서울 서초구의 자그마한 사무실로 바뀌었을 뿐 밤톨 같은 헤어스타일도, 강좌를 연상케 하는 언변도 예전 그대로였다.

공동정권은 선거용?

윤석열 정부에서 당신이 맡으면 잘할 것 같은 자리가 있나.

"없다. 어떤 자리든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전문성을 훈련받은 적이 없다. 현재 내각에 있는 분들은 어떤 의미에서 전문성을 다 인정받은 분들이다. 내가 지난 대선 때 도운 건 정권교체가 유일한 목적이었다. 그때는 '어떻게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켜 정권교체를 이룰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신동아'와 만난 지 1년이 다 돼간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정권교체를 위해 여러 사람과 함께 후보 단일화를 해내고 합당한 후 안철수 후보 선거캠프가 해체됐다. 바로 고향인 전남 함평으로 내려가 글을 쓰고, 읽는 일에 집중했다."

안철수 의원과 요즘도 연락하고 지내나.

"자주 연락할 일은 없다. 대선 끝나고 서로 한두 번 연락하긴 했다. 얼마 전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을 때 '수도권 총선 필승을 위한 전략토크쇼'를 열었다. 그때 안 의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성공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메시지 내용이 뭐였나.

"‘단일화를 통한 정권교체를 한 것이 안철수 의원한테는 큰 정치적 업적이다. 그 업적을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해 더 잘 사용하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당대표로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나.

"누구를 지지하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지만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뜻을 함께했기에 안철수 의원에 대해서는 심정적으로 지지한다."

지난해 3월 3일 극적으로 성사된 후보 단일화는 정권교체에 기여했다. 안철수 캠프에서 단일화를 도운 사람들이 윤석열 정부에서 중용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단일화에 공이 있는 사람으로서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가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서운함은 전혀 없다. 좀 안타깝다. 정책을 시행할 때는 자기가 가진 것보다 좀 더 넓은 지지세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그래야 권력 자체가 좀 더 다양해지고 지지세도 더 넓어질 수 있다. 그래서 윤석열 정권이 안철수 후보라는, 좀 이질적이지만 공동의 지향을 가진 세력과 함께하면 그 이전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그대로 돌아와 만든 권력보다는 좀 더 나은, 넓은 권력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대선 득표율(48.59%)보다 낮은 건 안철수 캠프 인사들을 중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확한 건 통계로 봐야 알겠지만 실망한 지지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단일화 때의 정신이 최소한 어느 정도 유지됐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연합정권, 공동정권은 일정 기간 역할을 한 다음 결국 분열을 겪고 파국을 맞는다. 한나라 유방 때도 연합정권적 성격이 있었다. 그 상태를 65년 정도 유지하다가 함께했던 다른 권력이 전부 제거되거나 도태돼 단일 정권이 이뤄졌다. 우리나라에서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이라는 연합정권이 있었다. 그때도 일정 기간 연합군을 유지했다. 그런데 이번 연합정권은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선거용으로만 사용돼 많이 아쉽다. 정치 발전을 위해 연합정권이 어느 정도 유지됐어야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텐데 그러지 못했다."

안철수 캠프에 몸담았던 이들에게서 들은 얘기는 없나.

"그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어떤 지지자는 서운함을 넘어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정말 안타깝다."

‘내로남불'식 인지 부조화

요직에 검사 출신이 많다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검사 출신이 정부 요직에 많은 게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 그런데 그걸 비판하는 사람들은 운동권 출신 일색으로 정부를 꾸리지 않았나. 자기하고 뜻이나 행동 방식이 같은 사람들과만 국정을 운용하며 권력을 매우 좁은 범위에서 사용하는 문제는 비단 윤석열 대통령만의 한계가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 수준의 한계로 봐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 인사가 문제로 지적됐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 그렇다고 윤석열 정부의 인사 방식에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정권이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지면 인사 폭이 넓어지지 않겠나.

"정권 초반의 문제가 끝까지 문제가 된다. 그것을 애초에 문제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각성하거나 반성하는 일이 거의 없다. 기업 대표나 정치 리더가 그 자리에 오른 다음 두세 달 동안 보여주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일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다 돼간다. 관전평이 궁금하다.

"철학자인 내가 왜 정치판에 들어가면서까지 정권교체를 하고자 했냐면 대한민국의 정체성 문제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내내 대한민국을 적으로 놓고 싸운 사람을 높이고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사람을 낮추는 일이 계속됐다. 대한민국 헌법을 지켜야 하는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중심에 놓지 않고 오히려 대한민국에 적대적이던 쪽이 편하게 국정을 운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국민은 민감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내가 공부한 철학적 방법으로 이 문제를 들여다보니 정치인이냐 철학자냐를 따질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정치권에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다. 윤석열 정부가 1년의 시간 동안 많은 비판을 들을 점이 있는 것으로 보여도 대한민국을 중심에 놓고 국정을 운영한다든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점은 높게 평가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권을 잡았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나.

"그러니까 정권교체를 하려고 한 거다. 우리나라 정체성 문제가 단순히 정체성 문제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혹은 인지적 부조화를 가져온다.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가 우리 군을 약화시키는 일을 한달지,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할 위치에 있으면서 대한민국을 적으로 놓고 싸웠던 사람을 높이는 일을 한달지 하는 건 상당한 부조화다. 이런 부조화를 기본으로 놓고 통치하면 현실을 정확히 보는 능력이 사라진다.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일이 많이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문재인 정권 내내 '내로남불'식으로 문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런 인지 부조화 상태로는 국정을 건강하게 운영할 수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방을 강화하면서 대한민국을 중심에 놓고 국가 정체성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 통치자이자 군 통수권자가 국가가 아닌 민족을 우위에 둔다면 대통령으로서 인지 부조화 상태에 이르러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대한민국을 적으로 놓고 싸운 사람은 포용해선 안 되나.

"국가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했다든지, 대한민국을 적으로 놓고 싸운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다. 그러려면 대한민국을 위해 일한 사람들, 대한민국 건국에 공헌한 사람들부터 먼저 높이고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문재인 정권은 그러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사람부터 높이지 않고 우리나라를 폄하하거나 적으로 놓고 싸운 사람을 높이려고 했다. 이건 대한민국의 외연을 넓히려는 노력으로 보기 힘들다. 대한민국을 홀대하거나 적으로 놓고 싸웠던 사람들을 떠받드는 일을 한 거나 다름없다. 참 해괴한 대통령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이 있나.

"개인적 인연은 없다. 그분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 연락이 와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안철수 캠프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윤석열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제의했는데 그때는 사양하고,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가 캠프 합류를 청했을 때는 수락했다."

한국 정치 한계에 도달

이유가 뭔가.

"정권교체를 하는 것이 목적인데 윤석열 후보 캠프는 조직이 커서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일하더라도 단일화나 정권교체를 하는 데 내 역할이 매우 제한적일 것 같았다. 안철수 후보 캠프는 상대적으로 조직이 작아서 윤석열 캠프보다는 내 말의 영향이 조금 더 크게 미칠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권교체를 위해 후보 단일화를 하더라도 윤석열 후보를 안철수 후보 쪽으로 오게 하는 것보다는 안철수 후보를 윤석열 후보 쪽으로 가게 하는 것이 더 쉬울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럼 애초에 안철수 캠프에 들어갈 때 후보 단일화까지 염두에 뒀나.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열망으로 안철수 캠프에 들어갔는데 가서 보니 단일화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안철수 후보의 지지세는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는 정도가 아니어서 단일화를 통한 정권교체가 최선이었다.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았으면 정권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비해 윤석열 정부 들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꼽는다면.

"좋은 점은 대한민국을 중심에 놓고 정책을 펼치는 것이고, 나쁜 점은 내가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누가 더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의 상상력과 사명감은 내가 볼 때 한계에 이른 것 같다."

한계에 이르렀다?

"정치는 말로 하는 거다. 핵심은 말이다. 가장 우선적인 신뢰는 말의 신뢰이기 때문이다. 질서만 하더라도 가장 근본적인 것은 말의 질서다.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말의 신뢰, 말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 근데 문재인 정권 내내 말의 질서가 무너졌다. 문재인 정권 초기에 자기가 한 말을 안 지킨 것이 말의 질서를 어지럽힌 대표적 예다. 인사 5원칙은 누가 시킨 것도, 요구한 것도 아니다. 인사 5원칙을 지켜서 인사를 하겠다고 해놓고는 초기 내각부터 안 지켰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3~4개월 됐을 때 동아일보에 '문재인 대통령, 고유함이 사라진다'는 글을 발표했다. 말의 질서를 무너뜨리거나 말의 신뢰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어떤 정치를 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말의 신뢰나 말의 질서를 흐트러뜨린 사람이 할 수 있는 정치만 집권 기간 내내 했다."

윤 대통령은 어떤가.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재명 후보를 과격하게 반대하면서 대통령이 됐다. 그런데 본인도 공동정부 출범 약속을 처음부터 안 지켰다. '선거캠프에 있던 사람들에게 자리를 주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말도 지켜지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의 대통령은 다 같은 수준이다. 어떤 정치적 비판의 말도 눈 감고 들으면 어느 진영에서 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앞서 내가 문재인 정부보다 더 못 한 점을 답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누가 누구를 비판하고 비판하지 않고 할 그런 계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정치에 대한 진실성, 사명감, 상상력 모두 말이다."

대통령 제조 공장

우리 정치의 어떤 점이 문제라는 건가.

"정치가 정치 기술자들로만 채워져 있다. 정치공학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기능적인 정치에 갇혀 있다. 그래서 권력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당은 권력 쟁취의 수단으로만 존재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당은 대통령 제조 공장으로 전락했다. 우리가 왜 정치를 하는지, 정치를 통해 우리 삶을 어떻게 개선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근본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정치인만이 아니라 국민도 한계에 이르렀다. 옥석을 가릴 때 감성에만 의존한다. 모두 국가 이익은 안중에도 없고 네 편이냐 내 편이냐 하는 것만 중요하게 여긴다. 지금 우리는 정당 정치가 아니라 진영 정치를 하고 있는 거다."

진영 정치를 하는 게 문제다?

"생각하는 능력이 거세된 사람들끼리 만든 정치 집단이 진영이다. 진영에 한번 빠지면 생각하는 능력이 거세된다. 진영에 빠진 사람은 생각할 피요가 없다. 진영에서 만든 가치와 이념을 아무 생각 없이 목소리를 높여 재생산해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생각을 하지 않고는 기능 이상을 할 수 없다. 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져서 정상적인 정치가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염치가 있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안다. 피상적 기능 이상의 가치를 지키지 못할 때, 거짓말을 했을 때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생각을 하지 않아서 인격이 망가지면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가치를 포기하고 기능을 선택하면서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상당히 위험한 한계에 갇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만족감이나 행복지수가 높아졌나.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내 행복지수는 항상 높다. 내 사명감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사명감으로 살고 그 사명감으로 행복하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행복지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떤 사명감인가.

"우리나라는 그동안 생각의 결과를 받아서 살았지, 생각을 하면서 살지 못했다. 전술 국가로 살았지, 전략 국가로는 살지 못했다. 지식을 수입하는 나라로 살았지, 지식을 생산하는 나라로는 살지 못했다. 그런데 지식을 수입해서 사는 형식, 생각의 결과를 받아서 사는 형식, 전술 국가나 추격 국가 레벨로는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이미 도달했다. 이제는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선도국가로 올라서느냐, 전략 국가로 올라서느냐, 어떻게 생각하는 나라가 되느냐, 어떻게 지식을 생산하는 나라가 되느냐 하는 것만 남았다. 이런 도약을 해내지 못하면 우리나라가 더는 발전할 수 없다. 난 이 도약을 한번 이뤄보는 것, 도약을 이루는 데 한번 힘을 써보는 것을 내 사명으로 여긴다."

그 도약을 실현할 전략을 세워뒀나.

"우선 선도국가를 만들 수 있고, 만들고 싶은 사람이 모여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정치세력이 형성될 것이다. 기존 정치세력의 상상력이나 인격적 소양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기에 선도국가 이전까지 도달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다음 도약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도약은 그 도약을 꿈꾸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력화에 성공하느냐, 그 꿈을 공유하면서 그 방향으로 우리나라를 끌고 갈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 같다."

시스템이 사람보다 우위에 있어야

창당을 생각하나.

"항상 생각하고 있다. 다만 새로운 세력화는 또 다른 문제이기에 생각만으로 끝날 수도 있고 다음에 시도할 수도 있다. 새로운 세력화를 어떻게 이룰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상력, 인격, 창의성이다. 이런 역량을 가진 사람이 모여야 한다. 현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하겠다고 해놓고 안 하거나 본래 의도와 다르게 개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개인의 입맛대로 제도나 시스템을 바꿔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런 문제를 방지하려면 사람의 감성과 주관과 감정이 쉽게 개입될 수 없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약속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지킬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시스템이 사람 우위에 있어야 한다. 지금은 사람이 시스템보다 우위에 있어 문제가 생기면 자기들 편하게 법을 막 바꿔버리기도 한다. 시스템이 바뀌어서 비리를 저지른 사람도 제거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 앞으로 선도국가 혹은 전략 국가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이 나온다면 시스템이 사람을 제어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할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든 시스템이 사람을 제어하는 구조를 갖추는 게 실현될 수 있나.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 블록체인 시스템을 이용하면 된다. 플랫폼 정당을 만들면 된다. 우리가 한 단계 더 나은 나라, 투명하고 자유로운 나라, 참여하는 나라를 만들려면 사람 우위에 있는 시스템이 우선 갖춰져야 한다. 우리가 정치 후진국인 이유는 시스템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고 사람이 시스템보다 우위에 있어서다. 그동안 시스템은 정치인의 선의에 의존했다. 그러면 시스템이 상황에 따라 혹은 진영의 이익에 따라 지켜지기도 하고 안 지켜지기도 한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선도국가로 도약하려면 특히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매우 깊이 각성한 후에 도약하려는 욕망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 개정판 서문에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온 민족이냐? 우리가 어떻게 번영시킨 나라냐? 여기까지만 살다 갈 수는 없다'라는 문장을 넣었다. 마침 기회가 왔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혀 새로운 문명의 흐름이 기존 문명의 패러다임을 깼다. 지금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동안 종속적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지금은 우리 국력이 제일 강할 때다. 정말 좋은 찬스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기회가 없었나.

"있었다. 내가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유 중 하나도 거기에 있다. 우리가 선도국가로 가야 하는데 왜 국가가 아닌 민족을 중심에 놓느냔 말이다. 그런 방식으로는 과거를 어루만지는 일밖에 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훌륭한 대통령이 되려 하지 않고 그냥 민족의 지도자가 되려고 했다. 민족은 국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국가는 민족 문제를 해결한다. 국가를 통해 민족 문제를 해결해야지, 민족을 통해 국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거 지향적 방식으로는 선도국가가 될 수 없다."

인터뷰를 마치며 "윤 대통령이 옆에 있다면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느냐"고 물었다. 최 명예교수는 "국정 운영에 대해선 내가 알지 못해 해줄 말이 없지만…"이라는 전제를 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진지해 보였다.

"국민을 설득하고 소통하는 일에 좀 더 비중을 두면 좋겠다. 소통하려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 이번에 한일관계 문제도 3·1절 기념식에서 발표하기 전에 어떤 형식으로든 국민 여론을 듣거나 국민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또 3·1절 기념사가 아닌 다른 형식으로 발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국민과 깊이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설득하려는 노력이 더욱 진실하게, 폭넓게 이뤄지면 좋겠다."

신동아 5월호 표지.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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