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부는 체육의 신선한 바람 ‘아침 체인지’ 프로젝트[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박효실 2023. 5. 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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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오후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일원에서 2030 월드엑스포 부산 유치를 기원하는 ‘교육공동체 한마당 걷기대회’가 열린 가운데 하윤수(앞줄 왼쪽에서 네번째) 부산교육감과 부산교육청 홍보대사인 야구선수 출신 이대호(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함께 걷고 있다. 제공 | 부산교육청


[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남쪽에서 부는 바람은 무섭다. ‘돌아와요 부산항’을 부른 조용필의 바람이 그랬고, 호남의 민심을 품에 안은 노무현의 바람도 그랬다. 가요도 정치도 아니지만 부산에서 부는 의미심장한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암울한 한국 교육의 질적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신선한 바람이다.

그동안 한국의 교육은 전적으로 지적 패러다임의 영역에 속했고, 모든 정책적 시도는 사실상 이 분야에서만 맴돌았다. 그랬던 패러다임의 변화가 바로 부산의 교육현장에서 시도되고 있는 ‘아침 체인지(體仁智)’ 프로젝트다. 교육이 지적 패러다임이 아닌 몸의 영역, 즉 체(體)의 패러다임으로 바꾼 발상의 전환이 놀랍고 신선하다.

학교 일과 시작 전 짧은 아침 운동을 통해 체력을 기르고, 활동 과정에서 학생과 교사 간 이해를 높이며 인성을 다지자는 게 이 프로젝트의 취지다. 한국 교육의 철옹성 같은 패러다임이었던 지덕체(智德體)를 거꾸로 세워버린 유쾌한 전복이자 반란이다.

정책은 늘 그렇듯 프런티어가 필요하다. ‘아침 체인지’를 기획 주도한 사람은 하윤수 부산시교육청 교육감이다. 그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시절부터 체육철학이 남달랐다. 당시 사석에서 그를 만난 필자는 “한국 사회를 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선 지적 교육에 편중된 한국의 관성적 교육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유심히 듣고 있던 그가 진심으로 맞장구를 쳐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랬던 그가 부산시 교육감이 된 뒤 의욕적으로 추진한 프로젝트가 바로 ‘아침 체인지’라고 생각하니 당시 그의 추임새가 짜장 가식이 아니었구나 하는 걸 실감하게 된다. 올해 새학기부터 ‘잠자는 교실’에서 ‘깨어있는 교실’로의 변화를 기대하며 야심차게 실시한 부산의 학교 아침 체육활동 열풍은 실로 거세다.

매일 부산 초·중·고교 632곳 중 무려 335곳(53.0%)에서 진행될 정도로 참여도가 높다. 체육활동과 학업과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학교가 바로 미국 일리노이주의 네이퍼빌 센트럴 고등학교 케이스다. 수업 시작 전, 전교생을 대상으로 자기 체력 내에서 최대한 열심히 달리게 한 뒤 1교시, 2교시 때 가장 어려운 과목들을 전진 배치했다. 그 결과 학생들의 읽기와 문해력이 17% 증가했고, 성적 자체도 달리기를 하지 않은 학생에 비해 2배가량 높았다고 하는 게 데이터로 입증됐다.

체육이 학업에 어떤 긍정적 효과로 나타나는가 하는 실리적 측면도 그렇겠지만 몸을 쓰는 행동은 여러모로 큰 의미를 지닌다. 사유가 머리를 쓰는 것이라면 행동은 곧 몸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둘은 기나긴 여정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되어야지 결코 서로를 적대시하고 밀쳐내서는 안되는 그런 관계다. 사유와 행동이라는 두 가지 측면은 사람의 사회생활에서 반드시 함께 필요하며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유와 행동이 분리되고 서로를 배제한다는 건 불행한 사회의 전조다. 진리와 경험을 몸으로 체득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 않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도 따지고 보면 머리로 사유하는 데만 익숙해진 교육의 문제점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몸을 통해 진리를 체득하는 것을 낯설어하는 우리 사회가 몸의 배제가 양산한 거짓의 세계에 농락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바로 그래서다.

부산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아침 체인지’ 프로젝트는 단순한 건강과 학습효과를 뛰어넘어 머리로만 세상을 이해하려드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확신이다. 이게 바로 교육의 본연의 가치가 아니고 무엇이랴. 진리를 몸으로 터득하는 습관이 사회에 뿌리내린다면 ‘내로남불’도 사라질 수 있다.

체육의 가치가 어느 때부터인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게 한국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사회는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고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과학 기술과 진보의 시대에 무슨 몸의 철학과 가치냐며 항변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런 시대일수록 오히려 아날로적인 가치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야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한쪽 방향으로만 급격히 쏠리면 무너지게 돼있다. 과학기술과 첨단 지식이 활개칠수록 몸의 철학과 체육의 가치는 오히려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부산에서 불고 있는 ‘아침 체인지’ 바람이 대한민국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태풍으로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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