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대책, 돈 아낄 때 아냐… ‘건전재정 중시’ 내 소신도 바뀌었다”[현안 인터뷰]

이용권 기자 2023. 5. 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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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안 인터뷰 -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애 낳나’
생존 본능이 번식 본능을 압도
지금은 인구 문제의 대전환기
40개월째 인구 자연감소 지속
예산·정책 미스매치 수준 심각
佛, 18세까지 月 100만원 지원
우리도 강력한 정책 시행해야
20대후반~30대초반 70만명대
이 세대 남아있을 때 재정 써야
저출산대책 골든타임 5년 남아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인구 위기 대응을 위해 정부가 젊은 세대들과 기업이 동참할 수 있는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인터뷰 = 이용권 사회부 차장 freeuse@munhwa.com

정리 = 조율 기자 joyul@munhwa.com

“건전재정을 주장해온 재정학자로서의 소신이 바뀌었어요. 인구 문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재정을 과감하게 투입해야 합니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은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경제학자다. 특히 경제 분야 중에서 재정건전성을 강조해온 재정학자다. 그런 그가 지난해 9월 인구 감소 문제 대응을 위한 민간 연구기관인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초대 원장을 맡은 뒤 인구 문제를 접하면서 그동안 고수해온 재정학자로서의 소신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정부의 재정 포퓰리즘을 누차 경고해왔던 그가 정부에 저출산 해소 등 ‘돈을 쓸 때는 써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인구 문제가 생각보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는 2020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출생자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아져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현상이다. 통계청이 지난 4월 26일 발표한 ‘2월 인구 동향’에 따르면 2월 출생아는 1만9939명. 2월 출생아가 2만 명 밑으로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월별 인구 자연 감소는 2019년 11월부터 40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으로 10년 전(48만5000명)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잇따른 폐교, 소아과 및 산부인과 붕괴 등 인구 감소로 인한 부작용은 이미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국가 소멸’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인구 위기는 비단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고, 그중에서도 한국이 유독 어려운 상황이다. 이 원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사옥에서 만나자마자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지정학 전문가 피터 자이한의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이다. 이 원장은 “저자가 ‘세계의 종말은 실제로시작(the end of the world is just the beginning)’이라고 말하며 글로벌, 특히 한국의 인구 위기를 너무 우울하게 전망하고 있어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현재는 인구 문제에 있어 중요한 대전환기다. 나는 경제학자이지만, 인구 문제에 접근하려면 역사 문제를 봐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이 없어진 뒤, 세계화가 빠르게 찾아오면서 물질적 번영을 누리고 대부분 선진국이 애를 많이 낳기 시작했다. 경제 번영의 시기였다. 인구는 농업혁명 때, 산업혁명 때 늘어났다. 모든 나라가 베이비붐을 겪었다. 지금은 그런 번영이 끝나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 번 휘청, 이번에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오며 또 휘청하면서 그 이후로는 세계가 순조롭게 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화가 끝나고 각자도생의 시기가 온 거다. 이게 인구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앞으로 더 어려울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 후 6·25전쟁을 한 차례 더 겪었고, 산업혁명이 다른 나라보다 늦게 발생하면서 인구 문제 또한 한 단계 더 늦게 진행되고 있다. 인구학자들이 하는 말이 있다. 인간도 동물처럼 생존 본능과 종족 번식 본능이 있는데, 종족 번식의 본능이 멈출 때는 생존 본능이 위협받을 때다. 지금 우리나라는 생존 본능이 종족 번식 본능을 눌러버린 거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 살아남기도 힘든데 내가 어떻게 애를 낳아서 키우느냐 하는 상황이다.”

―국내 인구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사실 해외에서 연구는 많이 돼 있다. 프랑스는 1980년대부터 가족수당을 도입하는 등 영국, 서유럽 등 나라들은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고령화를 겪었다. 각종 인구 대책을 실시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고, 보수·진보 정부를 거치면서 인구 관련 정책이 바뀌는 과정도 경험했다. 프랑스나 독일도 인구가 감소한 적이 있지만, 최근 다시 개선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연구가 많이 됐지만,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인구 깔때기론’이라고 하는데, 인구 문제는 이를테면 국방, 문화, 경제, 산업, 인력, 교육 모든 것이 다 합쳐져 깔때기로 모아서 인구라는 하나의 숫자로 나타난 결과라는 거다. 문제는 각 분야가 자신의 입장에서만 저출산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연구원장 취임 후 8개월 동안 관련 데이터를 많이 보고, 세미나, 포럼도 열었는데 모두 다 그들 자신의 입장에서만 보고 있다. 모두 다 합쳐서 같이 대응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정부가 정책을 만들면 민간이 반응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최근 경제 5단체장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기업 현장에 가보면 결혼과 출산을 위해선 여전히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이 여러 제도를 많이 도입했다지만, 제도 시행 결과 리포트를 내는 곳은 보지 못했다. 도입했다고 전시행정만 한다. 물론 기업을 함부로 비판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기업 입장에선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정밀한 컨설팅이 필요하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 등을 꾸준히 내놓고 지원해왔는데 실패해왔다.

“한 가지 이유만 있는 건 아니다. 일단 첫 번째는 정책 미스다. 아시다시피 1983년부터 인구가 내려갔는데도 계속 산아제한 정책을 해왔다.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화 계획을 네 차례나 세웠는데 280조 원을 쓰고 실패한 것도 계획을 잘못 세웠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개인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수당은 잘게 잘려서 얼마 되지 않는다. 부모수당으로 0세 가정에 70만 원, 1세 가정에 35만 원을 준 뒤, 이후 8세까지 10만 원 주고 그만이다. 말이 안 된다. 그런 식으로 현금을 지급하면 절대로 애를 낳지 않는다. 출산 의향이 있어도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 중 60% 이상이 경제적 이유다. 저출산 대응 예산 미스매치도 심각하다. 지난해 저출산 대응 전체 예산의 46%인 23조4000억 원을 국토교통부가 주거 지원으로 썼는데 대상이 저소득층, 청년 등이다. 국토부가 예전부터 해왔던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 지원인데, 단지 청년을 겨냥했다는 이유로 저출산 예산에 넣었다. 실질적인 저출산 예산이 아니다. 저출산 예산에 스마트그리드시티 건설, 국방부 공무원 인건비 인상 등도 들어 있었다. 사업이 모두 청년 대상이라는 이유로 저출산 예산에 포함돼 있다. 결국 진정한 저출산 비용은 미미한 수준인 거다.

특히 국회, 정치권에 계신 분들이 인구 구조 문제를 망가뜨린 주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이대남(20대 남성) vs 이대녀(20대 여성)’ 하면서 젠더 갈등을 만들고 계층 갈등을 만들어냈다.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 국회가 오히려 갈등구조를 만들어 젊은 세대들이 출산을 안 하게 만들고 있다. 국회에서 인구위기특별위원회를 만든다고 해서 들여다봤더니 그동안 했던 모든 대책의 갱신, 전시행정의 연장 선상이더라.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복지부, 교육부 등 부처별로 나눠 대응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실패했다. 가장 획기적으로,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하면서 세계 경제사에서 보기 힘든 찬란한 업적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때 만들어진 제도의 환상에 여전히 갇혀 있다. 지금은 패러다임, 큰 흐름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제도와 법은 여전히 팽창 사회의 제도와 법을 고수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땜질하는 방식으로만 해결하고 있다.

직원들이 육아휴직에 들어가도 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컨설팅 없이 100만 원이든 50만 원이든 육아휴직 비용을 지원하는 건 소용이 없다. 남성 육아휴직도 휴직급여 상한액이 너무 적다. 결국 경제적 이유 때문에 돈을 적게 버는 사람이 휴직해야 해 여성이 그만둘 확률이 높아진다. 세심하고 진정성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정부 대책은 많이 부족하다.”

―인구 골든 타임이 5년 남았다는 말이 있다.

“나도 자주 하는 말이다. 1991∼1995년엔 연평균 71만 명이 출생했다. 현재 그들은 28∼32세다. 여성의 경우 가임기다. 출산 장려 정책을 쓰더라도 가임 여성들이 그나마 좀 있을 때 해야 한다.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면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 세대들이 70만 명대를 유지할 때 그때 돈을 써야 한다. 앞으로 10년 뒤인 2030년까지 부산 인구만큼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들고, 2040년이 되면 950만 명이 줄어든다. 서울의 인구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재앙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책을 완전히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20대 여성이 “내가 이 정도면 애 낳지”라는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한다. 저출산 예산이 지난해 51조 원인데 출생아가 25만 명이었다. 차라리 2억 원씩 나눠 주는 게 낫겠다. 프랑스와 독일은 저출산 문제를 겪었지만 살아남았다. 프랑스에 유학 중인 학생이 자녀를 2명 낳으니 먹고사는 걱정이 없다고 하더라. 우리나라도 아이를 2명 낳으면 먹고사는 걱정이 없게 해줘야 한다. 한 달에 100만 원씩 자녀가 18세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한다. 그 정도로 강력하고 획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책을 해야 한다.

경제학자로서, 재정학자로서 소신을 많이 바꿨다. 인구 문제를 보니 돈을 쓸 때는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같은 베이비붐 세대는 갈수록 발전하는 세상에서 살아 직장도 골라 가고, 어느 정도 부동산도 있다. 그런데 지금 젊은 세대는 훨씬 능력이 많은데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베이비붐 세대가 얻은 만큼의 부를 얻을 수 없다. 이미 20∼30대의 마음이 얼어버렸다. 현재의 정부 대책으로는 마음이 열릴 것 같지 않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게 하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

저출산 해결 민간 정책 플랫폼 역할… 모범사례 찾아 기업들에 컨설팅

■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이 활동하는 연구원은 인구구조변화가 가져올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 방안을 연구하는 민간기관으로 지난해 10월 출범했다. 이 원장은 출범보다 한 달 앞선 지난해 9월 원장으로 취임했다. 최초 연구원 설립은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김 회장이 인구 문제가 심각하지만, 정부의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만큼 민간이 나서야 할 시점이라는 의견을 냈고, 경제학자로서 인구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지해왔던 이 원장이 뜻을 같이하면서 시작됐다.

이 원장은 “인구 문제는 정부의 역할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정부가 인구위기에 대응하는 제도와 법률을 만들어도 결혼해 애를 낳고 사는 것은 한 개인의 의사 결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인구 대응 제도 등이 실제 기업 현장에서 원활히 작동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연구원 설립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지난해 9월 원장 취임 후, 10월 25일 출범식, 12월 사단법인 인가, 지난 3월 국회사무처에 민간 운영 지정기부금단체로 등록을 마쳤다. 이례적으로 빠른 등록이다. 그만큼 인구 위기 대응이 시급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원장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퇴임 후에 이런 일을 하려고 한다고 했더니, 민간에서 이런 역할을 해주는 건 오히려 제가 고마워할 일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민간 연구기관으로서 현재 각 분야 입장에서 바라보는 저출산 문제를 크게 보고 같이 갈 수 있도록 하는 정책 플랫폼 역할을 연구원의 첫 번째 역할로 꼽았다. 또 기업들이 인구 위기에 대응하는 모범 경영(best practice) 사례를 찾아내고, 다른 기업도 동참할 수 있도록 컨설팅에 나설 계획이다. 아울러 인구 위기에 대한 인식을 공감할 수 있는 대국민 캠페인도 벌이고 사회 각층에 호소하는 메시지도 적극적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1956년 서울 △경기여고 △연세대 지질학, 경제학 학사 △미네소타대 경제학 박사 △휴스턴대 경제학과 조교수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재정연구센터 소장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제12대 통계청장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한국경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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