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 위법 없음”…공영방송 ‘정치 감사’의 예견된 결말

최성진 2023. 5. 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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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입구.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중대한 위법 사실 없음.”

감사원이 지난해 9월부터 세차례나 기간을 연장하면서 벌인 <한국방송>(KBS) 감사에서 뚜렷한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놓자, 한국방송 안팎에서 ‘감사원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적 감사였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애초부터 감사를 벌일 만한 사안이 아니었는데, 감사원이 공영방송 압박을 목적으로 한 ‘청부 감사’에 동원돼 불필요한 행정력을 낭비했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한국방송 이외에도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에 대한 감사를 진행 중이다. 두 건 모두 각 방송사 안팎의 보수 성향 노동조합·언론단체의 국민감사 청구에서 비롯했다.

강성원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장은 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한국방송 감사 결과와 관련해 “감사원은 지난해 8월 감사 개시를 결정한 뒤 뚜렷한 이유 없이 세차례나 기간을 연장했을 뿐만 아니라, 감사 결과가 나온 뒤에는 이를 떳떳하게 밝히지 않은 채 발표 시기를 두고 저울질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번 감사가 과거 공영방송을 망가뜨린 장본인들의 청구를 받아 시작된 ‘정치 감사’였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라고 비판했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1일 공개한 감사보고서에서 ‘한국방송 이사회의 사장 후보자 검증 태만’과 ‘한국방송 이사회의 부당 증자’, ‘방송용 사옥 신축계획 무단 중단’ 등 한국방송 경영진에 대해 제기된 5개 의혹에 대한 감사를 벌인 결과 중대한 위법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지난 3월23일 감사위원회를 열어 이런 내용의 감사 결과를 최종 확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5개 의혹 중 감사를 청구한 한국방송 노동조합 등 보수 언론단체가 특히 문제삼은 내용은 김의철 사장 임명제청 당시 이사회가 검증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직무유기)과, 자본잠식 상태인 자회사 몬스터유니온이 400억원 증자하는 과정에서 이사회가 배임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 등 두 가지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선 각각 “직무 유기로 보기 어렵다”,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갖고 증자를 의결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아울러 한국방송이 20대 대통령선거 직후 사내 기구 ‘진실과 미래위원회’ 활동 증거를 없앨 목적으로 자료를 폐기했다는 의혹, 방송용 사옥 신축계획 중단에 관한 의혹 등에 대해서도 감사원은 중대하다고 할 만한 문제를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감사원은 감사 과정에서 사장 후보자 임명제청에 앞서 정당 가입 여부 등을 확인하는 절차가 없었다는 점, 자회사에 대한 성과 지표가 낮게 설정돼 있다는 점 등의 ‘문제가 확인’됐다며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정작 감사 청구 사안에 대해선 ‘문제가 없다’고 해놓고, 굳이 별개의 사안을 끌어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방송의 국장급 관계자는 “감사를 벌이게 된 주요 의혹에 대해선 모두 위법하지 않다고 해놓고, 엉뚱하게 정당 가입 유무 미확인이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성과 지표 설정 등을 문제로 지적한 결과를 보고 처음에는 조금 황당하다는 느낌까지 받았다”며 “오랜 기간 벌인 감사에서 중요 사실에 대한 혐의가 안 나오니까 별건 조사로 경미한 절차적 문제를 찾아낸, 일종의 물타기 감사가 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영방송인 문화방송의 대주주 방문진에 대한 감사원 감사도 역시 무리한 ‘정치 감사’ ‘청부 감사’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감사원은 지난 3월 공정언론국민연대 등 보수 언론단체가 청구한 ‘방문진의 엠비시 방만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 해태 의혹’에 관한 국민감사 청구를 받아들여 감사 착수를 결정했다. 감사 진행이 결정된 사안은 ‘미국 리조트 개발 투자로 인한 105억원 손실’과 ‘울트라뮤직페스티벌(UMF) 수익금 지급 지연’, ‘미국 프로야구 월드투어 선지급 투자금 회수 난항’ 등 6가지다.

당시 감사원은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 심의 결과’라며 “규정상 (국민감사) 청구 요건에 해당하고 감사를 통해 내용의 확인·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며 감사 착수 배경을 밝혔으나, 문화방송 노사의 판단은 다르다. 감사원이 방문진 감사를 명분 삼아 엄연히 상법상 주식회사인 문화방송에 대한 감사를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화방송 관계자는 “부패방지권익위법이 정한 국민감사 청구 요건은 위법성이 있거나 부패행위, 공익에 대한 현저한 저해가 있을 경우 등인데, 방문진에 대한 감사는 어느 항목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며 “상법상 민간기업인 문화방송이 특정 사업에서 적자를 내거나 대주주인 방문진이 문화방송 관리·감독을 제대로 못한 게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를 부패나 현저히 공익을 해한 행위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부패방지권익위법 72조(감사청구권)에서는 “공공기관의 사무처리가 법령위반 또는 부패행위로 인하여 공익을 현저히 해하는 경우” 일정 수 이상 국민의 동의를 얻어 국민감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호찬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장은 “감사원이 방문진 감사를 이유로 엠비시 내부 경영 관련 자료를 무차별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며 “방문진 이사진 해임과 이를 통한 엠비시 장악이라는 목표 아래 ‘뭐라도 하나 잡아내겠다’는 식으로 탈탈 털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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