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특별법’ 어디까지 왔나? 오늘 국회 논의 전망은?

최유경 2023. 5.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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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이 갑자기 닥친 감당하기 힘든 큰 시련을 마주할 때 국민과 함께 그 시련을 마주하겠습니다. 국민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국민의 입장에서 해결방법을 찾아가겠습니다.
-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

정치권은 매번 사람이 잔혹하게 세상을 등진 뒤에야 답을 내놨습니다. 윤창호법, 김용균법, 민식이법, 정인이법,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 사고의 희생자 이름을 붙인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참으로 슬펐습니다. 이번에는 달라야 합니다. 이제 다른 정치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1분이 피해자분들에게는 하루하루 같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잇따른 비극에 국회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마련에 나섰습니다. 여야 모두 네 탓, 내 탓 가리지 말고 실효성 있는 법안을 마련하자는 데는 공감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지난 1일 장장 6시간에 걸친 심사 끝에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여야는 오늘(3일) '전세사기 특별법안'을 놓고 2차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는데요.

피해자들의 조속한 구제 요청에도 국회 논의가 좀처럼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뭔지, 어떤 부분이 핵심 쟁점이 되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정부, '보증금 최대 4억 5천만 원' 수정안 제시…야당 "여전히 미흡"

지금 논의 테이블에 오른 특별법안은 모두 3가지입니다. 정부·여당 안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 발의안과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 발의안, 그리고 정의당 심상정 의원 발의안입니다. 여야는 세 법안을 함께 심사해, 하나의 합의된 법안을 마련하겠다는 목표입니다.

기존의 정부·여당 안이 너무 협소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1일 수정안을 제시했습니다. 기존의 피해자 인정 요건 6가지를 4가지로 줄여, 문턱을 조금 낮춰보겠다는 겁니다.

수정안은 피해주택의 면적 기준(85㎡ 이하)을 삭제했고, 보증금 기준은 기존 3억 원에서 최대 4억 5천만 원까지로 늘렸습니다. 또, 대항력과 확정일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차권 등기를 마친 경우 지원 대상에 포함하도록 했습니다.

'전세사기 의도'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수사가 개시될 때뿐 아니라,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는 '바지 사장'에게 임차 주택 소유권을 양도하는 경우 등으로 좀 더 확대했습니다.

경·공매가 개시되지 않았더라도 임대인이 파산이나 회생 절차를 개시하는 경우 피해자로 봤습니다.


하지만 야당은 이 같은 정부 수정안이 아직 협소하고 미흡하다는 입장입니다.

민주당 조오섭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금액에 대한 부분도 이견이 좀 있고, 조건 6개를 함축시켜서 4개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며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맹성규 의원도 "정부 수정안은 어순 같은 것을 바꾸는 것이고 본질적인 게 아니다"며 "어떤 형태로든 조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의 또 다른 소위 위원은 통화에서 "전세사기 의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수사 개시'만 있었던 때보다는 (정부 수정안이) 진일보한 것이 맞는다"면서도 "지금 안으로도 어느 정도까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포섭되는 것인지 매우 불확실하다"고 지적했습니다.

■ 쟁점은 '보증금 선(先)지원'…"형평성 문제" vs "사회적 재난"

하지만 여야가 양보 없는 대치 중인 '보증금 선(先)지원' 문제는 소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정부·여당 안은 피해 주택이 경·공매에 넘어갈 경우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주고, 낙찰 시 세금 감면 등 금융지원 혜택을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당 안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 매입기관이 피해자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사들여, 돌려받지 못한 전세 보증금 자체를 먼저 보상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 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 회의.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요건’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정부와 여당은 이 같은 방안이 정부 세금으로 떼인 보증금을 대납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보이스피싱이나 주가 조작 등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특별법으로 피해자들을 100%, 110% 구제해드리면 좋겠지만 법 하나가 피해를 100% 완결적으로 보장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엔 불법 행위로 인해서 선의의 피해자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것들이 있을 때마다 정부가 세금으로 모든 걸 다 대납해줄 순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반면,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야당이 제시하는 방안이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세금으로 보증금을 대신 주라고 하는 것이란 말은 굉장한 왜곡"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심 의원은 "보이스피싱이 정부 정책 실패로 비롯된 것인가.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며 "전세사기 사건은 정부의 정책 실패와 직무유기에 상당하게 기반을 둔 사회적 재난이라고 보기 때문에 특별법도 필요한 것이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 오늘(3일) 다시 머리 맞대는 여야…합의 이뤄질까?

여야 모두 전세사기 문제의 심각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피해자 인정 범위부터 구제 방법에 이르기까지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법안이 통과되려면 국토위 소위와 전체회의를 거쳐 법사위, 본회의까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당초 여야는 어제(2일) 국토위 전체회의를 열어 특별법을 의결하려 했지만 불발됐고, 이에 따라 공언했던 5월 초 법안 처리 여부도 불투명해졌습니다. 대화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상임위가 아닌 여야 정책위원회나 원내대표 차원으로 논의가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지난 1일 소위 도중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은 기자들을 만나 "이건 법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철학이 다른 것"이라며 "과연 전세사기가 개인 책임이냐, 아니면 홍수·태풍·지진·팬데믹과 같은 공동체 책임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여야는 잠시 뒤인 오늘 오전 9시 반,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댑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이제 남은 시간은 길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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