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은 왜 다른가, 평론가들에게 물었다
트로트는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그 성과를 충분히 평가받지 못했다. ‘뽕짝’이라는 말에서 보듯 촌스럽고 가벼운 장르로 희화화되었다. “트로트는 탄탄한 음악 팬층을 가진 장르다. 이들이 가시화되고 세력화되지 못했을 뿐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임영웅이라는 스타의 등장은 트로트 팬덤의 저력을 보여주는 계기였다.
그뿐만 아니다. 2022년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가 임영웅이 부른 ‘사랑은 늘 도망가’로 조사됐다(금영엔터테인먼트). 중장년 팬을 결집시켰을 뿐만 아니라 길거리, 노래방 같은 대중적 장소에서도 임영웅의 노래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비주류로 여겨져온 트로트 가수가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음악적인 측면에서 임영웅의 트로트는 무엇이 달랐을까?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트로트 가수로서 그가 가진 확장력을 짚는다. “흔히 트로트 가수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두 가지다. 무게감 있는 기성 가수와 활력 넘치는 신세대 가수. 임영웅은 신세대 가수이면서 무게감 있는 음악을 선보인다. 중장년 세대에게는 격조 있는 트로트를 듣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올드하다거나 부담스럽다 같은, 트로트에 덧씌워진 오해와 편견을 임영웅의 노래가 상당히 걷어냈다는 분석이다.
성인가요의 신파와 통속적 요소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들도 임영웅 노래는 부담없이 들을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임영웅이 부른 노래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곡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다. 가수 김광석이 포크 창법으로 불렀다면 임영웅은 스탠더드팝 창법으로 재해석했다. 트로트 가수로서는 폭이 넓다. 트로트 연구자이기도 한 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는 “1960~1980년대 감수성을 지닌 대중가요를 포크든 트로트든 스탠더드팝이든 나름대로 잘 소화해낸다.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임영웅이 포괄하고 있는 양식의 폭이 넓다”라고 말했다.
사실 임영웅의 노래 중 트로트 장르는 다수가 아니다. 그의 첫 정규앨범 〈아임 히어로(IM HERO)〉 수록곡은 발라드와 댄스, 힙합까지 다양하다. ‘아 비앙또(프랑스어로 ‘또 만나요’라는 뜻)’는 레게풍의 힙합 장르곡이고 히트곡 ‘사랑은 늘 도망가’는 발라드 장르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싱글로 내놓은 음원 중에는 가수 신해철이 불렀을 것 같은 록 분위기 곡도 있다”라고 평했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 이후의 행보를 보면 팝 가수에 가까운 모습이다. “본인이 지향하고 있는 뮤지션이 조용필이 아닐까 생각한다. 방송 프로그램에 거의 출연하지 않는데 뮤지션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갖는 데 집중하는 듯하다.”
정민재 대중음악 평론가는 임영웅을 두고 한국의 마이클 부블레에 비유했다. “고전 스윙 재즈부터 미국 고전 음악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입지를 키워온 보컬리스트다. 타이틀곡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보면 어덜트 컨템포러리 장르(발라드처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성인 취향의 팝 음악 스타일)다. 우리에게는 많이 와닿지 않는 음악인데 그걸 소화하면서 트로트까지 하는, 희귀한 포지션의 가수다. 음악적 운신의 폭이 넓다.”
기성세대를 타깃으로 한 아이돌 전략
이쯤 되면 임영웅의 장르를 트로트로 볼 수 있을까? 평론가들은 어떤 노래가 트로트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일이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음악사학자인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는 현대 트로트의 특징 중 하나로 ‘트로트 경계의 불확실성’을 든다. 트로트는 하나의 고정된 장르가 아니다. 여러 장르와 부딪치고 혼합해가며 명맥을 이어왔다. 한때 유행했던 꺾기 창법이나 신파적인 세계관이 〈미스터 트롯〉 출연자들에게선 발견하기 어려워진 것도 그런 예다. 〈미스 트롯〉 우승자인 가수 송가인이 국악과 트로트를 섞어 전통적인 창법을 구사했다면, 임영웅은 발라드와 트로트를 섞는다. 데뷔 당시 발라드 가수로 시작한 영향이 컸다. 팬들은 임영웅의 음악세계를 ‘발로트’라는 단어로 조명하기도 한다.
임영웅 현상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음악 팬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사운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례로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는 트로트에 테크노 사운드를 가미했다. 트로트가 시대의 변화에 맞춰간다는 증거다. 결국 그 요구를 수용하는 목소리가 있냐 없냐의 문제다. 정덕현 평론가는 “현 시대에 어울리는 트로트를 불러야 한다. 트로트가 현재화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게 임영웅이다”라고 말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한계를 짚는다. “시대가 바뀌면 거기에 맞는 메시지와 음악 어법이 나와야 하는데 임영웅과 송가인이 2020년대에 맞는 트로트의 전형을 만들어냈는가에 대해선 단언하기 어렵다. 국악,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이미 해왔던 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영미 평론가는 트로트를 받아들이게 된 거대한 수용자 집단이 물 위로 떠올랐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임영웅 현상을 분석하기 어렵다고 본다. “결국 트로트 열풍이 휘감은 가운데, 임영웅은 그중에서 왜 더 돋보이는가를 찾아야 한다.” 임영웅이 보여주고 있는 음악 세계는 팝 흐름에 맞는 현대적인 성인가요의 모습을 띤다. 트로트를 싫어하는 이들도 끌어들일 만한, 폭넓고 세련된 방식이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임영웅이 취하는 전략도 기존 트로트 가수와 달라진다. 기성세대를 타깃으로 한 아이돌 전략의 핵심은 고급화다. 정민재 평론가의 말이다. “스타덤에 오른 트로트 가수는 히트곡 한두 곡만 있어도 막대한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 지역 행사 섭외 요청이 쏟아진다. 그런데도 앨범 단위 음악을 내고 있다는 것은 말초적인 히트곡에 치중하는 게 아니라 음악적인 성과를 가져가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콘서트에 힘을 쏟고 그 공연을 영화화하는 것은 기성의 팝스타 아이돌 전략을 닮았다. 가장 트로트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트로트 열풍을 이끈 셈이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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