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대학은 더이상 학교폭력 문제에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학교폭력 피해를 숨기고 살아가던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피해 사실을 고백하고, 가해자들이 잇달아 공개적으로 사과에 나서고 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도 드러나 논란이 한층 더해지고 있다. 이상의 일련의 사건들은 대중들이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으며, 학교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점차 높이는 촉매제 역할로 작용했다. 학교폭력은 가장 안전하면서도 행복한 공간이어야 할 학교를 지옥으로 바꿔 버린다.
얼마 전 교육과학연구 학술지 2022년 12월호에 게재된 학교폭력 관련 연구에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과반이 넘는 52.5%의 학생들이 학교폭력의 주요 원인으로 '가해학생 교육 및 선도 부족'을 꼽았으며 '가정에서의 인성교육 부족(42.3%)'과 '폭력적 문화·대중매체 영향(38.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교사들은 '가정에서의 인성교육 부족(71.4%)'을 가장 큰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건전한 또래관계·문화 경험 부족(49.8%)'을 원인으로 지적하는 교사도 다수였다.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는 학교폭력의 원인이 학생 및 가정, 사회 등 매우 다양하며, 따라서 학교-가정-지역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로 학교폭력 예방 노력은 학교와 가정, 지역 간의 협력을 통해 이뤄진다.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학교폭력 책임교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연수를 실시하거나, 학교폭력 예방 교육 및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 단위학교 자체적으로 학생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지역 내 경찰서나 청소년상담센터 등 여러 유관기관도 여기에 동참한다. 예외가 있다면, 바로 대학이다.
학교폭력이 주로 초·중등학교의 문제라는 인식 때문인지, 대학은 학교폭력 예방의 흐름에서 한 걸음 물러나 관망하는 추세다.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정시에 반영하여 대입에 불이익을 주는 징벌적 차원의 대응만을 논의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대학의 역할은 교육과 연구의 중심기관으로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학교현장 전문가와 관련 연구성과, 각종 인프라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또한 학교폭력의 예방을 통해 아이들이 훌륭히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함으로써 대학이 보다 우수한 학생을 모집할 수 있는 선순환 체계 구축의 밑바탕이 된다. 이제 대학 역시도 학교폭력 예방의 한 축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해야 할 시점이다.
이지메 문제로 오랫동안 속앓이를 해 왔던 일본의 경우 미야기교육대학과 조에쓰교육대학, 나루토교육대학, 그리고 후쿠오카교육대학 등 4개 대학이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BP 프로젝트(이지메방지 지원 프로젝트)'를 운영해 교육위원회 및 학교의 학교폭력 예방 및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한 각종 지원사업과 교육 연구, 연수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 내 대학과 유관기관 등이 협력하여 교사 및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각종 학교폭력 예방 및 대처에 대한 특강을 제공하거나 활발한 관련 연구의 진행, 심리회복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의 개발 및 제공 등 보다 본격적인 대응도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리빙랩의 형식으로 지역과 대학이 협력하여 초·중학교 학생의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그 성과를 공유하는 방안도 요구된다.
또한 대학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다양한 진로교육 및 학습역량 함양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예방 방안이 될 수 있다. 대학의 연구실·실험실 체험, 대학 커리큘럼 사전체험 프로그램 등의 운영은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과 명확한 목표 의식을 촉진함으로써 건전한 학교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초·중등학교를 대상으로 여러 재능을 지닌 대학생들을 활용한 흥미로운 방과 후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해 재미있는 학교, 가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것 역시 긍정적인 학교 분위기 형성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자연스럽게 학교폭력이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며, 아름다운 꽃과 많은 과일을 맺는다 했다. 초·중등교육이 탄탄해질수록 대학 역시 안정적으로 좋은 학생들을 모집할 수 있으며, 이는 우수한 인재의 육성으로 이어져 지역과 국가의 발전과 경쟁력 확보에 이바지하게 된다. 학교폭력의 예방에 대해 대학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오래된 학교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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