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건강] 심부전 오해받는 희귀 심장병…"진단 놓치고, 약값은 비싸"

강승지 기자 2023. 5. 3.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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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근육 망가뜨린 뒤 증상 나타나는 'ATTR-CM'…생존기간 짧아
진행 늦추는 약값은 비싸 환자들에게 그림의 떡…논의 진전되길
희귀 심장병 'ATTR-CM'을 앓고 있는 어머니 이행림씨(오른쪽)와 아들 김상범씨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어머니 이행림씨(91)를 모시고 사는 아들 김상범씨(68)는 지난 2022년 10월의 일을 잊지 못한다. 집에서 넘어진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셔 진료받던 중 뜻밖에 "(어머님께) 진행성 희귀 심장병이 있다"는 진단을 접했다. 더욱이 진행을 멈출 수 있는 치료만 된다고 해 실망이 컸다.

치료제가 국내에 있다는데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다는 설명에 김씨는 당황했다. 최근 이 약의 급여는 어렵다고 한 정부 결정에 김씨는 또 실망했다. 김씨는 "어머니가 하루빨리 한 번이라도 처방받았으면 좋겠다. 지금보다는 병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씨의 주치의인 문인기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뉴스1을 만나 "병을 진단한 뒤 약을 쓸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의료진 입장에서 하고 싶지 않다"며 "개인적으로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씨의 주치의 문인기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심장내과 교수

◇국내 100여명으로 추정…"대부분 고령층, 환자 더 있을 수도"

이씨가 앓는 질환은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ATTR-CM)이다. 심근병증의 일종으로 혈액 내에서 자연적으로 순환하는 단백질인 '트랜스티레틴'(TTR)이 심장에 쌓이는 희귀질환이다. 트랜스티레틴이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로 심장 등에 쌓인다고 이해할 수 있다.

문 교수는 "심근병증은 심장에 혈액과 잘 통하지 않아 심장근육 자체가 손상되는 질환"이라며 "ATTR-CM의 일반적 증상은 움직이거나 누워있을 때 숨이 차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증상이 병이 상당히 진행된 뒤 나타난다는 점이다.

따라서 진단이 늦어지고 인지도도 높지 않아 심장 초음파 검사로 심부전보다 심근병증부터 의심하지 않는 한 알기 힘들다. 최종 확진을 위해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뼈 스캔, 조직 검사까지 총 4가지 검사를 진행한다.

질환은 트랜스티레틴 유전자 변이로 야기되는 '유전성'과 유전성이 아닌 '일반형'으로 나뉜다. 환자 수가 매우 적어 정확한 유병률조차 파악이 어렵다. 국내 진단 환자 수는 이씨 등 100여명으로 추정되는데 미발견 환자는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밀로이드가 섬유에 침착된 일반형은 나이가 들면서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의 기능이 많이 저하돼 생기는 노인성 질환이다. 손목터널 증후군, 척추 협착증 등이 있거나 숨찬 증상, 부정맥 증상이 계속될 경우 의심해 볼 수 있다.

2022년 9월 중 집에서 넘어진 이씨는 정형외과에서 처음 진료받고 채혈, 심장 검사 등을 거쳤다. 문 교수같이 ATTR-CM을 의심하는 의료진을 만나면 조기에 발견하지만 하염없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도 있다.

문 교수는 "아밀로이드증 자체가 치료하기 어렵다. 원인이 불명확하고, 알더라도 원상태로 되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소개했다. 이어 치료가 어려운데 열심히 찾는 이유를 "ATTR-CM에는 치료제가 있어서"라고 부연했다.

ⓒ News1 DB

◇부정맥 발생 줄이고 생존율 향상하려면…조기 진단, 치료제 복용 필요

문 교수가 제시한 치료제는 한국화이자제약이 2020년 8월 국내 허가받은 타파미디스 성분의 약이다. 심장에 단백질이 더 이상 쌓이지 않게 한다. 그러나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비용 부담 때문에 사용할 수 없는 환자도 있다.

운 좋게 일찍 진단받은 환자들은 제약사 무상 공급 프로그램으로 복용하고 있으나 지원 대상에 들지 못하는 환자는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문 교수는 "치료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생존 기간이 짧아진다"고 했다. 유전형의 생존 기간은 2.5년, 일반형의 생존 기간은 3.6년으로 알려졌다.

이씨도 이 약을 먹지 못하고 있다. 그저 심부전 치료제와 부종 관리를 위한 이뇨제를 복용 중이다. 김씨는 "고령인지라 본인이 어떤 질환을 앓고 있는지 잘 모른다. 옆에서 지켜봤을 때는 숨이 가빠 활동을 못 한다. 가끔은 숨을 쉬지 못하는 것 같아 보여 놀랄 때도 있다"고 했다.

문 교수는 "이 약은 생존 기간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복용 후 손상된 심근 두께 등도 얇아졌고, 초음파 등 정밀 검사에서도 호전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복용 환자들의 증상이 잘 조절되는 것도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환자들에게는 심방세동 같은 부정맥 발생 비율이 높다. 이 약은 부정맥 발생률을 줄여주고 결과적으로 생존율이 높아지는 데 기여한다는 게 문 교수 판단이다. 이 약이 심장에 단백질을 더 쌓게 하지 않는다는데 문 교수는 의미를 부여했다.

문 교수는 "해외에서는 허가 및 급여 등재된 이 질환 치료제가 있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 가능하고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진단할 것"이라면서도 "국내에는 치료 옵션이 굉장히 제한됐는데 심장내과 의료진도 소수라 열심히 노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자들은 고령인지라 환자와 보호자들이 조기 진단과 치료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100세까지 살 수 있는 요즘 시대에 70~80대라도 빠르게 발견하면, 여행도 다니고 즐겁게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문 교수는 "급여화와 관련해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답답하다. 심장내과 의료진들은 ATTR-CM 질환에 관해 관심갖고 있고, 환자들을 찾으려 한다. 환자들도 포기하지 말고 함께 노력하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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