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주, 조금씩, 빠르게”…욕 안 먹는 가격인상 ‘필살기’

전태훤 선임기자 2023. 5. 3. 06:2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필화 성균관대 명예교수 “인플레 4~5년 더 갈듯”
“인플레땐 고객가치 높아야 소비자 지갑 열려
효용 뚜렷하고 차별화된 가격 정책 필요
인플레이션이라는 망령이 다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짧고 묵직한 그의 첫마디는 경고 그 이상이었다. 저물가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던 시대에서 갑자기 세계적 고민거리가 된 인플레이션, 그리고 400년 자본금융시장 역사상 전례 없이 10년 이상 계속된 제로금리를 깨고 들이닥친 고금리 시대. 돌변한 시장 환경을 당혹스럽게만 느끼고 있기엔 언제 어떻게 가혹한 현실로 바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세계적인 경영사상가로 꼽히는 독일의 헤르만 지몬과 함께 최근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전략을 모색하는 경영서 ‘인플레이션에 베팅하라’를 출간한 유필화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앞으로 몇 년은 지속할지 모를 인플레이션의 공습을 ‘다시 찾아온 망령’에 빗댔다.

인플레이션은 우리 경제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바꿔 놓을까? 고물가 시대의 도전에 우리는 또 어떻게 맞서야 할까? 유필화 교수를 서울 대방동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유필화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앞으로 4~5년간 고물가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태훤 선임기자

걷히지 않은 인플레 먹구름

-물가, 얼마나 더 오를까?

“금리, 물가 이야기를 하려면 미국 시장부터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전월 대비 물가상승률을 보면 지난해 6월 9.1%를 찍은 후 올해 2월 6.0%, 3월 5.0%로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2%대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물가가 잡혔다고 볼 수 없다. 요즘 같은 인플레이션은 1970년대에 있었던 두 차례 석유파동 이후 최고 수준이다.

2008년 리먼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동성이 풀리고,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이 심해졌고,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커진 물가상승 압력이 복합적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도 최근 물가 상승 속도가 떨어지고 있지만 인플레 압력이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미국이나 유럽, 한국 모두 인플레가 수그러드는 추세지만 앞으로 4~5년은 고물가 시대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문제는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여지가 크지만 경기를 생각하면 쉽게 올리기도 부담이란 거다. 돈을 풀기도, 돈줄을 죄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통화정책 기조가 불황보다는 물가 잡기에 더 무게를 두는 쪽으로 쏠릴 것으로 예상한다. 고금리 기조가 한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지만 금리 인상 속도가 지금까지 보다는 내려갈 것 같다.”

인플레에도 수혜∙피해 엇갈려

-인플레에도 수혜자가 있나?

“인플레 시기엔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 그렇게 보면 채무자는 어떤 의미에서 인플레의 수혜자다.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그 반대다. 빌려줄 때 100만원의 가치가 나중에 돌려받을 때의 가치보다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가도 인플레 수혜자일 수 있다. 인플레 시기에는 개인의 명목소득이 오르고 기업의 명목 매출도 늘어난다. 소득이 커질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가 적용되고 매출의 10%가 붙는 부가가치세도 늘기 때문에 세수가 늘어난다.

반면 은퇴 생활자나 일반 회사원들, 저금리 채권 투자자, 생명보험 가입자, 현금 보유자 등은 인플레의 대표적인 피해 집단이다.

중요한 건, 가계와 기업이 한동안 5% 정도의 물가상승률이 지속한다고 보고 그것에 맞춰 소비와 경영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유필화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기업의 가격 인상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전태훤 선임기자

인플레가 바꿀 기업환경

-인플레를 슬기롭게 극복할 방법은?

“인플레이션이 오면 모든 게 오른다. 명목소득도 오른다. 개인도 기업도 물가상승률이 고려된 소득이 얼마나 오르느냐가 중요하다. 개인으로 보면 실질소득이겠고, 기업으로 보면 인플레가 고려된 실질적 경제이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인플레 시기에 기업 경영이 어려운 것은 실질이익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플레가 닥치면 자본비용이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질적 경제이익을 달성하기 더 어려워진다. 그래도 실질이익을 포기하면 안 된다. 급여소득자의 경우엔 실질소득을 올리기 어렵겠지만, 기업이라면 실질이익을 끌어올릴 차원 높은 경영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자주, 조금씩, 빠르게

-불가피한 가격 인상의 저항을 줄일 방법이 있을까?

“인플레로 자본비용이 늘고 원가 상승 부담이 커지면 기업은 이를 상쇄하기 위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진다. 이때 필요한 것이 소비자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격 인상 전략이다.

인플레 시기에 기업에 필요한 것은 민첩성이다. 물가가 오른 다음에 제품가격을 올리면 피곤해진다. 소비자 저항도 세진다. 가격은 물가가 오르기 전에 미리 올리는 것이 좋다. 인상이 잦더라도 조금씩 올리면 저항이 적다. 소비자들이 조금씩 오른 것에 익숙해져서 가격 인상을 모르고 넘어가기도 한다. 갑자기 한꺼번에 쏟아지는 소나기는 모두가 피하지만 젖을 듯 말듯 흩뿌리는 가랑비엔 굳이 우산을 찾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인플레로 ‘원가가 얼마 올랐으니, 우리 제품도 얼마 올리겠다’고 한다면 늦은 거다. ‘조금씩, 자주, 빠르게’가 핵심이다.”

열릴 지갑은 언제든 열린다

-인플레로 실질소득이 낮아지면 소비도 줄 텐데…

“명목소득이 오르고, 물가가 고려된 실질소득까지 오른다면 괜찮지만, 명목소득이 올라도 내 소득이 물가상승률보다 낮으면 급여가 줄어든 것과 같은 셈이 된다. 이러면 개인 소비는 줄어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기업도 인플레에 맞춘 경영전략이 필요하다.

기업도 자본 비용이나 원가가 올랐을 텐데 명목이익이 아니라 실질이익을 내려면 최소한 물가 상승분 이상의 이익을 내야 한다. 결국 제품이나 용역∙서비스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기업이 필요한 만큼 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다. 지불용의가격(소비자가 재화를 구입할 때 지불할 수 있는 최고 금액)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실질이익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 원가가 10% 올랐다고 가정할 때, 지불용의가격이 10% 이상 오르지 않는다면 재화 가격을 올리기 어려워진다.

인플레에도 소비자 지갑은 열린다. 다만 소비자가 느끼는 고객가치가 높은 것으로 소비가 집중된다. 고물가에도 소비자가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즉 지불용의가격 경쟁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가 인플레에서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열쇠다.

물론 원가절감은 기본이다. 학계 조사에 따르면 원가 상승분의 30% 정도는 기업이 자체 흡수할 수 있다는 게 경영자들의 의견이다. 원가가 5% 올랐다고 그걸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가하면 100% 패한다.”

유필화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가격 차별화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태훤 선임기자

가격전략의 꽃은 가격 차별화

-인플레에 맞는 가격 모델이 따로 있나?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 모델을 새로 구축하고, 전술적으로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 인플레 시기엔 원가를 낮게 가져가기도,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소비자 지갑을 열기도 어려워진다. 하지만 비용은 줄이고 지불용의가격은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인플레 때는 효용이 단기적이고 뚜렷한 가격 정책이 필요하다. 때에 따라서는 ‘덜 비싼’ 대안이 필요할 수도 있다. 비싼 가격에 대항할 수 있는 좀 더 싼 제품으로 시장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거다. 하나의 서비스에 가격을 차별화하는 방법도 있다. 모두 혁신적인 가격 시스템을 말하는 거다. 이런 가격 책정은 소비(이용)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구매 시점에 따라 가격과 서비스의 양과 질이 달라지는 항공권이나 수시로 바뀌는 주유소 기름값 같은 경우에는 ‘동태적 가격 책정(dynamic pricing)’이 평소 이뤄지기 때문에 인플레 시기에 상대적으로 저항감이 덜한 편이다.

이용자의 성과나 실제 사용 부분에 비례해 가격을 매기는 다차원 가격 시스템도 인플레 시기에 고객 저항을 줄이는 방법이 된다. 독일 풍력발전회사 에네르콘이 설비가동에 따른 회사 수익에 비례해 서비스 가격을 책정하거나, 미쉐린 타이어가 계약 운송회사에 타이어가 굴러간 거리만큼 가격을 내도록 가격을 정한 것들이 좋은 예다.

묶어 팔거나, 찢어 파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저가항공사들이 항공료에서 수하물 부치는 값을 분리한 ‘묶음가격 풀기(unbundling)’는 인플레 때도 저가 정책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결국엔 대부분의 승객이 수하물 비용을 추가로 내게 함으로써 커다란 저항 없이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전술이 된다. 반대로 끼워 파는 경우, 소비자 입장에선 구매 단가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기업으로선 상황에 따라 안 팔리는 악성 재고까지 털어낼 기회가 되기도 한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