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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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본다.'
얼마 전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선 뮤지컬 '영웅'을 뒤늦게 관람했다.
오리지널 팀의 내한까지 가세하는 라이선스 작품들과의 경쟁 속에서 100만 관객 고지를 넘어선 창작 뮤지컬이 '명성황후', 그리고 '영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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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청춘' 안중근의 삶과 죽음
뮤지컬, 소설 등으로 다시 태어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책무인 듯
정치적 결단만으로 매듭지을 수 없어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본다.’
얼마 전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선 뮤지컬 ‘영웅’을 뒤늦게 관람했다. 투혼이 느껴지는 배우들의 열연, 울분과 슬픔을 교차시키는 넘버, 스토리를 극적으로 만드는 세련된 연출까지 모든 것이 압도적이었다. 이달 말까지 안중근 의사 역할로만 330여 회 무대에 선다는 배우 정성화의 ‘장부가’는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관객들의 기립 박수에는 벅찬 감동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거사 100주년을 기념해 2009년 10월 초연된 ‘영웅’은 K뮤지컬의 새로운 역사를 쓴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4년 동안 9개 시즌, 720여 회 공연했고, 미국 뉴욕과 중국 하얼빈 등 해외시장에도 진출했다. ‘100만 관객 뮤지컬’은 ‘1000만 관객 영화’와 같은 수준의 흥행 성공으로 인정된다. 극장 한 곳에서 하루 1회, 많아야 2회밖에 공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그 기록을 세운 작품은 지금까지 10개에 불과하다.
오리지널 팀의 내한까지 가세하는 라이선스 작품들과의 경쟁 속에서 100만 관객 고지를 넘어선 창작 뮤지컬이 ‘명성황후’, 그리고 ‘영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32세로 순국한 청년 안중근의 삶에 국민 모두 저마다의 부채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그런가 보다. 작가 김훈은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아 50년 동안 뭉개고 있었다’는 숙제를 지난해 풀어냈다. 그는 소설 ‘하얼빈’의 작가의 말에서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고 전했다. 1000만 관객 감독 윤제균은 뮤지컬을 본 직후 영화화를 결심했고 지난해 말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영화 ‘영웅’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익숙해진 관객 326만 명을 극장으로 안내했다.
뮤지컬과 영화·소설로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마주한 우리들은 그저, 그가 살아냈던 그 시대를 되새기고 있을 뿐이다. 그 되새김이 그의 유묵을 복원하거나 그의 유해를 찾아내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그와 그 시대를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숙명일지 모른다.
냉랭했던 일본과의 관계 회복이 최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수고로운 미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윤석열 대통령은 바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난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지난한 역사가 외교와 정치적 결단만으로 전환되고 매듭지어질 수 있을까. ‘100년 전의 일을 갖고 무조건 무릎 꿇으라고 하는 것’을 대통령은 받아들일 수 없을지 모르나 국민 다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유럽에서는 그 참혹한 전쟁을 겪어도 미래를 위해서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협력이 무릎 꿇은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의 진정한 참회에서 비롯됐음을 세계인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김훈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미래 세대와 미래의 평화를 위해 한일 관계는 재정립해야 한다는 비전에 나는 찬성한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국내의 갈등 요인을 우선 해소해야 하고 집권 세력이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정당성과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2023년 3월, 월간중앙)
5월, 이제 곧 어린이날이다. ‘영웅’을 보러 갔던 일요일 오후, 극장에는 부모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어린 관객들이 유독 많았다. 어쩌면 인생 첫 뮤지컬이 ‘영웅’일 것 같은 앳된 아이들. 하지만 그들도 커튼콜의 배우들이 ‘그날을 기약하며’를 부를 때, 어른들과 똑같이 먹먹해진 가슴을 느꼈을 것이다. ‘후손들을 위해 포기할 수 없었던’ 100년 전 청춘들의 헌신과 열정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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