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내연기관차 만든 벤츠, 전기차 가속 페달 밟다
[비즈니스 포커스]
‘벤츠가 테슬라를 제쳤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올해 1분기 한국에서 테슬라를 제치고 수입 전기차 판매 1위로 올라섰다. 벤츠가 전동화 전략을 발표한 지 2년 만의 성과다.
한국 소비자들의 다양한 수요에 맞춰 소형 세단부터 대형 세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까지 다양한 전동화 라인업을 구축한 것이 적중했다는 분석이다.
테슬라가 이끌고 중국이 치고 나가려는 전기자동차 경쟁에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든 벤츠가 속도를 내며 따라 붙고 있는 형국이다.
◆전차종 전기차 전환 가속화
2년 전 벤츠는 2030년까지 모든 차종을 순수 전기차로 전환하고 2025년부터 신차를 모두 전기차로만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동화 전략을 가속화하기 위해 2022년부터 8년간 전기차 부문에 400억 유로(약 58조7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투자금은 전기차 플랫폼 개발, 차세대 배터리 연구·개발(R&D), 충전 인프라 구축 등에 쓰일 계획이다.
발표 당시만 해도 시장에선 전기차에 대한 시각은 회의적이었다. 전기차가 대세로 자리 잡게 되면 내연기관차를 장악한 기존 브랜드들이 주도권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던 탓이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 금지 조치를 단행한다고 밝혔고 각국 정부도 탄소 중립(탄소 순배출 제로) 정책을 펼치며 상황은 전환됐다. 전기차를 개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벤츠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최근 EU가 완성차업계의 사정을 고려해 2035년 이후에도 합성 연료인 이퓨얼(E-Fuel)을 주입한 내연기관차 판매를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우리의 전략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2030년까지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벤츠는 더 이상 내연기관 신차는 출시하지 않는다. 파워트레인(동력 전달 장치) 등을 규제 기준에 맞춰 개조해 기존 내연기관 모델만 판매할 계획이다. 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새로운 투자와 R&D는 전기차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벤츠는 2022년 1회 충전에 1200km를 달리는 순수 전기차 ‘비전 EQXX’를 선보였다. 2020년부터 개발을 진행한 비전 EQXX에는 세계적 자동차 경주 대회인 포뮬러원(F1)의 엔지니어 등 그룹 내 우수 기술자들이 투입됐다. 이들은 고성능 파워트레인 개발 노하우를 전기차에 이식했다. 벤츠는 비전 EQXX 개발 과정에서 나오는 기술들은 새로운 전기차 플랫폼에 활용했다.
2021년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에선 기존 G-클래스의 상징적인 디자인 요소를 적용한 순수 전기차 ‘콘셉트 EQG’를 공개했고 2023년 4월 상하이 모터쇼에선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브랜드 최초 순수 전기 SUV ‘메르세데스-마이바흐 EQS SUV’를 선보이며 전기 모빌리티 시대의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2025년에는 MB.EA, AMG.EA, VAN.EA 등 세 종류의 전기차 플랫폼을 활용해 신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이들은 각각 중대형 승용차, 고성능 브랜드 AMG 차량, 화물차와 상용차의 전기차 플랫폼이다.
◆글로벌 판매량은 갈 길 멀고
한국선 테슬라 제쳐
전기차 판매량은 아직 많지 않다. 2022년 벤츠는 글로벌 기준 총 11만7800대의 전기차를 팔았다. 전년 대비 124% 증가했지만 전기차 강자 테슬라(131만3887대), BYD(92만5782대)와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한국 시장에선 출발이 순조롭다. 벤츠는 올해 테슬라를 앞섰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에서 판매된 수입 전기차는 4689대로 집계됐다. 이 기간 벤츠는 전체 33.5%인 1572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전년 동기(728대) 대비 두 배 넘게 늘어났고 최다 판매량이다. 특히 EQA 250은 3개월 동안 300대가 팔리며 수입 전기차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같은 기간 테슬라는 1303대를 판매(전년 대비 51.8% 감소)하며 2위로 밀려났다.
벤츠가 한국 전기차 시장에서 약진한 것은 다양한 전기차 라인업 구축과 특화 서비스센터 확충 등 서비스 품질을 강화한 결과로 해석된다.
올해 들어서도 전기차 신차 모델을 잇달아 내보이고 있다. 1월 선보인 ‘더 뉴 EQS SUV’를 시작으로 4월에는 고성능 전기 비즈니스 세단 ‘더 뉴 AMG EQE’를 출시했다. 하반기에는 준대형 SUV 모델인 ‘더 뉴 EQE SUV’를 출시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는 세단 EQE·EQS 2개, SUV EQA·EQB·EQS 3개 등 총 5개 모델로 구성된다. 고성능 브랜드 AMG에선 AMG EQE, AMG EQS 등 2개 모델을 판매한다.
다만 한국 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충 등 구체적인 투자 계획은 아직 없다. 일단 시장이 큰 미국 등을 중심으로 인프라 구축에 나서는 모습이다. 벤츠는 2027년까지 북미 지역에 2500개의 고속 충전 시설을 설치한 후 유럽·중국 등을 포함해 2030년까지 주요국에 고속 충전소 1만 개를 구축할 방침이다.
한국에선 현재 전국 100개 이상 지역에 200여 개의 충전기를 운영하고 있다. 충전소가 많으면 주행 중 전기차가 꺼지거나 제때 충전하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소비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벤츠의 전체 판매량은 중국·미국·독일·한국 등 순이다. 한국이 4위로 상위권을 기록했다. 전기차 판매량도 10위 안이다.
◆소형 전기차, 배터리 비용 절감
완성차 업체들은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 같은 삼원계 배터리를 주로 활용한다. NCM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주행 거리가 길고 배터리 성능이 안정적이지만 가격이 비싸다. 매장량과 생산량이 매우 적은 코발트 같은 희귀 금속을 쓰기 때문이다.
반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낮아 주행 거리가 길지 않고 배터리가 무겁지만 저렴한 인산과 철로 만들어 싸다는 장점이 있다.
벤츠는 추후 출시될 소형급 전기차에는 LFP 배터리를 사용할 예정이다. 차세대 모델부터 비용을 낮춰 전기차를 더 싸게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LFP 배터리 분야에선 중국 CATL이 강자다. 미국 자동차 기업인 포드·테슬라가 CATL과 손잡은 이유다. 벤츠는 역시 지난해 8월 CATL와 공급 계약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헝가리 데브레첸에 구축될 CATL 새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 셀을 차세대 벤츠의 전기차에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대상 모델은 차세대 EQA와 EQB 등 저가형 전기차로 추측된다. 현재 EQA, EQB 등 모델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리튬 이온 배터리가 탑재됐다. CATL의 헝가리 배터리 공장은 올여름 착공이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벤츠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VA2를 기반으로 제작된 모델(EQS·EQE·SUV EQS·SUV EQE)에는 NCM 배터리가 탑재됐다.
돋보기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 받는 미국 차와 폭스바겐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 지침에 따라 테슬라·제너럴모터스(GM)·포드 등 미국 완성차 업체가 생산한 전기차만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받게 됐다.
여기에 최근 폭스바겐의 준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ID.4도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됐다. ID.4는 미국 테네시 주 공장에서 생산된다.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시장에서 ID.4는 벤츠 SUV EQA와 함께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의 대항마로 꼽힌다. 미국 시장에서도 ID.4와 아이오닉5는 차급과 가격대가 유사해 경쟁 차종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번 발표로 ID.4에 상황이 유리해졌다.
예를 들어 ID.4 2023년식 미국 권장소비자가격(MSRP)은 약 4만5000달러(약 6000만원)지만 보조금을 받으면서 약 4만3000달러(약 5700만원)인 아이오닉5보다 가격 경쟁력이 더 높아졌다. EQA는 현재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지 않아 비교할 수 없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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