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만한 사람은 다 샀다…‘가격 대중화’가 전기차 대중화[전기차, 아직은]
올 1분기 전기차 신규 1만9137대
전년 동기보다 98대 증가에 그쳐
작년 구매자 중 가장 높은 비중은
40대 고소득층 ‘얼리어댑터’ 성향
“우리는 ‘가격 전쟁’을 개시한 게 아닙니다. 소비자들의 구매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을 낮춘 것뿐이죠.”
지난달 15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테슬라가 가격 전쟁을 시작했다”는 지적에 트위터에서 이같이 답변했다.
이미 테슬라는 올해에만 다섯 번에 걸쳐 모델3·Y 등 주요 차종 가격을 최대 20% 낮춘 상태였다. 머스크 CEO가 이 트윗을 남긴 직후인 지난달 18일 또 테슬라는 여섯 번째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모델3와 모델Y 값을 각각 2000달러, 3000달러씩 낮췄다.
한국에서는 아직 충전시설 부족이나 배터리 안전성 논란이 더 많이 회자되긴 하지만, 사실 전기차 보급의 1차 걸림돌은 가격이다. 다소 불편하거나 불안해도 가격만 내려오면 지갑을 열 소비자는 얼마든지 있다. 머스크 CEO가 자사 제품 가격을 공격적으로 내리면서 ‘소비자 구매 여력 확대’라는 명분을 내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제조사들은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맞아 시장 확대 전략으로 급히 넘어가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가격 접근성을 대폭 늘린 ‘3000만원대 보급형 전기차’가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테슬라가 촉발한 전기차의 할인 경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포드·루시드 같은 미국 내 경쟁사뿐만 아니라 비야디(BYD)·샤오펑 등 태평양 건너 중국 전기차 업체들까지 할인 대열에 숨가쁘게 합류했다.
전기차가 좋다는 것, 소비자들도 머리로는 안다. 친환경적이고 조용하며 기름값도 안 든다. 하지만 초기 비용(차 값)이 높다. 정부 보조금은 매년 금액이 줄고 있다. 게다가 아직 충분하지 않은 충전 환경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대다수 소비자는 ‘그 돈이면 그랜저’를 선택하는 게 현실이다. 아직 일반 전기차는 같은 급의 내연기관차보다 1.3~1.5배가량 가격대가 높다.
지난 3월 기준 국토교통부에 등록된 국내 전기차는 42만2383대다. 전체 자동차(2564만대)와 견주면 1.6% 수준이다. 전기차의 ‘진정한 대중화’에 이르려면 먼저 가격 혁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20대는 아직도 ‘가솔린 선호’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전기 승용차의 신규 등록 대수는 올해 1분기 1만9137대로, 지난해 1분기의 1만9039대 대비 고작 98대(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전체 승용차 신규 등록 대수가 32만7380대에서 37만8750대로 15.6%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전기 승용차 증가율은 거의 정체된 모습이다.
연령별로 보면, 전기차는 자산·소득이 어느 정도 축적된 40대 이상 계층이 많이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갑이 얇은’ 젊은층은 아직도 압도적인 비율로 휘발유 차량을 선호했다.
경향신문이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를 통해 확보한 ‘2022년 연료별 자동차 등록 통계’를 보면, 지난해 새로 전기차를 구매한 사람 6만7728명 가운데 33.5%(2만2688명)가 40대였다.
30대 24.5%(1만6578명), 50대 22.2%(1만5013명). 60대 12.8%(8640명), 20대 4%(2698명) 순이었다.
자동차 시장에서 40대는 언제나 큰손이다. 구매력이 높고 가정·직장 등의 이유로 자동차가 필요해지는 시기다. 하지만 전기차에서는 ‘유독’ 40대 소비자 비중이 높다. 다른 내연기관 통계와 비교해 보면 그 특징은 뚜렷해진다.
지난해 휘발유 승용차 등록 대수 58만9615대 가운데 4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4.8%(14만6160대)다. 30대(21.8%), 50대(26.0%)와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반면 전기차에서만큼은 40대의 구매 성향이 다른 연령층보다 뾰족하게 튀는 형태다. 20대가 산 전기차는 3.5%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40대가 유난히 친환경 트렌드에 민감하다든가, 20대가 별로 환경 문제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기차 수요가 올해 들어 주춤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전기차가 고소득 ‘얼리 어댑터’, 혹은 자산 형성기에 접어든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은 세계 어느 곳에나 있다. AP통신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체 자동차 평균 가격은 4만6000달러 미만”이라며 “전기차 가격은 대다수 가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특히 5000만원대 이상의 비싼 전기차가 일시적인 수요 한계에 직면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살 만한 사람은 거의 다 샀다’는 얘기다.
소비자들, 전기차 장점 잘 알지만
동급 내연차보다 비싸 구매 ‘주춤’
글로벌 제조사들, 시장 확대 나서
테슬라·현대 등 3000만원대 예고
■ 3000만원대 전기차 곧 나온다
전기차 업체들은 올해부터는 저렴하면서도 대중성 있는 보급형 모델을 대폭 늘려 폭넓은 소비계층을 공략하겠다는 분위기다.
더 많은 잠재 고객을 흡수하기 위해 성능 면에서 타협한 저렴한 전기차를 내놓은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 국가들의 친환경차 보조금 삭감·폐지 움직임에 선제 대응하려는 목적도 있다.
머스크 CEO는 2020년부터 보급형 전기차인 이른바 ‘모델2(가칭)’를 내놓겠다고 공언해 왔다. 주행 성능을 일부 양보하는 대신 가격이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해 가격을 낮출 것으로 전망된다. 가격은 약 2만5000달러(3500만원)로 추정된다. 5만~6만달러를 넘나드는 기존 차종들의 절반 수준이다.
독일 업체 폭스바겐도 지난달 15일 보급형 전기차 ‘ID.2 올(all)’의 콘셉트카 실물을 공개했다. 폭스바겐이 2만5000유로 이하 가격으로 내놓은 첫 번째 전기차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도 하반기 중에 이쿼녹스의 전기차 버전을 출시한다. 예상 가격대는 3만달러로, 세액공제 적용 시 2만2500달러다. 이쿼녹스 가솔린 모델(2만6600달러)보다도 싸다.
현대자동차그룹도 ‘2만달러대’(약 3000만원)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기아는 내년부터 3000만원대의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양산할 예정인데 ‘EV3’라는 이름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준중형 전기차 EV4도 내년부터 광명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테슬라는 그나마 버틸 여력이 있다. ‘기가프레스’로 통째로 차체를 찍어내는 양산 능력과 우월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덕에 업계에서 가장 높은 마진율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포드, GM, 폭스바겐, 현대차그룹 등 레거시 업체들의 ‘2위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한 국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제조사들은 당분간 출혈에 가까운 영업마진 손실을 감내해야 할 테지만, 역설적으로 소비자들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즈 끝>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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