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병원비보다 반려동물 치료비가 더 나와요" 가입률 1% 펫보험 언제 활성화 되나?
'토리 아빠' 윤 대통령, 보험 관련 의제로 '펫보험 활성화' 제시로 시장 활기
[파이낸셜뉴스] #1. "지난해 11월 강아지 슬개골 수술하고 이번에 건강검진 하면서 느꼈던 게 제 병원비보다 강아지 병원비가 더 많이 든다는 거였어요. 생각만 해도 싫지만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서 펫 보험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2. "반려견 바다가 생후 3개월이 지나서 펫보험 가입이 가능해졌어요. 미리, 그리고 끝까지 책임져주세요."(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반려인의 펫보험 관련 글 갈무리)
반려동물 799만마리 시대지만 펫(pet)보험 가입률은 1%에 그치면서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펫보험 활성화에 뜻을 모으고 구체적 방안을 마련 중이다. 가장 큰 과제는 인프라 부족이다. 동물 등록률이 낮은 데다, 동물 특성에 따라 진료항목과 비용이 제각각이라 보험상품 개발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또 보험업계와 수의업계 간 협업이 필수적인데 이제 첫 걸음을 뗀 수준이다. 이에 당국에서는 일본과 미국 등 펫보험이 활성화된 해외 사례를 참고해 펫보험 활성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007년 현대해상이 손해보험사 최초로 펫보험을 출시한 이후 2008년에는 3개의 손해보험사들이 펫보험을 판매했다. 그러나 높은 손해율을 감당하지 못하고 2010년에는 판매를 중단했고, 2017년에야 판매를 재개했다. '토리 아빠'로 유명한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과제 중에 유일하게 보험 관련 의제로 '펫보험 활성화'를 내놓으며 펫보험 시장에 온기가 돌고 있다.
손해보험업계 또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펫보험 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크게 △반려묘 가구의 펫보험 가입 유도 △슬·고관절, 피부·구강 질환으로 보장 범위 확대 △신규 가입 시 만 10세(갱신 시만 20세까지)까지 보장 연령 확대 △설계사·대리점·펫샵·동물병원 등 판매채널 다양화가 대표적이다.
또 산책량·음수량 등 건강미션이행 시 가입자에게 반려견 운동교육 리워드를 제공하는 한화의 리워드형 펫보험, 반려동물 산책 시 배상책임 보장을 받도록 한 캐롯의 펫산책 보험 등 상품 성격도 다각화하고 있다. 하지만 보험 가입률이 저조해 펫보험 시장 성장에도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총 11개 손해보험사가 약 7만 1896건의 펫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가입률은 추정 전체 반려동물 개체수 대비 0.9%에 그쳤다. 업계는 펫보험 가입률이 저조한 원인을 △제도적 기반 미흡 △통계 및 데이터 부족으로 인해 보험료 산정 및 손해율 관리가 어려운 점 등에 있다고 봤다. 업계 관계자는 "반려동물 진료와 관련한 관리체계가 부족해 반려인의 진료비 부담, 낮은 보험가입률 등으로 이어지고 있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동물병원의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 △질병명·진료행위 명칭 및 코드 표준화 △반려동물 등록제 개선이 시급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업계는 "현행 수의사법상 수의사가 동물 진료 후 진료부를 발급할 의무가 없어 일부 보험가입자는 보험금 청구시 카드 영수증을 보험사로 전송하고 있다"며 "이에 보험사들은 적정 보험금 지급을 위한 손해사정 등 위험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의사법 개정으로 동물병원의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해서 반려동물에 대한 과잉진료·보험사기를 방지하고, 합리적인 손해사정을 통해 반려동물보험의 보험금 누수를 차단하자는 얘기다. 진료 데이터 축적을 토대로 반려동물의 연령 및 품종 등에 따른 상품 개발과 보장을 확대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수의업계에서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사무총장은 지난 4월 28일 열린 보험연구원 '반려동물 헬스케어 산업과 보험의 역할 강화' 세미나에서 "사람에 대한 진료의 경우, 의료법에 주요 증상과 치료법을 쓰라는 등 무엇을 어디까지 쓰라고 하는지 명시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동물은 정확한 진단을 내리려면 매우 많은 검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원하지 않을 경우 검사를 할 수 없어 병명도 모른다. 항생제를 처방했다는 내용 정도만 쓸 수 있다"면서 "무조건 (진료기록부를) 달라고만 하면 수의업계도 난감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지금은 자가진료도 허용되고 동물 약품도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인데, 자세한 진료 정보가 공개되면 수의사들이 직업활동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라며 반문했다.
질병명·진료행위 명칭 및 코드 표준화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손해보험업계는 동일한 반려동물 질병에 대해 동물병원마다 질병명칭·진료항목가 상이해 병원별로 진료비 차이가 크고 동물진료에 대한 정보제공이 불충분하다는 애로점을 언급하고 있다. 질병명과 진료행위 명칭, 코드를 표준화하고, 이에 대한 동물병원의 사용의무 근거를 마련해 정확하고 체계적인 동물진료 통계 집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수의업계 측은 "1999년 공정거래위원회를 필두로 한 정부가 동물의료수가제를 폐지하고, 소비자단체가 찬성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저희(수의사들)만 이를 반대했다. 지금은 규제가 불가능할 만큼 의료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 상황인데, 이를 반영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한 표준수가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라며 난색을 표했다.
손해보험업계와 수의업계가 좀처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지만 펫보험 활성화를 위해서는 업계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두 업계의 화합을 통한 '윈윈(win win)'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소정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미나에서 "데이터가 있어야 보험상품을 만들 수 있다. 사람 대상의 의료보험 체계를 적용하려는 보험업계의 입장을 수의업계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수 있다"며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미국은 각 보험사와 동물병원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특정 보험사의 상품에 가입한 반려동물을 협업 중인 병원에 보내고, 동물병원은 그 대가로 진료기록부를 공개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동물병원에 언제든 네트워크를 탈퇴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해 도덕적 해이를 방지한다.
반려동물 등록제 개선 또한 하나의 화두다. 반려견의 동물등록제 의무화 제도는 2008년 도입됐는데 2021년 기준 실제 등록된 반려동물의 비중은 약 38%로 추산되어 제도 정착이 미흡한 상황이다. 동물등록률이 낮으면 보험 가입 시 반려동물 특정에 어려움이 있어 보험 활성화에 제약이 된다.
손해보험업계는 현재 시범사업 중인 반려동물 안면·비문인식 등록제도 도입을 위한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 동물등록시스템 운영·관리방식 정비, 기등록된 반려동물의 유실 및 사망 등에 대한 신고·관리를 촉구하고 있다.
이준석 한국 반려동물경제인협회 사업국장은 "축산물 이력제처럼 반려동물 출생 시 주민등록번호 개념으로 개체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반려동물의 정확한 연령을 측정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당국에서는 각 업계 의견과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 펫보험 활성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는 농림축산식품부 관계부처와 기관 간 협력을 통해 반려동물 등록과 진료항목 인프라 개선을 추진하고, 수의업계와 보험업계 간 제휴를 통한 협력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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